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뉴스

한강투신 직전 발길을 돌린 이유

그루터기 나무 2007. 5. 28. 15:15

경필은 그 날 새벽 유서를 썼습니다. 카드 빚 오천만원 때문이었습니다.

"여보 미안해. 우리 아영이 유치원 들어가는 것도 못 보고…, 부디 잘 키워주오. 당신과 아영이에게 너무 미안할 뿐이요.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는 나를 용서하오. 사랑해요."

경필은 걸어서 한강까지 갔습니다. 해가 뜨기 직전이었습니다. 경필은 물이 가장 깊은 다리 한가운데로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멀리 맞은편에서 엄마인 듯한 젊은 여자가 아영이만한 여자아이를 업고 엉성하게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경필은 이들이 지나가면 곧바로 한강 물에 몸을 던질 생각이었습니다. 경필 옆을 지나갈 때 그는 모녀의 짧은 대화를 우연히 엿듣게 되었습니다.

“엄마, 힘들지. 나 이제 걸어갈래.”
“안 돼. 해 뜨기 전에 도착해야 싱싱한 꽃을 볼 수 있어. 안 늦으려면 엄마가 너 업고 가야해.”
“히히히. 싱싱한 꽃들 빨리 보고 싶다.”

경필은 다리를 건너올 때 육교 난간에 걸린 '용산 야외 봄꽃 축제장 개장’ 이라는 플래카드를 본 일이 떠올랐습니다. 엄마와 딸아이가 그곳에 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때 무심코 모녀의 뒷모습을 본 경필은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딸의 두 다리는 없고 바지자락만 강바람에 날리고 있었습니다. 엄마 뒷짐엔 흰색 지팡이가 쥐어져 있었습니다. 앞을 못 보는 사람이었습니다.

두 다리가 없는 딸은 엄마가 힘드니 걸어가겠다고 하고, 앞을 못 보는 엄마는 서둘러 가야 싱싱한 꽃을 볼 수 있다며 서로를 다독이는 모녀.

경필은 모녀가 조금 전에 나눴던 대화와 아이의 웃음을 떠올리며 벗었던 구두를 다시 신었습니다. 눈물을 훔치며 집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그림은 대구에 사는 조대희 님이 그려주신 것입니다.

 

 

 

 

 

 

제가 <어른들을 위한 사실동화>를 쓰고 있는데요, 위 글은 창작입니다.

대부분 제 경험담을 바탕으로 사실 그대로 동화를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