세상사는 이야기

"부부 사이 대화가 부족합니다"

그루터기 나무 2006. 12. 27. 23:48
 

우리나라는 부부사이 대화가 부족하다. 대화가 부족하다는 건 웃음이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이고 결국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데 장애요소가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집에 언성이 높아지는 등 매일 냉기가 흐르는 분위기의 가정도 아니다.


평범한 가정이지만, 남편은 직장 일에, 아내는 가사와 자녀들 교육에 떠밀려 부부간의 대화는 크게 생각하지 않는 게 우리나라 부부들이 생각하는 대화의 현주소다. 그러나 부부의 관계를 긴밀히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떤 형식으로든지 반드시 대화가 필요하며 나아가 이는 자녀들의 인성교육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아내이든 남편이든 누군가 먼저 나서서 대화를 이끌어내려고 노력해야 한다. 운동이나 취미 생활을 공유하면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끌어내는 것도 그중 한 가지 방법이라고 하겠다. 이를 실천하고 있는 몇몇 사례들을 알아본다.


장기판을 두고 마주 앉아라


이 글을 보는 가정주부가 있다면 나는 문방구에 가서 장기를 구입하라고 권하고 싶다. 결혼 4년차인 나는 얼마 전부터 아내와 장기를 두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임신한 아내에게 태교를 위해 장기를 구입했지만 장기판을 마주하는 동안 즐거운 일이 생기고 있다.


 

부부가 다정하게 찍은 사진을 자주 들여다보면 정을 돈독히 할 수 있다

 

 

특히 신혼이라면 신혼인데도 부부 사이 대화가 많지 않았던 우리에게 장기는 대화의 장을 여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아내는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했지만 내가 피곤을 무기삼아 대화를피하곤 했다.


그런데 아내가 먼저 장기를 사서 함께 두자고 했다. 조금 생뚱맞긴 했지만 장기를 보니 옛 생각에 반갑기도 하고 이러한 취미를 통해 부부 사이의 대화를 이끌어내려는 아내의 행동이 기특하기까지 했다.


그때부터 아내에게 장기를 가르쳐주면서 우리는 많은 대화를 했다. 그 과정에서 박장대소를 하니 엔돌핀이 솟았다. 지나가는 이들도 무슨 좋은 일이 있어 손뼉 치며 큰소리로 웃으며 화목해 하는지 궁금해 할 정도였다. 그 폭소는 장기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아내의 엉뚱한 장기법에서 나오는 게 대부분이었다.


장기판을 사이에 두고 오가는 웃음과 대화. 굳이 장기가 아니더라도 부부가 간단히 할 수 있는 오프라인 게임이나 놀이도 좋다. 남편 혼자서 컴퓨터 앞에 앉아 뿌연 담배연기 속에서 장기나 바둑이나 장기를 즐기는 것보다 아내와 마주하며 많은 대화와 웃음이 오갈 수 있는 오프라인 전통 장기나 놀이가 더 좋지 않을까.


건강도 챙기고 대화도 즐기고


경기도에서 시청에 다니는 김상현씨(42)는 퇴근 후 아내, 아이들과 함께 한 시간 동안 파워워킹을 한다. 파워워킹은 양팔을 힘차게 흔들면서 걷는 운동으로 요즘 학교 운동장이나 공원 등을 보면 삼삼오오 무리지어 이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공무원인 김씨는 비교적 이른 시간에 퇴근을 하는데 저녁 식사 후 TV나 보고 잠자리에 드는 무료한 일상이 보기 싫어 아내 진혜정씨(39)가 남편의 손을 잡고 인근 학교 운동장으로 나와 운동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귀찮아하던 남편도 아내의 적극적인 권유에 능동적으로 변했다. 넓디넓은 운동장을 한 시간 동안 아무 말 없이 걸을 수는 없는 일. 아내 진씨는 먼저 남편에게 끝말잇기를 시작했다. 사실 이 부부는 아이들 교육에 관해서는 대화를 종종 나눴지만 부부간의 사랑이나 다른 주제의 대화가 거의 전무했다. 아내가 운동하는 동안 끝말잇기라는 가벼운 게임을 통해 부부 사이에 할 수 있는 새로운 대화법을 시도한 것이다.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놀고 있다)


학교/교무실/실내화/화상고/고두심/심사숙고/고드름/름? 름…, 름름한 진혜정 여사/

하하하! 호호호! 그런 게 어딨어? 그리고 '름름'이 아니고 '늠름'이지. 순 엉터리야. 호호호"


배꼽 빠지는 웃음과 함께 이 부부의 대화는 끝이 없다. 요즘에는 파워워킹을 하면서 연애시절 이야기를 한다. 옛 이야기를 하니 첫사랑, 풋사랑에 대한 기억이 새록새록 하고 이 때문에 분위기 좋은 밤이 여러 날 계속된다고 한다.


대화를 나누지 않고는 무료해서 도저히 할 수 없는 운동 파워워킹. 대화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가정이 있다면 오늘 저녁 당장 아내 혹은 남편의 손을 끌고 가까운 학교 운동장으로 나오라고 권하고 싶다.


마주보며 하는 대화가 전부는 아니다 - 미니홈피 이용한 무언 그러나 사랑의 대화


유치원생 아들과 다섯 살 난 딸을 둔 신승현, 박정미씨는 서울에서 맞벌이를 하는 30대 중반의 부부이다. 낮에는 유치원과 놀이방에 각각 맡기고 그 외 시간은 시어머니가 아이들을 돌본다.


퇴근하면 둘다 아홉시가 넘다 보니 대화할 여건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들은 독특한 방법으로 서로를 보듬는 대화를 나누고 있다. 남편 아이디로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가입한 이 부부는 게시판에 각각 '남편에게 하고픈 말', '아내에게 하고픈 말'이라는 메뉴를 만들었다.


집에서는 시간도 없고 또 아이들과 어머니 때문에 편하게 할 수 없는 대화를 미니홈피 게시판을 통해서 하고 있다. 누구든지 먼저 하고 싶은 말을 털어놓으면 댓글을 통해 화답한다. 다투기라도 하면 먼저 말 꺼내가 서먹해 며칠 가는 경우도 있지만 게시판에서는 서로 생각할 시간도 있고 누구라도 먼저 얘기를 꺼내놓으면 부부싸움도 금세 풀어진다.


아내에게 하고픈 말 : 여보 아침엔 신경질내서 미안해. 사실 당신 때문에 화낸 건 아냐. 요즘 회사일이 잘 안돼 스트레스가 쌓였는데, 공연히 당신한테 갔나봐. 그러니 화 풀어요^^

댓글 : 아냐. 당신 회사일 복잡한 거 뻔히 알면서도 내 마음이 넓지 못했어. 내가 더 미안해. 용서해주라. ^*^ 여보 그런 의미에서 오늘 근사한 데서 모처럼 외식이나 할까? *^^*


웃는 모양의 이모티콘만 봐도아내와 남편은 아침에 언짢았던 마음이 금세 풀린다. 인터넷 공간에서만 가능한 무언의 대화법이 이처럼 부부간의 사이를 돈독히 하고 있다.


위와 같은 사례 말고도 찾아보면 부부가 함께 하는 취미생활을 통해 대화가 끊이지 않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력하는 부부들이 많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밖에서 친구들과 만나면 말이 무척 많아지는 아내와 남편들이 정작 집에 들어오면 무표정이 되고 만다.


친구들과의 대화보단 부부 사이의 대화가 더 중요하다는 걸 부부 자신들도 잘 알고 있는데도 말이다. 대화를 나눌 환경이 안 되고 관심사나 생각이 달라서 대화를 할 수 없다고 하는 부부들도 많은데, 한평생 같이 살아갈 부부 아닌가?


가화만사성(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된다)이라는 말이 있다. 집안이 화목하려면 먼저 부부 사이에 대화가 오가는 가운데 부모와 자녀들 사이에서도 웃음이 끊이질 않아야 하는 것이다. 즉 화목은 부부 사이의 대화가 시초인 만큼 서로가 공유할 수 있는 취미 활동을 통해서라도 끊임없는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부부의 사랑을 돈독히 하는 팁 몇개>


▶  잠자기 전 상대방의 귀에 밀착시켜 다정한 말을 속삭인다 - 이렇게 되면 귀가 간지러우면서 웃음이 나고 계속 하다 보면 야릇한 분위기가 연출돼 부부 사이가 더 끈끈하게 된다.


▶ 취침 전 남편 혹은 아내의 배나 등을 손으로 쓱쓱 문질러준다 - 아기에게 '쭉쭉'하듯 부부들도 부드럽게 마사지를 해주면 기분이 좋아 잠도 잘 올 뿐 아니라 따듯한 손길 때문에 부부 사이 정과 사랑이 더욱 돈독하게 느껴진다.


▶ 공원 같은 공공장소에서 남편이 아내를 업어준다 - 아내를 위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과시할 수 있는 기회. 사랑이 확고하다면 이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 출근 길 가벼운 뽀뽀보다 깊은 포옹을 한 상태에서 서로의 어깨를 두들겨 준다 - 엄마 아빠가 이렇게 사랑하는 모습을 늘 보여주면 자녀들의 정서, 인성교육에도 좋을 것이다.


▶ 연애시절 사진을 부부가 함께 자주 들여다본다 - 그동안 권태로운 분위기더라도 연애시절 사진을 들여다보면 그때의 감정이 되살아나 분위기 좋은 밤을 보낼 수 있다 /윤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