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구멍난 아내 속옷' 글을 보면서...

그루터기 나무 2006. 12. 19. 07:54

 

구멍난 내 속옷. 한 3년은 입었을겝니다.

 

 

                                 양쪽 고무줄이 튕겨나온 내 속옷. 너무 오래 입어 헤졌습니다.  

 

 

미디어다음 블로그 기사에 올라와 있는 들풀님의 ‘아내의 구멍난 속옷을 보고’ 글, 잘 읽었습니다. 구멍난 아내의 속옷을 보며 남편과 자식들을 먼저 생각하는, 희생하는 아내의 소박한 모습을 꾸밈없이 표현해 많은 네티즌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들풀님의 글을 보면서 웃음이 나기도 하고 마음이 짠해오기도 했습니다. 세상 사는 일이 거기서 거기, 비슷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구멍난 펜티! 저도 입고  아내 또한 입기 때문이지요. 펜티 뿐 아니라 양말, 런닝, 양복바지 등 구멍난 옷가지는 많고 새 옷은 거의 사질 않으니 성치 않은 옷만 잔뜩 쌓여만 갑니다.


아내는 전국적으로(?) 알아주는 대단한 짠순이입니다. 2003년 한 인터넷 뉴스 매체에 짠순이 아내에 대한 투철한 절약상을 기사로 올린 이후 그것이 인연이 돼 지금까지 아내는 아홉차례, 저는 여덟차례에 걸쳐 TV 출연(전국방송)을 하기도 했습니다.  간단한 인터뷰가 아닌 최소 10분에서 최대 60분까지 주로 휴먼다큐멘터리 등에 절약을 주제로 해, 아내가 제가 주인공이 돼 출연을 한 것입니다. 이 정도면 아내의 절약상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겠지요.


노끈을 잘라 이쑤시개를 만들고 길을 가다가 쓰레기 중에 캐쉬백이 붙어 있는 과자 봉지를 만나면 그것을 챙기는 아내. 처음에는 이런 아내가 창파히가도 하고 그거 몇 십원, 몇 백원 모으고 아껴서 얼마나 부자 되려고 하나 하고 혀를 차면서 "제발 그냥 가자"며 아내와 싸우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어떻게 됐냐구요? 길거리 50원-100원 하는 과장봉지 캐쉬 보이면 제가 먼저 달려가 챙기게 되었답니다. 짠순이 아내와 5년 정도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더군요. 5년 살면서 세 번 이사했는데, 그때마다 왠 물건들이 그렇게 불어나는지요? 책상, 텔레비전 받침대, 쇼파, 옷장, 유모차, 아기 책, 아기 용품 등 남한테 얻은 중고물건들로 집안이 가득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급기야는 아기 방에 그 물건들을 놔 두는 창고로 써야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됐습니다.


이런 아내와 몇 년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동화가 되는 것입니다.


아, 위에 있는 펜티 얘기좀 더해 해볼까요? 다섯장의 제 펜티중 두장이 구멍 났을 때 아내는 버리자고 했습니다. 행여나 목욕탕이라도 가면 어쩌려고 그러냐면서 새 펜티 입을 것을 권유했지요. 저는, 목욕탕에 갈일도 없지만(집에서 샤워를 하니까요), 가더라도 창피한일 없고 누가 뚫어진 남의 펜티 눈여겨 볼일 있냐고 했지요. 아내는 그래도, 그런 거 입고 다니는 건 아내 욕먹이는 일이라며 새 펜티를 권했지만 저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펜티에 고무줄만 성하면 됐지 그까짓 구멍 무슨 상관이 있겠냐 했지요. 고무줄이 끊어지거나 엉덩이가 삐져나올 정도의 큰 구멍이 뚫린다면 버리겠지만 그 전까지는 입기로 한 것이지요. 물론 그런 모습이 아내를 욕먹일 수 있다는 생각을 안한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멀쩡한 기능(?)을 하는 속옷을 구멍 조금 뚫렸다고 그냥 내버려둘수는 없었습니다.


양말도 사정은 마찬가지 입니다. 구멍난 양말은 어지간하면 신지 말라고 아내는 말했고 저는 양말 목만 멀쩡하면 짝이 안 맞더라도, 구멍이 뚫렸더라도 신고 다녔습니다. 펜티보다는 상대방에게 노출이 쉬울 수 있겠지만 역시 개의치 않았습니다. 절약, 그런걸 염두에 두기 보다는 입고 신고 다니는 것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도 그렇게 좋은 형편은 아닙니다. 15평 짜리 빌라 전세 살고 있고 17개월 된 아기한테 고급 유제품 대신 천원에 석줄짜리 요구르트 사다 먹이고 있는 그저그저 평범한 가장입니다. 월급이나 한번 타면 횟집 가서 대게(킹크랩) 뜯으며 만족하고 맛있게 먹는 아들 녀석 보며 더할나위 없이 배부른 행복감을 느끼기도 하지요.

 

알뜰살뜰한 아내의 모습, 어떤 분들은 궁색한거지 그게 무슨 자랑이냐며 텔레비전까지 나오고 떠벌리고 다닌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궁색하거나 창피한것도 아니며 또 자랑할 일도 아닙니다. 그저 자신의 상황에 맞는 경제생활을 할 뿐이지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입니다.


돈에 대한 욕심, 물건에 대한 욕심 없는 사람이 세상에 없겠지만, 욕심 때문에 드러내놓고 그것들을 쫓다보면 삶에 있어 어떤 중요한 의미를 잊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그 중요한 의미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내의 구멍난 속옷을 보고’ 글에서 그 중요한 의미를 어렴풋이 나마 느낄 수 있었답니다.

 

 

SBS 생방송 투데이의 <신인간시대> 코너에 촬영하고 있는 아내. 주제는 절약이다.

 

 

아내 덕분에 저도 TV 출연을 여러번 할 수 있었습니다.  

 

 

노끈을 잘라 이쑤개를 만드는 아내의 모습이 전파를 탔습니다.

 

 

왜 절약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TV속의 아내.

 

 

TV에 출연한 아내와 제 모습입니다.

 

 

KBS 2TV <대단한 가족> 촬영중인 아내.

 

<주부, 세상을 말하자>에 출연해 발언하고 있는 아내와 제 모습입니다.  

 

화면발(?) 받는 아내

 

 

아내가 만든 '초코파이표' 후라이팬 덥개

 

 

뜨거운 국 그릇 받침대

 

 노끈 잘라 만든 이쑤시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