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졸라 잘 부탁드립니다”
3년전 한국영화 <불어라 봄바람>에 나오는 주인공의 대사이다.
여주인공(김정은)이 남자 주인공(김승우)의 집에 세 들어 살기 위해 그들이 처음 대면했을 때 여주인공이 한 말이다.
당시
여러분들은 지하철이나 길거리, 극장가 등에서“졸라 잘 부탁드립니다”라는 표현의 광고문구가 담긴 영화 판촉물을 쉽게 접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영화 속에서 표현되는 욕이나 비속어는 문제 삼을 일이 아니다. 그러나 통신(채팅)언어에서 비롯된 ‘해괴망측한’한 언어들이
방송을 비롯한 언론매체는 물론 일상생활까지 끊임없이 파고드는 등 올바른 언어생활에 ‘빨간 불’이 켜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오락프로그램에 출연한 게스트들이 손뼉 치며 박장대소하는 데는 이러한 통신언어가 만들어 낸 신조어가 큰 몫(?)을 하고 있다.
한
주 동안 방영된 프로그램을 재조명하며 그것들의 잘잘못을 짚어보는 TV 프로그램에서도 ‘부적절한 방송 언어’문제가 종종 도마위에 오르지만 언어의
잘못 사용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통신언어의 잘못 사용은 일상생활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이와 관련해 지하철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내용으로 봐선 도와주고 싶은데...채팅에 빠져사는 듯한 느낌이 든다>
지하철을 타고 다니다보면 늘 접하는 풍경인데 그날도 마찬가지로 장애인 한 명이 사람들의 동정을 구하고 있었다.
애절한 사연이 구구절절 적힌 메모장을 사람들 무릎에 한 장씩 나누어주는데 그 메모에도 채팅 언어가 적혀 있었다.
“도와주세여”,
“좋은 하루 되세여” 등이 바로 그것이다. 어떻게 해서 그러한 글자가 거기에 적혔는지 정확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문장 끝에 붙은 “∼여”가 오자로
보이진 않았다.
만약 내 판단이 틀렸다면 그 장애인이 맞춤법을 잘 몰라 “요”를 “여”로 타이핑했다는 얘기가 되겠지만 솔직히
그렇게 보이진 않았다.
그렇다면 채팅을 주로 즐기는 청소년 중 한 명이 그 메모장의 문구를 작성했다는 얘길까? 결국 나는 그
메모장을 보며 그 문장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가 내려야할 역에 도착한 것을 깨닫고는 그것을 집어들고 급히 내렸다. 장애인을 도와야겠다는
생각보다는 그 문구의 의문점을 생각하는데 더 정신이 팔렸던 것이다.
나는 업무상 많은 이메일을 주고받는다. 그때마다 깜짝 놀랄
때가 많다. 공식적으로 요청한 자료에도 문장 끝에“∼여”를 쓰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물론 공식문서는 대부분 정상인데 이를 부가해 설명할
때 보내는 사람이 “∼여”를 넣는 경우가 흔하다)
또 흔히 채팅언어를 일상생활에 쓰는 경우는 ‘쌍 받침자’를 하나만 쓰거나 두개의
자음 중 하나만 쓰는 것이다. 예를 들어‘햇다(했다), 먹엇다(먹었다), 이브다(이쁘다), 업다(없다)’ 등이 그것이다. 물론 의미전달이야
되겠지만 이제 막 한글을 배우는 유치원생 또는 그들보다 어린아이들이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요즘 어린이들은 어려서부터 인터넷을 접하고 또
채팅을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유치원 교사가 “채팅언어와 국어는 다른 것이니 주의해 사용해야 한다”며 유치원생들에게 교육이라도 해야
한단 말인가?
그만큼 채팅이 만들어낸 해괴망측한 언어가 우리사회에 만연돼 있다는 얘기다. 오죽하면 한 학습지 회사에서 채팅언어로
가득한 초등학생의 일기장을 지하철 광고로 제작해 자사 학습지의 판촉 물을 만들었겠는가(이 광고는 올바른 국어(한글)교육을 위한 학습지
판촉물이다)
이 밖에 채팅 언어를 방송 등 언론매체나 일상생활에서 쓰는 경우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아마 채팅을 즐기는
학생들이나 직장인들은 필자가 굳이 많은 예를 들지 않더라도 채팅언어의 심각성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알고 있으리라 본다.
채팅언어로 인한 우리말의 잘못 사용은 일반 유행가나 영화처럼 한때 유행하다 금방 사라지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심각하다. “일시적인 현상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식의 위로 가지고는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잊혀져가는 순수 우리말이나 고어 등을 어려서부터 배우는
것은 고사하고 ‘괴 언어’로 까지 표현되는 채팅언어를 어린이들이 습득하고 있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형성된 이러한 비정상적인 언어 때문에 과연
국어 문법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실제로 한 신문기사에서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에게 받아쓰기를 시켰을 때 상당수
학생들이 채팅 언어를 그대로 옮겨 쓰고 그것이 올바른 표현인 줄 알았다는 최근의 신문보도는 우리말 파괴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말이 좀 어려운가. 국어사전을 편찬하는 언어학자가 아니고서는 우리말의 정확한 쓰임을 아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쉬우면서도 결코 쉽지 않은 우리의 언어. 새로운 문화가 생겨날 때마다 늘 따라 다니는 문제이긴 하지만 채팅 등 잘못된 통신언어의
만연이 자칫 민족의 얼을 담고 있는 언어를 심각하게 파괴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혹시 모르겠다. 채팅언어를 일종의 ‘언어 발달’과정의
하나로 보는 네티즌이 있을는지.
<채팅사이트에 접속해 대화를 나눠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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