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우리나라 최고의 재봉사는 바로 '장모님'

그루터기 나무 2006. 12. 3. 17:02
 

저희 장모님은 구로공단에서 25년째 재봉일을 하십니다. 원단(천)을 옷으로 만드는 일을 하십니다. 엄마가 만드는 옷은 백화점이나 지하철 상가 등에서 팔립니다. 유명상표는 아니더라도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부담 없이 사 입을 수 있는 그런 옷을 만듭니다. 비록 재봉사 자격증을 취득하진 못했지만 저는 장모님을 우리나라 최고의 재봉사라 여깁니다.


재봉기술이 없던 때 장모님은 그 회사에서 검수를 하셨습니다. 즉 다른 사람들이 재봉해서 만든 옷에 단추는 제대로 달렸는지 박음질은 제대로 되었는지 등을 살피는 일입니다. 그러다가 어깨너머로 재봉기술을 배우게 된 것입니다.


재봉일이 서툴던 그 때, 장모님의 손은 성할 날이 없었습니다. 재봉기 바늘이 손톱에 '따다닥' 세 번이나 박힌 적도 많습니다. 깨지고 피멍들기 일쑤이던 장모님의 손톱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재봉일이라는 게 하루 종일 앉아서 똑같은 작업을 하는지라 졸음이 오게 되고 결국 바늘에 찔리는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 일이 서툴러서 다치는 경우도 많지만요.


재봉일은 장모님의 생업이면서 취미이자 한(恨)을 풀어내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장모님께서 처음 재미를 붙이기 시작한 때는 밤이 새는 줄 모르고 공장에 남아 재봉 연습을 하셨다고 합니다.


장인어른과 다투어 속상한 날에는 건너 방에서 밤새 재봉기 돌아가는 소리가 났습니다. 요즘 일부 사람들이 속상할 때 먹거나 쇼핑을 하면 마음이 풀리는 것처럼 장모님도 재봉일을 하시면서 마음을 풀어내셨던 것입니다. 더 큰 의미로 한을 풀어내셨던 것이지요.


원인이야 어쨌든 결과적으로 장모님은 베테랑 재봉사가 되었습니다. 상가에 쇼핑을 가도 장모님은 옷가게의 옷을 허투루 넘기는 법이 없습니다. 어떻게 재봉을 했는지 유심히 살펴보시고는 집에 와서 그 기억을 더듬어 옷을 만드셨습니다. 처가집에는 원단이 아주 많았으니까요.


이쪽 계통에서 일을 하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옷 만드는 공장에는 원단을 120% 제공합니다. 남는 건 상관없지만 옷 만드는 도중 원단이 부족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버리는 원단을 이용해 장모님은 재봉연습은 물론 우리들의 옷을 만들어주셨습니다.


특히 여름에 집안에서 입는 옷은 거의 대부분 장모님께서 손수 만드신 겁니다. 99.9%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금도 처가집에는 장모님께서 만드신 옷이 한가득입니다. 대체로 산 것과 만든 옷이 반반입니다.


며칠 전 장모님께 한가지 부탁을 드렸습니다. 우리집 침대 머리맡에는별다른 수납장이 없어서 잘 때 TV리모콘, 안경, 휴대폰 등을 바닥에 내려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보니발에 밟혀 깨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는 잠자기 전 침대에서 수첩에 볼펜으로 끄적거리는 경우가 많은데 침대 위에 있던 펜이 이불을 더럽히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아내가 엄마한테 "엄마, 수첩도 넣고 볼펜도 넣고 리모콘도 넣고 네모나게 생긴 천 위에 이렇게 호주머니처럼 만들어서…"하고 두서없이 설명하며 수납장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한 것입니다. 방바닥에 손으로 대충 그리면서 말이지요.


장모님은 잘 모르겠다면서 그림을 그려오라고 했지만 저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옛날 분들 다 그렇지 않습니까? 입체적으로 보여주면서 설명을 해도 시원찮을 판에 그냥 땅바닥에 그리면서 설명을 했으니 말입니다. 공부를 많이 하셨다면 금방 이해하시고 그 모양의 물건을 만드실 수 있을텐데….


이런 일이 있은 지 하루 만에 처제는 친정에서 뭔가 가져왔습니다. 다름 아닌 어제 장모님께 아내가 대충 설명했던 바로 그 물건이었습니다. 너무나 짜임새 있고 쓸모가 많은 물건이었습니다. 더는 리모콘을 땅에 떨어뜨리지 않아도 되고 침대 이불 위에 볼펜 자국이 남는 일도 없게 되었습니다.


처제의 얘기를 들어보니 장모님은 그 날 아내의 설명을 듣고 재봉틀 앞에서 밤새 고민을 하셨답니다. 각고의 노력과 연구 끝에 이처럼 훌륭한 물건을 만드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 물건을 받아보며 무척이나 기뻐할 아내를 생각하셨을 장모님을 떠올리니 가슴이 징해져왔습니다.


아무리 비싸고 좋은 옷을 사 입어도 장모님께서 만들어주시는 옷보다는 포근함이 덜 합니다. 장모님이 만드신 옷을 입고 있노라면 마음이 푸근해짐과 동시에 편안해짐을 느낍니다. 거칠고 엉성한 옷감이지만 보드라운 장모님의 숨결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장모님의 숨결이 느껴지는 따뜻한 물건들 일부를 보여드릴까 합니다.

 

장모님


 

커다란 쿠션도 만들어 주셨습니다. 주로 아기가 이 위에서 뒹굴며 놉니다.

 

 

 

침대 옆에 놓인 수납장?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렇게 쓸모가 있지요.

 

 

장모님께서 만들어주신 옷과 방석

 

 

장모님께서 만들어주신 커텐

 

 

 

장모님께서 만들어주신 커다란 방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