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초등학교 1학년 아이의 순수함에 반하다

그루터기 나무 2006. 12. 6. 12:51

 

 

저는 한 교육회사에 근무하며 가정을 방문해 아이들과 토론식 독서 논술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대상은 유치원에서 초등학교 6학년까지인데, 2~4명씩 모둠을 형성해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수업 받는 아이들은 다양합니다. 끼리끼리 짝을 맞춰 장난을 심하게 치는 아이들이 있는가하면 진지한 모습으로 논술 수업에 열중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고학년이든, 저학년이든 그것에 관계없이 성실한 아이들은 성실하고 장난하는 아이들은 여전히 장난이 심합니다.


제가 리더가 돼 아이들끼리 상호토론이 될 수 있도록 지도를 합니다. 토론이 끝난 후에는 쓰기 시간이 주어집니다. 아이들이 글을 쓰는 동안 저도 아이들과 똑같은 입장이 돼 글을 써보기도 하고 어떤 날은 교사용 교재를 살피며 다음 수업을 준비하기도 합니다. 간혹 어떤 날은 열심히 쓰는 아이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합니다.

어제(12월 5일)는 초등학교 1학년 여자아이 세 명 모둠 수업이 있었습니다. '발표할 친구?' 하면 서로 손을 들며 "저요, 저요"를 외치는데, 어느 친구부터 발표를 시켜야할지 곤란할 때도 있습니다. 아이들이 어리다보니, 먼저 시켜주지 않는다며 삐치거나 기분 나빠해서 수업 분위기가 흐트러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여하튼,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저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저요, 저요"를 외치는 1학년 여자아이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고 순진하며 천사 같은지 이루다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새 이가 나오는 시기라 앞니가 듬성듬성 빠진 상태로 해맑은 웃음을 짓는 아이들.

수업을 하다보면 가끔 아이들이 엉뚱한 질문도 합니다. 턱을 괴고 물끄러미 저를 바라보면서 말이지요.

"선생님, 결혼했어요? 몇 살이에요?

그렇게 물으면 나이도 알려주고 휴대폰에 저장돼 있는 아내와 아기 사진도 보여줍니다.

여하튼, 엊그제는 1학년 여자아이 셋 모둠 수업을 하는데, 수업 도중 한 아이가 뭔가를 불쏙 제 앞에 내밀지 뭐예요.

"이게 뭐니?"
"선생님 모습이에요."


'윤태 선생님' 이라는 제목을 붙인, 도화지에 연필로 스케치한 그 그림은 바로 수업을 하고 있는 제 모습이었습니다. 머리에 젤 바른 것부터 시작해 넥타이를 멘 모습까지 제 모습을 나름대로 그렸습니다. 그리고 밑에는 '지윤이 올림' 이라고 예의바르게 써 놓았습니다.

참으로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도화지에 제 모습이라고 엉성하지만 그래도 선생님을 생각해서 그려준 그 여자아이. 제 모습을 그리면서 그 아이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그냥 아무 생각없이 장난으로 그린 것일까요? 아니면 나를 가르쳐주는 '선생님' 이라는 마음을 갖고 진심에서 우러나와 제 모습을 그린 것일까요? 전자인지 후자인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아이에게도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우와, 선생님 모습 정말 잘 그렸네"라고 칭찬만 했을 뿐입니다.

이유야 어쨌든 제 모습을 그린 그 엉성한 스케치 그림은 제게 큰 감동과 기쁨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어찌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으며 오히려 아이의 습관적인 낙서의 일부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은 왜 이렇게 들뜨게 되는 것일까요?

그림을 전해준 그 아이, 그렇게 사랑스럽게 보일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그림을 허투루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구겨지지 않게 책 속에 넣어 집에 가져와서 그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보며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맑고 순수한 마음 언제까지 변함없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