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뉴스

말하는 동상...알고 보니

그루터기 나무 2007. 6. 2. 12:17

동필이는 길거리에서 동상처럼 꼼짝 안하고 서 있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마네킨처럼 얼굴에 잔뜩 화장을 하고 사람들이 지나는 큰길가에 동상처럼 서 있다가 이따금씩 사람들을 놀래 키고 시선을 끌기도 합니다. 동필은 주로 강남역에서 통신회사의 휴대폰 판촉 행사 때 동상 역할을 합니다.

간혹 동필의 갑작스런 행동에 깜짝 놀란 사람들은 속았다며 한 대 때리고 가는 경우도 있지만 이럴수록 동필은 마음이 흐뭇합니다. 자신의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날도 동필은 강남역 2번 출구 앞 인도에서 동상처럼 서 있었습니다. 그때 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엄마와 함께 동필의 앞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한참을 살피던 꼬마아이는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이 동상 살아 있는 거야? 움직이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글쎄, 돌로 만든 것 같기도 하고 마네킨 같기도 하고, 엄마도 잘 모르겠는데….”

그러자 꼬마는 동필의 모습을 더 자세히 실피기 시작했습니다. 팔을 만져 보기도 하고 얼굴에 바람을 불어 보기도 했습니다. 이때 동필은 양손을 머리 위로 올려 하트 모양을 만들어 꼬마를 향해 '아이러뷰' 라고 말할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꼬마 아이가 엄마를 향해 외쳤습니다.

“엄마, 이 동상 아저씨, 아빠하고 비슷하게 생겼다. 여기 봐 봐.”
“....”

엄마는 아이의 말에 대답이 없었습니다.

“엄마, 그런데 아빠 미국에서 언제 와? 올 때 바비 인형 사온다고 했잖아.”
“민지야, 아빠는 이 다음에 민지가 이만큼 크면 그때 오실 거야. 돈 많이 벌어서 바비 인형 큰 걸로 사다 주실 거야. 그때까지만 참자. 응?”
“아앙, 엄마는 거짓말쟁이야. 전에도 맨날 맨날 아빠 온다고 해 놓고는… 앙앙!”

울고 있는 아이의 손을 잡아 끄는 엄마의 눈이 반짝거렸습니다. 눈물이 흐른 것입니다. 동필은 민지라는 아이의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걸 눈치 챘습니다. 엄마의 손에 이끌려 돌아서는 민지의 눈물 서린 눈빛에는 아빠와 바비 인형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 찼습니다.

 


 

 

그림 조대희

 

 

그 후로부터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동필은 여지없이 길거리에 서서 동상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민지와 엄마가 또 그 앞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민지가 동필 앞으로 뛰어갔습니다.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동필 얼굴을 가리켰습니다.

“엄마, 여기 와 봐. 동상 아저씨가 그대로 있네. 정말 동상인가 봐.”
“어… 그러네.”

엄마는 민지의 손을 끌고 서둘러 그 앞을 지나치려고 했습니다. 저번처럼 민지가 아빠 얘기를 할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민지의 손을 잡으려고 동필 앞에 다가가는 순간 동필은 소매에서 무엇인가를 꺼내 민지 앞에 펼쳤습니다. 그리고는 그 자세로 꿈쩍도 안하는 것이었습니다. 여지껏 동상이라고 생각했던 민지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아이고, 깜짝이야. 그런데 이게 뭐지?”

동필의 손바닥 위에는 자그마한 바비 인형이 올려져 있었습니다.

“와! 바비 인형이네. 정말 갖고 싶었던 건데.”

민지가 인형을 집어들려고 하는 순간 동상의 양 손이 머리 위로 올라가더니 하트 모양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마치 로봇이 하는 것같은 말이 들려왔습니다.

“삐리삐리. 안녕 민지? 삐리삐리. 이건 아빠가 미국에서 보내는 선물이야. 삐리삐리. 바비 인형이야. 삐리삐리. 이 다음에 더 큰 바비 인형 사가지고 온다고 하신다. 삐리삐리.”

이 말이 끝나자 마자 동필은 양 팔을 내려 완벽한 동상 모습을 취했습니다.

“어? 동상 아저씨가 말을 하네? 그런데 어떻게 제 이름을 아세요?”

그러나 동필은 아무 대답도 없었습니다.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다시 동상이 되었습니다.

동필이는 일주일 전 민지와 엄마의 슬픈 대화를 듣고 바비 인형을 하나 준비했습니다. 언제 그 앞을 지날지 모르는 민지를 기다리며 일주일 동안 바비 인형을 소매 속에 넣고 있었던 것입니다.

 

 

 

위 이야기는 제가 목격한 것을 동화형식으로 쓴 것입니다. 강남역에서 판촉활동하는 모습을 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