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뉴스

이렇게 친한 이웃 보셨나요?

그루터기 나무 2006. 10. 27. 21:38

 

우리집 현관 문을 열어 놓으면 맞은편 혜진네 집이 들여다보인다.

 

 

이사한 후 빌라 사람들과 모여 '옥상반상회'를 했다는 기사를 올린 적이 있습니다. 일부 주민들은 반상회 통해 아파트 가격 담합한다고 하는데 새로 이사한 우리 빌라에서는 저녁 시간 옥상에 모여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이웃간에 얼굴 익히고 정을 돈독히 한다는 내용이었지요.

옥상 반상회 이후 여러 가지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 후 두 번이나 옥상에서 삽겹살 파티를 하며 더 친해졌을 뿐 아니라 몇몇 세대가 돌아가며 초대해 저녁식사와 다과회를 하기도 했습니다. 또래가 비슷한 남성들은 '형님, 동생'이라고 부르며 편하게 말을 놓고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됐습니다. 물론 제가 술을 거의 마시지 못해 썰렁한 건 있지만 이웃이 한자리에 모인다는 그 자체가 즐거운 일입니다.

아내들은 문자메시지 주고받으며 수시로 만나

여성들은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특히 나이가 고만고만한 4층 승범이 엄마(31), 2층 혜진이 엄마(30) 그리고 아내(32)는 무척 친해져 남들이 보면 꼭 10년지기 같아 보입니다. 승범이(8) 엄마는 우리 아들 새롬이와 같은 개월 수의 아기 서연이(11개월)가 있고 혜진 엄마는 혜진(6), 유진(3), 태준(7개월) 이렇게 3남매를 두고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세 집의 서연, 태준, 새롬이가 모두 1살로 친구가 된 셈입니다.

아내들은 수시로 모입니다. 하루에도 몇 차례나 아내 휴대폰에 문자가 옵니다. 4층 승범이 엄마나 맞은편 혜진 엄마인데 차 마시러 오라는 메시지입니다. 아내들이 만나면 늘 하는 이야기 있지 않습니까. 남편 흉도 보고 남편 애로사항도 이야기하고….

아내와 제가 영화라도 보려고 밖에 나가면 승범, 혜진 엄마가 동시에 "부럽다. 재미나게 보고오라"라는 메시지를 넣어 줍니다. 4층 승범이 아빠가 장미꽃이라도 한 송이 사가면 '긴급속보'로 전해져 혜진엄마와 아내 새롬엄마는 남편들을 보며 "승범 아빠 좀 닮아봐라"며 농담을 던지기도 합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만나 이야기를 나누니 각 가정의 일거수일투족을 꿰뚫을 정도입니다. 다음 날은 남편의 반응을 각자에게 보고하고 토론하고, 그렇답니다.

이 밖에 이웃끼리 함께하는 것 중 생각나는 몇 가지만 적어보겠습니다.

● 식사하다 밥이 좀 부족하다 싶으면 옆집으로 달려가 밥 가져오기
● 승범이 엄마 학교 급식 갈 때 동생 서연이 우리집 맡기기
● 주말농장서 따온 상추 등 야채 나눠 먹기
● 부침개, 밥반찬, 과일 등 나눠먹기
● 착불 포함한 택배 받아주기
● 저녁 지을 때 부족한 재료 얻어다 반찬 및 찌개 끓이기
● 혜진네 아이들 안방 드나들 듯 우리 집에서 놀기


오죽하면 혜진이 동생 유진이(3)는 자기 집을 구분 못하고 우리 집에 불쑥 들어올 때도 많겠습니까?

"어어어, 유진아 거기 우리집 아니야."

다급하게 유진 엄마 목소리가 들려오지만 아내는 그냥 두라며 우리 집에서 놀게 합니다. 놀다가 간식도 먹고 때 맞춰 오면 아이들과 식사도 합니다. 혜진네 아이들도 매일 자기네 집에서만 놀다가 우리집에 오면 재미있어 합니다.

사생활 침해? 생각하기 나름이죠

특히 맞은 편 혜진네 집은 우리 집과 동시에 현관문을 열어 놓으면 양쪽 집의 거실이 훤히 들여다 보입니다. 거실에 누워 휴식을 취하는 혜진 아빠의 모습도 보이고 막내 태준이 기저귀를 갈고 있는 혜진 엄마도 보입니다. 식사하는 모습도 늘 보이는 풍경입니다. 요즘엔 날이 더워 밤까지 현관문을 열어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찌 보면 사생활 침해가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이는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사생활 침해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아예 문을 열어놓지 않겠지요. 그렇다고 해서 "내가 문을 열고 싶으니 혜진네 혹은 새롬이네 현관문을 닫아 달라"고 부탁할 일도 아니지요.

거실 노출에 대해 서로가 약간의 불편한 점이 있어도 이를 감수하며 '터놓고' 지내다 보니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사실 처음에 서로의 거실이 노출됐을 때 특히 혜진 엄마가 보이면 좀 그랬는데 요즘은 거실에서 인사도 하고 아내는 혜진 엄마를 향해 손까지 흔들며 말을 주고받습니다.

아침 일찍 출근해 밤늦게 퇴근하는 처제는 이런 이웃간의 생활을 모를 뿐더러 이해하지도 못합니다. 지난 일요일, 양쪽 집의 현관문이 다 열린 상태에서 점심을 먹다가 혜진네 식구가 보이자 처제가 안쪽으로 몸을 숨기며 "어지간하면 문 좀 닫지?"하는 겁니다.

"글쎄, 우리는 괞찮은데... 처제, 한두 번 하다 보면 익숙해져."

이웃과의 거리 불과 2미터, 그동안 마음은 2km였다

옥상 반상회 이후 우리 빌라 사람들은 이렇게 지내고 있습니다.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어울려 공동체의식을 나누고 아이들은 친구가 생겨 정서 발달에도 도움이 됩니다. 이사오기 전 2년 동안 살았던 빌라에서는 단 한 집도 들어가본 적이 없는데 이곳 빌라에서는 네집, 내집 구분이 없을 정도입니다. 밥 먹다 말고 부족한 밥 가지러 옆집에 갈 정도이니 말이지요.

이웃과의 거리를 재보면 현관문 기준으로 2m. 그렇게 가까운 곳에 이웃이 있는데 그동안 마음은 너무 멀게 지냈다 봅니다. 만약 이사 오기 전처럼 이웃과 교류가 전혀 없었다면 아내는 새롬이와 함께 하루 종일 집안에서 지내며 '우울증'을 호소했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이웃과 너무 허물없이 지내는 건가요? 글쎄요? 외부 사람이 볼 때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빌라 사람들은 이것이야말로 이웃이 함께 사는 정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아내가 부침개를 하고 있다  ⓒ 윤태

 

 

이웃집 혜진네 집에 부침개를 갖다 주고 있다  ⓒ 윤태

 

 

우리집에 와서 놀고 있는 옆집 혜진이와 유진이  ⓒ 윤태

 

 

3층에 사는 서연이 ⓒ 윤태

 

 

우리아기와 3층 서연이는 15일 차이나는 친구이다 ⓒ 윤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