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국무총리도 기자인데요 뭘."

그루터기 나무 2006. 12. 21. 23:31

 

ⓒ 윤태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중엔 정치인들이 적지 않다. 한명숙 국무총리를 비롯, 이부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최재천 임종인 의원 등이 모두 시민기자들이다. 그 중 가장 활발한 글쓰기를 하고 있는 정치인이 바로 정청래 의원이다.

그런데 그가 지금까지 쓴 글 중 3분의 1이 생나무다. 국회의원인데도 특별대접을 전혀 못 받고 있는 것이다. '울컥' 하는 마음에 글쓰기를 그만 두고 싶은 마음도 들 것 같은데, 그는 아주 꾸준하게 글을 쓰고 있다. 게다가 자신이 속한 국회 문화관광위 관련 기사 외에 사는이야기 기사도 이따금씩 올린다.

정치인이자 시민기자인 정청래 의원. 이런 그의 이중 생활(?)을 가족들은 전혀 모른다고 한다. 게다가 주변 사람들조차 '정치인 정청래'가 '시민기자 정청래'인지 모른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과연 기사 소재를 어떻게 찾고, 어떻게 글을 쓰고 있을까. 그를 만나 국회의원 정청래가 아닌, 시민기자 정청래의 일상을 들여다봤다.

다음은 그와 나눈 대화 전문이다.


 

-아들에게도 기자 등록 권유해볼까?"

- 어떻게 시민기자로 등록하게 됐나. 누가 권유했나?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가 근무했던 월간 <말>지를 창간 때부터 지금까지 구독하고 있다. 젊은 날 민주화 운동하다 투옥됐을 때도 <말>지를 구독했다. 그 후 오 대표가 집필한 책을 읽었고, 지난 2002년 시민기자로 가입했다. 진보 성향의 새로운 매체 탄생에 무척 관심이 많았다. 따로 권유한 사람은 없었고 처음에는 잘 몰라 사이트를 헤매다가 스스로 기자회원 등록하는 방법을 알게 됐다."

- 시민기자 활동에 대해 가족들 반응은 어떤가.
"아내는 내가 시민기자라는 걸 모르는 것 같다. 아이들도 아직 어려서 모를 것이다.(<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중에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이 있다고 말해주자) 막내아들이 초등학교 4학년인데, 논술 공부 차원에서 권유해볼까 한다. 내가 '생활정치 네트워크 국민의 힘(이하 국민의 힘)'에 있을 때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이 그 사이트 게시판에 종종 짧은 글을 올리곤 했다."

- 당내 반응은 어떤가. 동료 국회의원 시민기자들과 <오마이뉴스>에 대해 이야기 나누나.
"(국회의원 시민기자 명단을 기자로부터 듣고 난 후) 임종인·최재천 의원이 올린 글은 종종 봤는데, 한명숙 총리와 이부영 전 의원은 처음 알았다. 그들과 <오마이뉴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다. 나는 정식으로 시민기자 등록을 했다고 생각했고 임종인·최재천 의원의 경우 그냥 기자가 아닌 국회의원으로써 '특별기고'를 하는 걸로 생각했다.

처음에는 국회의원 신분으로 <오마이뉴스>에 글을 올린다는 게 부담이었지만 여러 의원들이 글을 올린다고 하니까 안심이 된다(웃음)." (그러면서 기자에게 한명숙 총리도 요즘 (총리 취임 이후) 글 올리느냐고 물었다.)

- 기사 쓰느라 본래 업무에 소홀한 적 없나.
"의원회관이나 집에서 쓰기 때문에 업무와는 상관없다. 또한 글쓰기가 의정활동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오마이뉴스>를 비롯해 홈페이지 및 당 게시판에 여러 글을 올리다보면 법안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가 많다. 업무에 큰 도움이 된다."

"악플? 스트레스 풀면 국민들도 좋지 않나"

- 글은 어떻게 쓰는 편인가.
"먼저 제목부터 생각하고 글을 쓴다('남들도 다 그러지 않느냐'고 기자가 반문했다). 독수리 타법인데 1시간이면 한 꼭지 쓴다. 초고가 곧 탈고다. 그래서 오탈자가 종종 발생하는 것 같다. 그런데 나중에 확인해 보면 편집부에서 오탈자는 기본적으로 잡아주는 것 같다."

- 기사 소재는 주로 어디서 얻나.
"모든 게 다 기사다. 내 직업이 국회의원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기사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특히 문광위 소속이라서 텔레비전을 보거나 웹서핑을 자주 하게 되는데, 그것도 하나의 소재다. 앞으로 그 소재들을 <오마이뉴스>에 잘 풀어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 지난 5월에 쓴 기사 중에 '악플'이 있던데, 혹시 봤나.
"(모를 것 같아 기자가 해당 기사를 알려줬다. '국회의원 배지 빼고 아빠가 되어 놀아줬습니다'라는 기사에 '유치원가서 분위기 망치고 왔군'이라는 악플이 달렸다) 신경 안 쓴다. 정치인이 하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모든 정치적인 계산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늘 동네북 아닌가. 악플에 개의하진 않지만 근거없는 것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 지금 이 인터뷰 기사에 악플이 달린다면.
"달리면 달리는 거다. 위에도 언급했지만 어차피 정치인은 동네북이다. 북 실컷 치면서 스트레스 풀면 국민들도 좋지 않은가(하하하)."

- '국회의원 배지 빼고…', 그 기사는 어떻게 쓰게 된 건가.
"매일 국회의원으로 바쁘게 살다가 유치원에 아빠가 참석해야 한다고 해서 가게 됐다. 아들과 놀다가 아빠로서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해봤다. 그 뒤 느슨한 마음으로 <오마이뉴스>에 글을 올렸다. 나중에 보니 유치원 선생님이 그 기사를 출력해서 유치원 교실에 붙여놓았다. 그래서 유치원 아이들에게 체험학습 차원으로 국회에 견학오라고 제안했고 9월 중 견학오기로 했다. 참 잘한 일인 것 같다."

- 정치인이 사는이야기 기사를 쓰면 격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나.
"권위주의가 싫다. 목에 '깁스'하는 거 좋아하지 않는다. 언젠가 한 매체에 육아일기를 실은 적이 있다. 놀이공원 갔다가 아들 녀석이 실례를 했는데, 남는 옷이 없어 그냥 집으로 왔다는 내용이었다. 정치인이 <오마이뉴스> 사는이야기 쓰는 거나 의정활동 하면서 업무 관련 글 쓰는 거나, 그냥 다 사람 사는 일 아닌가."

- 글 쓸 때 시민기자라고 생각하고 쓰나, 아니면 국회의원이라고 생각하고 쓰나.
"직업이 그렇다 보니 아무래도 국회의원 쪽이지 싶다. <오마이뉴스> 기사도 의정활동의 일환으로 보기 때문에 역시 국회의원 쪽으로 치우치는 것 같다. 그러나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오마이뉴스>에 글 올리면서 폼생폼사 하고자 하는 건 아니다."

"대학 시절 학보사 기자로 활동한 적 있어"

- <오마이뉴스>기사 보고 독자들이 국회의원임을 알아차리는 경우가 많은가.
"그렇게 많은 것 같지는 않다. 종종 <오마이뉴스>에서 글 잘 봤다는 지인들이 있는데 과시용으로 글을 올리는 게 아니기 때문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오마이뉴스>시민기자 활동이 과시할 목적이었다면 차라리 공중파 방송 등을 통해 기자회견 하는 게 낫다."

- 그렇다면 <오마이뉴스> 글쓰기가 개인적으로, 정치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나.
"그런 생각하면서 <오마이뉴스>에 글쓴 적이 없다. 그냥 좋아서 쓰는 거다. 꼭 알리고 싶은 것을 독자들과 나누는 차원이다. 그러나 국민들은 그렇게 보지 않을 수 있다. 이럴 땐 내 자신의 진실성이 저울질 당한다는 느낌이 든다."

- <오마이뉴스>에 얼마나 자주 접속하나.
"먼저 포탈사이트에서 뉴스를 본 후 두번째로 <오마이뉴스>에 접속한다. 하루에 평균 20분 정도 <오마이뉴스>를 보는데, 특정섹션보다는 주로 톱기사를 본다. 한 꼭지 읽는데 1분이면 된다. 종이신문은 거의 보지 않는다. 인터넷 검색 자체가 문광위 일이기도 하다."

- 인터넷 신문 <참말로>에서 논설위원을 했는데 원래 글쓰기를 좋아했나 보다.
"글쓰는 게 좋아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줄곧 문예반을 했으며 대학교 때 학보사 기자로 활동했다. 중학교 때는 단편 소설을 40매(200자 원고지) 정도 쓰다가 포기하기도 했다. 최근에 정치 이슈, 가정생활 등 2년여 동안 써온 글을 책으로 내라는 제안이 있어 출판사에 원고를 보냈다."

"'노무현 가상인터뷰' 기사는 정말 아쉽다"

- 시민기자 중에 기억에 남는 기자나 기사가 있나.
"김남희 기자의 <까탈이의 세계여행> 연재기사를 즐겨 읽는다. 월드비젼 한비야씨를 존경해 그 분의 여행 관련 책을 많이 읽었다. 김남희 기자를 좋아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내가 만약에 국회의원이 아니었다면 여행 작가나 칼럼리스트를 했을지도 모른다."

- 기사 송고 후 마음은 어떤가. 어떤 기자들은 끊임없이 기자 회원방에 들락거리는데...
"한 번 송고하면 끝이다. 두 번 다시 볼 수 있는 시간이 없다. 이번에도 SBS 월드컵 중계권 관련해 글 올려놓고 그날 오후 출국했다. 돌아와서 보니 기사로 채택됐음을 알았다. 생나무든 아니든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개인 홈페이지와 당내 게시판에 계속 글을 올리기 때문에 글쓰기는 이미 나의 생활이나 다름없다."

- 2002년도에 올린 첫 기사가 생나무(기사채택 안된 글)였는데 기분이 어땠나.
"당시 '노무현이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가상 인터뷰를 기사화했는데 생나무 처리됐다. 심혈을 기울여 썼고 나름대로 참신하다고 생각했는데, 채택이 안돼 속상했다. 아마 당시에 이인제, 이회창 등 실명을 거론한 게 문제가 됐지 싶다. 그러나 이런 경우 '오마이뉴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라는 주를 달아 기사로 채택했으면 좋겠다."

- 꼭 살리고 싶은 생나무 기사가 있다면.
"방금 말한 '노무현 가상 인터뷰'와 올해 쓴 '국회의원으로써 기쁘고 보람을 느낀다'는 글이다. 특히 후자의 경우 사명감에서 쓴 기사인데 너무 아깝다."

- 기사검토를 포함해 편집시스템 등에 대한 불만이나 건의할 사항은 없나.
"특별한 건 없다. 다만 요즘 <오마이뉴스>가 경영상 어려움이 있는 건지 자극적·선정적 제목의 글이 많은 것 같다. 예를 들어 법안 발의에 대해 여야가 치고받는 싸움 상황은 잘 보도하면서 그 법이 통과됐을 때 문제점이나 영향 등은 자세하게 취재하지 않는 것 같다. 이런 점이 개선됐으면 좋겠다."

- 앞으로 써보고 싶은 분야나 아이템이 있나. 관련 분야 말고 좀 부드러운 쪽으로.
"모든 게 소재다. 굳이 소프트한 쪽으로 이야기하라면 우리말 어원에 관한 책이나 유홍준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같은 책을 쓰고 싶다. 그런데 답사기를 쓰면 오마이뉴스에 올릴 수 있을까 의문이다. 수백 페이지에 달할 테니."

- 끝으로 <오마이뉴스>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가 많아진 것 같다. 요즘 경영상 어려움과 관련이 있지 않은가 생각한다. 그래서 더 강하게 요구 못하겠다."

 

 

정청래 열린우리당 의원 ⓒ 윤태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