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뉴스

돈이 하늘에서 떨어져??

그루터기 나무 2007. 8. 17. 22:22

허름하지만 소중한 할머니의 삶터 ⓒ 윤태

 

 

"할머니, 만약에 돈이 많이 생기면 뭐 하실 거예요?"

"무슨 돈이 생겨?"

"그러니까, 만약에 할머니한테 큰돈이 뚝 떨어진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돈이 왜 떨어져.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어?"

"…"

"할머니, 그럼 소원이 뭐예요?"

"소원? 많이 팔리면 좋지."

"…"


어느 토요일 오전. 종로 3가 인적이 드문 골목에 천막을 치고 과일과 군밤을 파는 올해 82세 할머니. 50년째 이 자리에서 과일을 팔고 있었다. 안에서 보면 여기 저기 찢어진 천막을 파란색 테이프로 붙여 누더기가 따로 없지만 할머니에게는 소중한 삶터였다. 할머니는 변변한 판매대도 없이 바닥에 라면, 과자 상자 등에 과일을 올려놓고 장사를 하고 있었다.


잡지사 기자인 수창이는 언젠가 이곳을 지나다 우연히 본 이 할머니를 취재하기 위해 아침부터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만 연세가 워낙 많은 할머니여서 취재하는데 애를 먹고 있었다. 그래도 수창이는 끈질기게 할머니에게 질문을 던졌다. 취재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회사에 들어가 꾸중을 들어야 했던 만큼 수창이의 마음은 바빠졌다.


“할머니, 최고 많이 파시는 날은 얼마나 돼요?”

“웅, 공치는 날이 더 많아. 최고 많이 팔린 날은 2만원이야.”

그래서 처음에 수창이가 할머니께 소원이 뭐냐고 물었을 때 '많이 팔리는 것'이라고 답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취재과정에서 수창이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과일은 할아버지가 경동시장에서 떼어오는데 할아버지의 연세가 올해 103세라는 사실이었다. 입을 다물지 못한 수창이는 설마하는 마음에 몇 번을 여쭈었지만 역시 할아버지 연세는 103세라고 말씀하셨다. 일제시대 ‘장군의 아들’ 김두한과 자주 어울렸다는 말씀도 빼놓지 않으셨다. 수창이는 할아버지를 만나고 싶었지만 바쁜 취재일정 때문에 탑골공원에서 쉬고 있다는 할아버지를 만날 수가 없었다.


할머니는, 겨울에는 오징어, 쥐포 등 건어물을 주로 판매하고 여름과 가을에는 과일을 파셨다. 종로 거리라서 떡볶이나 어묵 등이 인기가 있을 법 한데 요리를 한다는 게 할머니에게는 벅찬 일이었다.


누군가 도와주지 않느냐의 수창이의 물음에 할머니는 도움이 싫다고 했다. 그래서 건강한 청년이 20분이면 할 수 있는 장사준비를 할머니 혼자 하다보니 2시간은 넘게 걸리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남의 도움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바로 옆에 있는 해장국 집에서 할머니에게 날마다 점심을 무료로 갖다 준다고 했다. 해장국 가게 주인이 할머니가 꼭 자신의 어머니 같아 식사를 대접하고 있다며 할머니는 흐뭇해하기까지 하셨다 하신다. 1시간 남짓한 인터뷰 도중에 두 명의 이웃이 다녀갔는데 한 아저씨는 음료수를 갖다 드렸고 건너편에서 가게를 하는 아저씨는 과일 2천원어치를 사갔다.


드디어 인터뷰를 마치고 짐을 챙기는데 할머니가 관심을 가져줘서 고맙다며 가져가서 먹으라고 비닐봉투에 과일을 담기 시작했다. 당황한 수창이는 손을 내저으며 할머니와 실랑이를 벌였다.


"아이구, 할머니 이러지 마세요."


그러나 계속되는 할머니의 배려에 수창이는 과일을 몇 개 사기로 결정했다. 천원에 두 개 하는 자두 다섯 개를 봉투에 담고 5천원을 건네고는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 나왔다. 도움 받기 싫다는 할머니의 마음을 배려한 수창이의 행동이었다. 멀리서 할머니가 천원짜리 지폐를 흔들며 오라는 손짓을 했지만 수창이는 더 빨리 걸음을 떼었다.


"할머니 죄송해요. 만원짜리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수창이의 마음은 무거웠다. 지갑 속에 오천원밖에 없었던 터라 더 이상 도움을 드리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잡지사에 도착한 수창이는 서둘러 할머니에 대한 기사를 작성했다. 기사를 쓰는 동안 할머니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수창이는 눈시울이 불거졌다. 20년 전 황달병으로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났기 때문이었다.


퇴근 무렵 수창이는 팀장님에게 3만원을 꿨다. 그리고는 다시 종로 그 할머니의 삶터를 찾았다. 전봇대 뒤에서 할머니를 몰래 지켜봤지만 여전히 과일을 사가는 사람은 없었다. 할머니는 그저 물끄러미 지나는 사람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수창이는 준비해간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할머니에게 다가가 과일을 담기 시작했다. 수박, 토마토, 바나나 등 꾸역꾸역 담았다.


“할머니, 이거 얼마예요?”


수창이는 일부러 목소리를 낮게 깔며 할머니께 물었다.


“예, 3만 2천원인데, 3만원만 주소.”


할머니는 무척 신이 나 있었다. 한꺼번에 이렇게 많이 팔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수창이는 3만원을 내고는 그 자리를 떴다. 몇 발짝 걸음을 떼던 수창이는 도로 할머니의 천막 앞으로 다가왔다.


“할머니, 과일이 너무 무겁네요. 잠시 들를 데가 있는데 잠깐만 맡겨주시겠어요? 10분 있다가 찾으러 올게요.”

“그렇게 하시구랴.”

까만 비닐봉지 여러개를 내려놓은 수창이는 지하철역으로 들어갔다. 성남 집에 가기 위해 수서행 3호선 지하철을 탔다. 수창이는 할머니의 간절한 소원이 이루어진 것이 너무나 기뻤다.


 

위 내용은 과일 할머니를 취재한 이후 그 후일담을 사실 동화형식으로 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