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뉴스

학력 위조? 이런 사람도 있습니다.

그루터기 나무 2007. 8. 18. 13:35

 

갖은 노력으로 한국외대 대학원에 입학한 지인과 아내

 

 

 

세상에는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 많다. 어떤 사람은 그 어려움을 체념으로 받아들이고 자포자기 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반면, 어떤 이는 이를 계기 삼아 스스로 갈고 닦으며 자녀에게 그 어려움을 물려주지 않게 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학력 위조 파문 문제가 논란이되고 있는 지금, 나는 이와 관련한 지인 부부의 이야기를 풀어놓을까 한다.


지인이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을 때 그의 아버지 나이는 마흔 다섯. 1970년 대 초 농촌에서 힘든 시절을 보냈다. 너무나 많은 식구 탓에 변변한 먹을거리조차 없었던 그때, 어린 지인의 마음에도 자립을 해야겠다는 의지가 늘 불타올랐다. 가난을 대물림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형편상 대학에 갈 상황이 안됐던 지인은 곧바로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때 수습비로 받은 15만원을 현찰로 아버지께 드리고 큰절을 올렸다던 지인. 당시 아버지께선 말기 암이었는데 너무 기쁜 나머지 눈물을 흘리셨다며 과거를 회상하던 지인은 눈물을 글썽거렸다.


아버지는 그렇게 돌아가셨고 대신 3천만원이라는 빚이 지인에게 떠넘겨졌다. 어머니마저 연로하신 탓에 3천만원이라는 빚을 고스란히 지인이 떠맡게 된 것이다. 그때 일반 근로자 월급이 30만원정도였으니 3천만원이라는 돈이 얼마나 큰 것인지 짐작이 된다.


군대 휴가 나와서 만난 지금의 아내인 oo씨 역시 넉넉지 못한 가정에서 자라나 지인과 oo씨는 서로의 마음을 잘 이해했고 결국 결혼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교육열’이라는 공통의지가 굳게 자리하고 있었다. 교육을 통해 자아성취는 물론 가난의 대물림 또한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많은 빚에도 불구하고 이들 부부는 오히려 돈을 빌려 미국 유학길에 나섰다. 미국에서 아내는 일주일에 3일은 오전 아홉시부터 오후 아홉시까지 아르바이트를 했고 지인도 흑인들을 대상으로 옷 장사를 하면서 부부는 대학을 다녔다. 그때 번 돈으로 현지 학비와 함께 매달 한국으로 대출이자를 송금해야 했다.


미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귀국한 후에도 배움에 목말랐던 이들 부부는 한국외대 대학원 석사과정에 나란히 입학했지만 매 학기마다 6, 7백만원의 학비와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 7천만원이 늘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여기서 쓰러질 부부가 아니었다.


석사학위 취득 후 유명 학원에 취업을 한 지인은 그동안 유학을 통해 배운 영어 실력을 바탕으로 많은 학원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종로의 모 학원에서 학구열이 강해 더 많은 수강생이 몰려드는 강남 한복판의 외국어 학원으로 옮기게 됐고 어느 정도 생활의 안정도 되찾았다.


아내 OO씨는 지금도 학생신분이다. 얼마전 박사논문이 통과됐고 내년 상반기에 한국외국어대 박사과정을 수료하게 되면 경제적으로, 시간적으로 숨통이 트일 것이라며 부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사실 이들 부부는 지난 10년 동안학업을 하는데 청춘을 다 바쳤다. 휴일 날 외출 한번 제대로 한 기억도 없단다. 명절이나 돼야 이틀 밤 정도 푹 자는 게 숙면의 전부란다. 게다가 지인은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토익 교재 출간을 위해 곧잘 날을 지새운다고 한다. 아내는 외국어대에서 수업을 듣는 동시에 시간 강사로 강의를 하기도 한다. 학생이면서도 선생님이기도 한 아내. 그 남편의 그 아내, 부창부수(夫唱婦隨)라는 말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이들 부부이다.


학업에 지장을 주지 않으려고 결혼한 지 7년이 지나서야 아이를 낳았다. 친정어머니께 보내놓고 한 달에 한번 아들 얼굴을 잠깐 볼 수 있는 이들 부부. 혹여 엄마, 아빠보다 외할머니를 더 많이 따르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앞서기도 한단다.


그러나 이들 부부는 이러한 걱정이 단지 기우에 그쳤으면 하는 바람이다. 현재 아들에게 못다 전해주는 사랑을, 훗날 경제적 안정이 된 후에, 그때는 지금보다 몇 배 더 행복하게 아이에게 사랑을 전해줄 것이라며….



PS : 이들 부부는 지방대 야간 학부에서 대학 공부를 시작했고 낮에는 직장생활을 했다. 엄청난 노력끝에 유학을 가고 석, 박사 학위를 받고,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지금은 지인은 억대 연봉을 받는 영어강사가 되었다. 수많은 노력끝에 얻은 결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