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남의 눈에 눈물나게 하면 내 눈엔 피눈물 난다?

그루터기 나무 2006. 12. 5. 18:54

 

이번에는 처제차가 이렇게 긁혔습니다.

 

 

 

"남의 눈에 눈물나게 하면 내 눈에는 피눈물이 난다"고 누가 그랬던가.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엊그제 실제로 그런 일이 발생했습니다.

일주일 전에 '교통사고와 차 긁었다의 차이점'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다음 블로그에 올린 적이 있습니다. 처제가 집 앞 골목에 주차한 차를 빼면서 바로 옆에 세워진 차를 긁고 안절부절 못하고 당황했지만 마음씨 고운 차 주인의 배려로 기분 좋게 해결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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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은 잘 해결됐지만 엄밀히 따지면 처제는 그 차 주인의 눈에 눈물이 나게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엊그제 아침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사건이 또 터지고 말았습니다. 이번에는 처제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상황이 됐습니다.

그날 아침, 처 할머니께서 돌아가셔서 온 가족이 문상을 갈 참이었습니다. 처제가 사고 났던 그 자리에 시동을 건 상태에서 차를 잠깐 세워두고 물건을 챙기러 집에 들어온 사이 사고가 났다고 전화가 온 것입니다. 2분 정도면 물건을 챙겨 나올 수 있었는데 그 사이 누군가가 차를 긁은 것입니다.

뛰어나가 상황을 보니 처제가 며칠 전 남의 차를 긁어 해를 입힌 것보다는 훨씬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크게 찌그러지진 않았지만 후광등 측면은 깨졌고 바퀴 위쪽 범퍼와 뒷문도 꽤 긁혀 있었습니다. 비교적 덩치가 큰 레저차량이 이 사이를 무리하게 빠져나가려다 일을 낸 것이었습니다.

그 차량 주인은 거듭 사과하며 수리해주겠다고 명함을 내밀었습니다. 처제는 선뜻 말도 못하고 그저 제 얼굴만 바라보았습니다. 제 결정에 전적으로 따른다는 의미였습니다. 잠시 고민에 빠졌습니다. 며칠 전 일을 생각하면 좋게 해결하고 제 갈 길 가면 좋겠지만 그때하고는 피해 정도가 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긁힌 부분이야 크게 문제 안 됐지만 깨진 후광등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러나 자꾸 미안하다는 말을 하며 명함을 주려고 하는 그 차 주인의 행동에 제 마음 또한 이미 누그러져 있었습니다. 또 그냥 가버릴 수도 있는데 전화까지 해 준 차 주인이 고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괜찮아요. 원래 여긴 좁아서 차 대면 안 되는데, 잠깐 세워놓고 물건 가지러 간다는 게 이렇게 됐네요. 저희 잘못도 크니까 그냥 가세요."

저는 며칠 전 사고 때 손해를 입었던 차 주인이 했던 말을 그 차 주인에게 똑같이 했습니다. 그러자 그 차 주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도 그렇죠. 이 정도면 수리해야 할 것 같은데요. 나중에라도 연락주세요."

그러면서 자꾸 명함을 건네주려고 했습니다.

"괜찮다니까요. 얼른 가세요. 휴대폰에 번호 찍혔으니까 필요하면 연락드릴게요."

자신의 차로 돌아가는 차 주인의 뒷모습을 향해 처제가 나지막한 목소리를 말을 했습니다.

"아마, 전화 드릴 일은 없을 거예요."

그 차가 가고 나서 처제에게 서운하냐고 물었습니다. 처제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했습니다. 어차피 이곳저곳 찌그러진 데도 많고 어차피 타다 보면 또 상할 거라며 신경 안 쓴다고 했습니다. 운행하는데 지장만 없으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 살다 보면 이런 일 저런 일로 마찰이 생길 수 있고 이때 정당하게 자신의 권리를 찾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시콜콜 다 시비 걸고 이해관계 일일이 따져 문제를 풀어간다면 머리가 아파 세상 살기 힘들 것입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늘 말도 곱고,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말이 있듯, 서로 이해와 배려 더 나아가 베풂이 미덕이 일상화된다면 우리 사회는 더 밝은 미소를 지을 수 있겠지요.

이번 사건을 통해 배울 수 있었던 교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