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뉴스

하루 5천원 벌이 할머니 취재한 이유

그루터기 나무 2007. 11. 8. 07:51

 맨땅에 좌판 벌인 할머니 우연히 만나다

7일(수) 오후 다섯시 반, 경기도 성남의 한 아파트 단지 담벼락 옆을 지나가는데 할머니들이 맨땅에 좌판을 펼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콩, 은행, 냉이, 토란, 깐마늘, 고구마 등을 팔고 계신다. 열심히 마늘을 까 소쿠리에 얹어 놓으신다.


앗, 그런데 푸릇푸릇한 냉이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된장찌개에 넣어 먹으면 푸릇푸릇한 냉이향이 좋겠지 생각했다. 말끔한 양복을 차려입은 나, 대뜸 쭈그리고 앉아 얼마냐고 물었다. 한소쿠리에 2천원이란다. 물론 한소쿠리 밖에 없다. 조금 비싸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푸릇푸릇한 냉이를 본지가 한참이라 맛난 된장찌개를 먹을 생각으로 2천원 주고 샀다.


“그런데 할머니, 이 냉이는 어디서 나신 거에요?”

“저기에서 캐온 거유.”


그렇다. 할머니는 냉이를 공원같은 흙이 있는 곳에서 손수 캐셨다. 그리고 은행은 길거리 지나다가 주워서 이 좌판에 펼쳐놓은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달랑 한소쿠리인 고구마는 어디서 났을까? 며느리가 고구마 한 박스를 사왔는데 썩을까봐 이렇게 가지고 나와 팔고 계신단다. 성남 모란장에서 사온것도 있고 손수 마련하신 것도 있다.

 


하루 5천원, 잘되면 1만원 벌어

나는 쪼그리고 앉아 할머니와 30분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나가는 사람 중 한명이 희안한 듯 내 모습을 바라보며 한 마디 했다. 젊은 사람들은 이런 할머니 좌판에서 잘 안사는데 멀쩡하게 양복입은 젊은 남자가 냉이를 사 들고 쪼그리고 앉아 있으니 말이다.


“할머니 하루에 얼마나 벌어요?”

“그냥 5천원, 잘 되는 날은 1만원도 벌유.”


이 할머니 연세는 올해 75세이다. 충남 아산에서 농사지으시다 몇 년 전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셔서 아들 내외가 있는 이곳 성남으로 올라오셨다. 평생을 농사 지으시다 갑갑한 아파트에 가만 앉아 있으려니 병이 날 지경. 그래서 이렇게 밖으로 나오신거란다.


하루에 5천원, 1만원 벌어 어떡하냐는 내 걱정에, 할머니는 “다 그렇지유.”라고 하신다. 돈 보다는 그냥 사람들 지나다는거 구경하고 이렇게 나와 있으면 치매도 예방된다고 하여 좌판을 벌였다고 말씀하신다. 그러시면서 은근히 토란 5천원짜리를 3천원에 줄테니 들여가라는 할머니 모습에서 뭔지 모를 정감이 느껴졌다.


처음엔 자식들 반대, 지금은 긍정적으로 변해

이곳에 처음 좌판을 벌일때 아들, 며느리가 반대했다고 한다. 용돈을 안드리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하면 아들 며느리 욕되게 하는거라고 말이다. 그러나 아들 며느리도 할머니의 고집을 끝내 꺾지 못했다. 그런데 나는 이 할머니의 아들 며느리가 괜스레 고마웠다. 이렇게 좌판을 벌이는 일이 자식들의 체면을 깎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할머니에게 삶의 희망과 살아가는 의미를 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농사꾼의 자식으로 살아왔고, 70이신 아버지도 많은 농사를 짓고 계신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 답답한 아파트에서 살라고 하면 단 이틀을 못견디고 병이 나 돌아가실 분들이다. 시골서 농사짓는 부모님이 계신 도회지 자녀들은 그 심정 십분 이해할게다.


이 좌판 할머니 바로 옆(30미터)에 큰 상가도 있고, 종합, 재래 시장 다 있는데도 굳이 이 할머니에게 가서 비싸게 냉이를 사고 30여분 동안 말동무를 해 드린 이유가 있다. 좌판에 벌여놓은 농산물과 할머니의 모습을 봤을 때 얼핏 우리 어머니같은 느낌이 들어서이다.


또한 글과 사진을 통해 시골에 부모님이 계신 도회지 자녀들에게 뭔가를 일러주고 싶었다. 뭐를 일러주고 싶었냐하면,


“여보, 시골에 전화드려야겠어요”


바로 이런 대화이다. 이를 위해 할머니를 취재한 것이다.


고향이 시골인 도회지 독자 여러분들, 지금 당장 시골 부모님께 전화드리고 싶지 않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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