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여러분들 혹시, 시골 재래식 화장실 가보셨나요? 특히 항아리 묻어 만든 재래식 화장실요.
저 어릴적에 그런 화장실이었는데요, 가만히 보면 구더기들이 꾸물꾸물 위로 올라오잖아요. 올라오다
떨어지고 또 올라오고, 올라와서는 햇빛때문에 괴로워하고...뿐만 아니라 된장독에서도 구더기들이 꾸물꾸물 기어오르지요. 그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덧없는 인생인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풀잎에 맺힌 이슬처럼 해가 뜨면 금세 사라지고 마는 덧없는 인생, 그래서 인생을 종종 초로인생(草露人生 ) 이라고도 하지요. 어릴적 그 화장실을 떠올리며 초로인생이라는 시를 써봤습니다. 부제는 '된장독 구더기들의 고행, 고행' 입니다.
草露人生
- 된장독 구더기들의 고행(孤行), 고행(苦行)
윤 태
볕 따스한 오후
속이 환하게 나비치는 몸을 끌며 뭇 구더기들이
미끌한 그러나 준험한 된장독을 기어오른다
굼실굼실 세월을 아래로 밀쳐 내며
느릿한 해걸음보다
더 굼뜬 걸음으로 고행(孤行)의 길을 오르고 있다
하지만
서로를 밟고 쓰러뜨리며 올라와도 하릴없이 되돌아가야 할 길
둥글게 맴도는 우주의 항아리 속
중력을 세차게 거스르며 그러나 처절히 미동하는 生의 몸부림
아! 힘겹다
한나절 걸려 올라간 고행(孤行)의 길을
순식간에 둥근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마는
아! 미달된 시간아! 덜 익은 시간아!
돌려다오!
내 전 생애를 끌고 올라간 孤行의 길을
볕 사그라지는 오후
육중한 세상의 문은 굳게 닫히고
비록 질척거리는 잠자리일지라도
벅찬 내일의 고행(孤行)길을 위해
오늘밤은 꿈 잘 꾸어야지
가늘게 눕는다
볕 뜨거운 오후
고행(孤行)의 길을 거듭 걸어 고행(苦行)의 정상에
오르는 순간
앗! 내 몸을 사르는 저것
생글생글 웃으며
그러나 처참히 나를 짓이기는 저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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