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뉴스

지하철에서 오리 두마리 샀는데....

그루터기 나무 2007. 8. 13. 17:11

"아줌마 이거 얼마예요?"
"한 쌍에 삼천원."

"아니, 두 마리 말고 한 마리 말예요?"
"한 마리는 안 팔아요."

"예? 왜 안 판다는 말씀이에요?"
"오리는 혼자서는 못살아요. 반드시 암수 한 쌍이 같이 다녀야 살 수 있어요."
"그래요? 저는 처음 듣는 얘긴데……."

진철이는 아주머니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듣고 보니 그럴 듯하다는 생각이 들어 오리 암수 한 쌍을 샀습니다. 두 마리라고 해도 삼천원밖에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진철은 깊게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몸집이 워낙 작아 집에서 기르는 데 별 문제가 없을 거라고 진철은 생각했습니다.

돈암동 성신여대 입구에서 산 오리를 누나네 아파트까지 들고 오는 동안 진철은 행복한 상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오리가 낳은 알을 프라이 해 먹는 상상이었습니다. 그러나 행복한 상상은 아파트 현관 앞에서부터 깨지는 듯했습니다.

"어이, 그거 뭐예요?"

아파트 경비 아저씨가 진철을 불러 세웠습니다.

"예, 오리인데요."
"지금 갖고 들어가려는 거예요?"

"예, 그런데요. 무슨 문제라도……?"
"오리 털 빠지고 똥 싸고 그러면 주민들이 뭐라고 할텐데……."

"아저씨는 참~~~ 그럼 개는 아파트에서 어떻게 길러요?"
"개하고 오리하고는 다르죠. 여하튼 주민들 불만 안나오게 조심해 주세요."

진철은 오리를 못마땅히 생각하는 경비아저씨 때문에 좀 언짢긴 했지만 조심스럽게 키우면 아무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집에 도착한 진철은 누나 앞에 새끼 오리 두 마리를 풀어놓았습니다. 조카들도 오리가 신기한지 뒤따라다니며 오리 흉내를 내었습니다. 누나도 오리가 너무 귀엽다며 어떻게 오리를 사올 생각을 다했냐며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었습니다. 누나는 조심스럽게 진철에게 말했습니다.

"진철아, 그런데 너 어떻게 키우려고 그러니?"
"라면상자에 넣어서 베란다에 놓으면 될 것 같은데. 먹고 남은 밥 주면 문제없을 테고…."
"얘, 상자에 넣고 밥만 주면 알아서 크는 줄 아니? 아휴, 나는 모르겠다."
"……."
다음날 진철이 출근하고 난 뒤 누나는 한동안 오리를 쳐다보았습니다. 농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누나도 동생 진철이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어제 '나도 모르겠다'던 누나의 말은 진심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아파트에서 오리를 키우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그것을 간접적으로 알려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일주일이 지나자 오리들이 부쩍 자랐습니다. 먹성이 좋은 탓에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주는 대로 받아먹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다 보니 첫날 사왔을 때의 귀여움은 온데 간데 없어졌습니다.

날갯짓을 할 때마다 털은 물론 먼지까지 일었고 배설물 양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꽥꽥 하고 목청을 높이면 집안 전체가 울렸습니다. 조용히 있다가도 한 마리가 목청을 돋우면 나머지 한 마리도 덩달아 목청을 높였습니다.

"여보, 오리 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진철의 매형이 누나에게 물었습니다.

"누구 줄 사람 없어?"
"글쎄, 아는 사람들이 다 아파트 살고 단독주택이라고 해도 오리 키우기가 쉽지 않아서…."

"그렇다고 언제까지 여기에 둘 순 없잖아…."
"그렇긴 하지만 그렇다고 내다 버릴 수도 없잖아. 진철이도 그렇고."

"당신하고 처남 마음은 알지만 오리 때문에 가족들 건강도 걱정되고…."
"여보, 열흘만 기다려. 시골 보낼게."

그날 밤 화장실에 가다가 누나와 매형의 대화를 우연히 엿들은 진철은 미안하면서도 한편으로 오리를 생각하면 안타까웠습니다.

누나는 열흘 후 시골에서 서울 큰댁으로 할아버지 제사를 모시러 올라오는 아버지 편에 오리를 보낼 생각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던 진철은 오리를 보내야 하는 안타까움과 오리 때문에 피해를 보고 있는 매형 때문에 미안한 마음을 동시에 갖고 있었습니다.

열흘 후 두 마리 오리는 먼 곳으로 여행 떠날 채비를 했습니다. 아버지는 먹을 것이 많은 시골에서 키우면 될 거라고 하시면서 나중에 오리알 내어 먹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야 임마, 꽥꽥대지 말어. 시골가면 니들 뛰어놀 데도 많고 먹을 것도 많고 얼마나 좋은데…."

오리를 생각하는 아버지의 마음에 진철은 마음이 놓였습니다. 진철은 라면상자를 구해와 오리를 넣고 테이프로 터진 곳을 모두 봉했습니다. 그리고는 야구공 만한 크기의 숨구멍을 뚫어놓았습니다. 다듬고 남은 시금치와 상추를 넣어주는 일도 잊지 않았습니다.

진철은 출근길에 서초동 남부터미널까지 아버지를 모셔다 드렸습니다. 직행버스에 실려가는 순간까지 녀석들은 계속해서 구슬픈 울음소리를 내었습니다. 혹시 차멀미는 안 할지 몹시 걱정을 하는 사이 직행버스는 벌써 저만치 멀어져가고 있었습니다.

"잘 가거라, 우리 시골에서 다시 만나자. 건강하게 잘 지내야 한다. 꼭."

오리는 떠나고 진철과 누나 가족의 일상은 되돌아왔습니다. 냄새도 안 나고 꽥꽥 소리도 들리지 않아 좋았지만 마음 속의 허전함은 달랠 수가 없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시골에서 자라고 특히 동물을 좋아하는 진철을 잘 알고 있던 누나의 마음도 허전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운명이었습니다.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났습니다. 오늘은 아버지 생신 때문에 6남매 모두가 시골에 내려가는 날입니다. 진철의 마음은 벌써 시골 고향에 가 있었습니다. 오리들이 어떻게 변했나 그것이 너무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시골에 도착하자마자 진철은 자동차 문도 닫지 않고 곧장 오리가 있다는 집 뒤 토끼우리로 달려갔습니다. 밭에서 일하고 계시는 어머니, 아버지 모습이 흰 빨래 사이로 들어왔지만 진철은 오리 두 마리가 더 궁금했습니다.

사람 발자국 소리가 들리자 우리 안에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꽥꽥, 꽥꽥."

진철이가 빼꼼이 얼굴을 내밀고 우리를 들여다봤을 때 구유(말이나 소에게 먹이를 담아 주는 큰 그릇. 흔히 나무토막이나 돌, 시멘트 등을 이용해 만듦) 속에 주먹만한 흰 알이 보였습니다. 6개월 전 알 크기 만한 오리가 이렇게 커서 또 알을 낳은 것이었습니다.

"야, 그 녀석들 차에서 내리자마자 비틀비틀 대고 정신 못 차리더라. 그래서 죽는 줄 알았지. 그런데 집에 와서 풀어놓으니까 금방 기가 살아서 콩밭, 깨밭 들어가서 잎새를 다 따먹더구나. 허허."

밭에서 들어오시던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민철은 그 상황을 상상하며 미소를 떠올렸습니다.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날 것을 민철은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고맙다, 오리야. 건강하게 잘 살고 있어서…."

진철은 한동안 그곳을 뜨지 못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가 경험한 것을 동화형식으로 다시 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