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세상

노숙자 생산 공장

그루터기 나무 2006. 7. 20. 11:27

얼마전 성남 8호선 단대5거리역 근처 길거리에서 누워 있는 노숙자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최근 한 방송에서 일명 ‘노예 할아버지’가 음식물 쓰레기를 뒤져 먹는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짠해졌습니다.

그래서 노숙자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시로 표현해 보기로 했습니다. 극도로 안 좋은 환경에서 살다가 질병, 추위, 굶주림 등으로 목숨을 잃는 노숙자가 있다는 뉴스보도가 종종 나갑니다. 이러한 현실을 아래 시에서 그려보았습니다. 또한 사오정, 이태백, 삼팔선, 오륙도 등 노숙자 되기 전의 단계와 이들을 양산하는 사회구조, 현상을 짚어 보았습니다.

그나저나 날씨가 더워지면서 더욱 더 많은 노숙자들이 길거리로 몰려 나올텐데, 걱정이네요.

노숙자 생산 공장

1

망치도 못도 필요 없는 한 평짜리 집 짓고
새우처럼 구부러진 그가 잠을 청한다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집도 덩달아 펄럭 춤을 추고
비가 오는 날엔 곤죽이 되는 집에서 그는 산다
한때 그는 큰 아파트에서 살았지만
지금은 1평짜리 신문지 펄럭 집에 산다

그의 점심 시간은 비참하게 즐겁다
휴지통에서 한 조각 베어낸 삶을 뒤져 꺼낸다.
반쯤 먹다 버린 햄버거 조각
행인들은 토악질을 뿜어내지만
그는 생존을 위해 그것을 섭취한다
생존을 위해서는 우위를 선점해야 한다
그도 예외는 아니다
햄버거 속 구더기와 경쟁을 하며 밥을 먹는
그의 눈앞에서 점령군들이 위협하고 있다
살모넬라군단, O-157사단, 포도상구균 연대가
그의 입구에서 군림하며 희망의 빛을 꺾어버린다
꺾여진 희망 사이로 생존의 욕망이 삐져나오지만
생을 지탱할 수 없을 만큼 가녀리다

“콜록콜록”

“아저씨 이거 먹으면 큰일 나요”

말귀를 못 알아듣는 그는 사오정이다

지나는 버스 유리창에 삶의 욕망이 잠시 얼비쳐 간 후
욕망과 햄버거 잔해를 동시에 토해낸 그가
굽은 새우처럼 바닥에 웅크리고 누워 있다
사오정 그는 점령군의 손에 죽었다

2

2008년 6월 14일
서울시 중구 봉래동 2가 122번지
노숙자 생산공장인 서울역 주식회사
간밤 객사한 사오정의 사체가 이곳으로 이송됐다
노숙자 생산 공장은
오늘도 무척 바쁘고 힘차게 돌아간다
주 재료는 전국의 사오정과 이태백의 사체다
종종 오륙도, 삼팔선 등의 찢어진 사체도 들어온다
이들 사체는 이 공장의 공정만 거쳐면
완벽한 노숙자로 재생되어 전국에 공급된다
요즘엔 재료 공급량이 많아 생산량에 과부하 상태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전 공정 수동시스템 노숙자 생산 공장인
서울역 주식회사엔 일자리가 없다
다만 젊은 공장장 한 사람만이
한 시간에 수십 명의 노숙자를 찍어내고 있다

 

 

 

단대오거리역에서 새우잠을 자고 있는 한 노숙자 ⓒ 2006 윤태

 

 

 

 

이 글은 오마이뉴스(잉걸)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