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뉴스

어느 영어강사의 눈물겨운 '인생역경' 이야기

그루터기 나무 2007. 5. 29. 13:03

지난 11일 오전 서울 강남의 한 유명 영어학원에서 토플 강사로 일하고 있는 고훈철(51)씨를 만나러 학원 건물 4층에 올랐다. 깔끔한 연구실에서 인터뷰를 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텅 빈 강의실에서 기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홍시 두 개를 내주면서 "아침 안 드셨죠? 우선 이거라도 드세요"하며 친절을 베풀었다. 고훈철 강사는 그렇게 소박한 사람이었다.

그는 특별한 인생경험이 있다고 했다. 오늘날 자신을 존재할 수 있게 한 특별한 경험. 그 사연은 1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0여년 전 그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잘 나가던 학원 강사였다. 영어강사를 천직으로 생각하며 부지런히 돈을 모았다.

그런데 그에게는 한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그것은 사람을 잘 믿고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착한 천성을 지녔다는 것이다. 좋은 말로 사람 좋다고 하지만 요즘처럼 각박한 세상에서는 '영악하지 못하다'라는 말을 듣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고훈철 강사 


 

여하튼 그는 그 동안 번 돈을 기초 삼아 자신의 꿈인 학원건물을 짓기 위해 건설사업에 뛰어들었다. 건설사업은 나날이 번창해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모든 것을 잃어 버렸다. 서로의 믿음을 확인하며 마음과 마음을 함께 나눴던 한 신앙 지도자에게 사기를 당하게 된 것이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혀버린 것이었다. 착한 천성에 사람을 잘 믿는 성격 탓이었다.

본의 아닌 사업 실패의 후유증인 빚더미에 시달리던 그는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 결국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마시지도 못하는 깡소주를 두 병이나 마시고 한강 물 속으로 들어갔다.

10월 말 황량한 가을바람이 술에 취해 비몽사몽한 그를 자꾸만 깊은 물 속으로 끌어들였다. 이승에서의 버거운 삶을 모두 내던져 버리고 마음만 공중으로 날아오르려는 순간이었다.

고통 없는 천국이려니 생각하고 눈을 뜬 고 강사는 콜록거리는 기침과 함께 오물을 토해내는 자신의 모습을 느끼게 됐고, 여의도 병원 응급실임을 금세 알 수 있었다. 때마침 한강변을 거닐던 한 청년이 물 속에 완전히 잠겨버린 그를 끌어내어 병원 응급실로 옮긴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그는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났다.

한 신앙지도자의 배신(?)으로 좌절하다 죽음의 문고리까지 당겼던 그는 마음을 고쳐먹고 생명의 다시 준 그 청년의 은혜에 보답하기로 결심했다. 열심히 살아가는 것만이 생명을 구해준 은인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후 그는 다시 일어섰다. 새벽 6시 30분에 학원에서 첫 시간 강의를 시작했다. 새벽부터 무엇인가를 더 배우기 위해 졸린 눈을 비비며 열심히 살아가는 학생들과 직장인들의 모습은 고 강사를 자극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강의를 할 때는 '한강 투신사건'을 떠올리며 최대한 명랑하고 밝게 그러면서 재미있고 적극적으로 강의를 유도했다. 자칫 딱딱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토플 수업을 재미있게 이끌어감으로써 수강생들의 호응을 크게 받았고 '명강사'라는 위치에도 올랐다.

자투리 시간에는 영자 신문에 글을 연재하는가 하면 번역 일에도 매달렸다. 그에게 있어 잠은 사치에 불과한 것이었다. 어떻게 해서 다시 살아난 목숨인데 잠자면서 인생을 낭비할 수 있느냐는 것이 새로 태어난 그의 삶의 철학이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30억이나 되는 빚도 거의 다 갚았다. 그런가하면 현재 신용불량자인 그는 합법적인 방법으로 최근 2억원을 대출 받아 유익하게 사용했다. 100만원도 빌리기 쉽지 않은 신용불량자에게 2억원이라는 돈의 대출은 그의 신용이 어느 정도이며 또 세상을 얼마나 열심히 살아가는지에 대한 방증이기도 한 것이다.

앞으로 한 5년 정도 학원 강사를 하고 한 80세 정도가 되면 찐빵 모자 쓰고 무료 영어 관광 가이드로 일하고 싶다고 말하는 소박한 그.

어쩌면 <다음블로그> 독자 중에 혹자는 고훈철 강사의 이야기 특히 '한강 투신' 사건을 두고 "소설이 아니냐?"고 반문하는 이도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 있는 이야기 그대로를 옮겨 쓴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설령 '소설'이라고 해도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 번쯤 큰 위기나 좌절이 있게 마련이고 생을 놓아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특히 요즘처럼 살기 힘든 때는 포기와 좌절을 거듭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는 고훈철씨가 그랬던 것처럼 역경을 딛고 다시 태어난 마음가짐으로 삶을 힘차게 개척해나가는 그런 자세와 마음가짐을 굳혀야 할 것이다.

 

 

위 기사는 제가 <월간 아름다운 사람들>이라는 잡지사에 근무할 때 취재한 것입니다. 실의와 좌절에 빠져있는 모든 분들께 용기를 돋워드리고자 이곳에 다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