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막노동은 단 한번의 체험이 아닙니다-미디어다음 메인 뉴스를 보고

그루터기 나무 2006. 12. 11. 22:00
 

12월 11일 밤, 미디어 다음 주요 뉴스에 [아파트 공사장 잡부의 하루]라는 제목의 기사가 떴습니다. 아파트 공사장 막일에 대해 기사를 쓰기 위해 한 신문사 기자가 아파트 건설 현장의 일일 노동자가 돼  직접 체험하고 이를 토대로 건설현장의 애로사항을 기사로 썼습니다.


저도 건설현장에 대한 체험은 많습니다. 체험이라기 보다는 넉넉지 않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그곳을 누벼야 할 때가 많았습니다. 제대 직후가 바로 그때였지요. TV <삶의 체험현장>에서 나오는 것처럼 건설현장이든, 가락동 시장이든 삶의 장소엔 체험이 없습니다. 그저 삶뿐이 있을 뿐이지요.


미디어다음 주요기사를 보면서 저도 그 시절, 건설현장 즉 막노동 판에서 했던 일이 슬며시 떠올랐습니다. 그때 현장에서 겪었던 일을 가감없이, 서슴없이 풀어 놓겠습니다. 거지로 착각하고 동전을 던저주는 사람도 있었으니....


건설현장, 그 진땀 나는 열기 속으로 지금부터 들어가보겠습니다.

 

건설현장은 단 한번의 체험이 아니죠. ⓒ 윤태

 

 

저는 건설현장 중에서 학교 신축·증축 현장을 꽤 많이 누비고 다녔습니다. 작은형이 건설회사 현장소장으로 근무했고 나는 그 밑에서 잡부(이 세계에서는 '딸랭이' 또는 '딸라일꾼'이라고 칭함)일을 했습니다. 물론 방학이나 주말 아르바이트를 얘기하는 것입니다.


형이 현장소장이라고 해서 나한테 돌아오는 혜택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많은 작업반장들의 눈이 있었고 소장의 동생이란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더 열심히 일을 해야 했습니다.


그해 여름은 정말 뜨끈했습니다. 현장에서 하루에 1.5리터 페트병을 열 병 이상 마셔댔습니다. 1시간에 한 병꼴이다. 화장실도 갈 필요 없었습니다. 모두 땀으로 빠져나오기 때문이었습니다. 옷에는 새하얀 소금기가 지도를 그렸습니다. 웃옷을 벗어 물에 담근 후 그대로 입으면 20분 후에 모두 말라 뜨끈해졌습니다.


12시 점심시간입니다. 오이 냉국입니다. 식사시간은 3분이면 족합니다. 최대한 빨리 먹어야 1분이라도 더 쉴 수 있습니다. 오후 작업을 위한 30분의 낮잠은 필수입니다. 도로 옆 플라타너스 아래 자리를 잡고 최대한 편한 자세로 누웠습니다. 베개는 신고 있던 딱딱한 작업화입니다.


거지 중에 이런 상거지가 없습니다. 여기저기 구멍 나버린 청바지, 흰 티셔츠였다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새카만 반팔 티셔츠. 어디 이 뿐이랴? 얼굴엔 먼지, 시멘트 등이 땀과 함께 말라붙어 있고 팔뚝에는 할퀴고, 찢어지고 부어오른 상처들이 한 가득입니다.


자동차 소리, 매미소리 한데 어우러진 여름날의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어느새 잠이 듭니다. 아쉽기만 한 30여분. “일합시다”라는 반장의 지겨운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옵니다. 눈을 뜨고 몸을 세웁니다.


땡그랑 하며 동전 구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이게 뭐람?” 다름 아닌 500원짜리 동전 2개였습니다. “나 이거 참, 내가 그렇게 불쌍히 보였나?”하고 생각했습니다.


건설현장 옆 길바닥에 누워 있는 사람이면 뻔히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이란 거 몰라서 동전 던져줬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현재의 내 모습을 감안하면 그럴 만도 했습니다. 감히 이 복장으로 버스를 탈 수 있으며 반대로 점잖은 양복 입고 길바닥에 누워 있지 못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오후 작업시간. 약간 비틀거립니다. 잠이 덜 깬 탓입니다. 한 차례의 졸음이 쏟아집니다. 그러나 참아야 합니다. 정신 못 차리다간 못에 찔리든지, 각목에 머리 터지든지 꼭 사고가 발생합니다.


웬놈의 해가 저리 긴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견뎌야 합니다. 두 시간만 지나면 일당 5만원을 가져갈 수 있지 않은가. 직업소개소(용역회사)를 통해 나오면 일당의 10%인 5천원을 떼야 하지만 여기 현장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드디어 하루 일과가 끝났습니다. 오늘 입은 옷은 내일 또 입어야합니다. 아니 한달 내내 입습니다. 아무리 빨아도 현장 투입 10분이면 제 모습(?)으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다음날 축축하고 찌릿한 냄새가 나는 옷을 입으면 느낌이 몹시 안 좋지만 5분 후면 아무 느낌이 없어집니다.


이런 생활은 여름·겨울 방학과 주말마다 반복됐습니다. 어느 해는 방학 시작한 날부터 끝나는 날까지 일한 적도 있습니다. 등록금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생활비는 좀 그랬습니다. 군대까지 다녀온 녀석이 부모님께 손 벌려서야 되는가 하고 말입니다.


물론 군 생활 26개월 동안 부모님으로부터 지원받은 돈은 한푼도 없습니다.(휴가 나올때 차비 몇 푼씩 받았다)논산훈련소 입대하는 날 여비로 받은 10만원 이외는 말입니다.


여하튼 나는 대학 생활하면서 이렇게 생활비를 벌었습니다. 그 어떤 일보다도 혹독한 노동의 대가를 치르고 말입니다. 겨울방학 동안의 현장 모습에 대해 언급은 안 했지만 여름 못지 않게 힘든 게 겨울철 건설현장입니다.


현장 일을 하는 동안 나는 KBS ‘체험 삶의 현장’이라는 프로그램을 눈여겨보게 됐습니다. 연예인들이 출연해 하루동안 노동현장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입니다. 그런데 역시 그 프로그램은 한 번 ‘체험’해 보는 것으로 끝나버립니다. 체험이라는 타이틀보다는 ‘삶 또는 생활’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 입장에서 그들의 삶을 비춰볼 때 ‘체험 삶의 현장’은 너무 사치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일했던 현장에서 만난 사람 중 30년동안 작업반장을 하고 있다는 60대 초반의 아저씨는 힘이 아니라 요령으로 일을 하니 힘이 훨씬 덜 들고 효율적으로 일을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나는 하루 이틀 또는 한 두 달 건설현장을 누볐지만(물론 주말마다, 방학 때마다 또 만나지만) 작업반장은 현장이 바로 삶의 터전이기 때문에 느긋하게, 그러나 성실히 일을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것이‘생활’이라고 간단하고 쉽게 말합니다. 만약 나더러 현장일을 ‘생활’로 하라면 까무러칠 것입니다.


여름 분위기에 젖어 5∼6년 전의 ‘여름 이야기’를 꺼내보았습니다. 흥미있거나 의미심장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건설현장 사람들의 하루 일과를 스케치 해 본 것입니다. 다만 그들의 노동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를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최하류층을 일컫거나 비교할 때 ‘노가다 또는 막노동’ 운운합니다. 그러나 무엇인가를 다시 시작할 때(개과천선하거나 어려움을 딛고 다시 일어설 때)도 마찬가지로 재개의 일터로 상징되는 것이 바로 ‘노가다 또는 막노동’이기도 합니다.


건설현장이 ‘밑바닥 인생’이든, ‘처음부터 다시 인생’이든 간에 무엇인가를 재개하거나 어려운 그 속에서 어떤 희망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에서 건설현장에서의 노동은 가치 있는 것입니다.


종종 대전에 가면 저가 건설에 참여했던 초중고교 학교를 볼 수 있습니다. 맨 처음 터파기 공사부터 마지막 유리창 청소에 이르기까지 저가 열심히 뛰었던 학교에서 아이들이 뛰어 노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뿌듯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