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세상

언론이여, 맨발의 기봉씨를 그만 놓아주세요

그루터기 나무 2007. 3. 13. 22:50

 

 

지난해 8월 서산에서의 맨발의 기봉씨 모습 ⓒ 윤태

 

 

이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내며 또 어떻게 끝맺음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또한 이 이야기를 쓰는 자체가 잘하는 짓인지 잘못하는 짓인지조차 잘 모르겠다. 다시는 쓰지 않기로 결심했던 영화 실제 주인공 <맨발의 기봉이> 이야기이다.


지난해 5월 영화가 성공가도를 달릴쯤 실제 주인공 기봉씨가 쓰러져가는 집에서 쥐똥과 함께 생활하는 관련 기사를 처음 내놓으면서 한가지 바람이 있었다. 그 기사가 도화선이 돼 금전적이든, 정신적이든 그 어떤 것이 되던간에 기봉씨에게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포탈사이트을 타고 나간 기사는 큰 반향을 일으켰고 영화사에서 한 방송사 카메라가 지켜보는 가운데 다각적인 지원책을 속속 발표하기도 했다.


그 후로 나는 10여차례에 걸쳐 기봉씨를 취재해 기사를 올렸고 <미디어다음> 등을 비롯한 포털과 뉴스사이트에서 주요하게 다뤄졌다. 이번에는 지원이나 도움보다는 본능적으로 효를 실천하고 있는 기봉씨의 모습을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기봉씨가 돌연 강원도로 이사를 갔고 그 문제를 취재해 기사를 송고한 결과 <미디어다음> 댓글을 통해 기봉씨 동생과 서산 고북 마을 이장이 욕을 먹는 등 좋지 않은 일이 발생했다. 기봉씨 여동생도, 마을 이장도, 나도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식당에서 상업적으로 이용당하고 있다는 소문에 대해서도 식당 주인도 상처를 받았다. 그들이 어떤 상처를 어떻게 받았는지는 취재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시간은 지났고 잠잠해졌나 싶었는데, 3월초 기봉씨가 강원도 철원 모 초등학교에 입학한 사실이 방송사들을 자극했다. 몇일 전 SBS TV<순간포착 세상에 이런일이>에서도 방영됐고 남희석 최은경의 KBS TV <여유만만>에서도 입학하는 모습의 기봉씨가 나왔다. <미디어다음>뉴스에서도 많은 댓글이 달렸다. 그 학교에서 기봉씨는 유명인이 돼 있었다. 블로그 글을 통해 확인해보니, 여러 프로그램 제작진이 근처 모텔에서 투숙하며 기봉씨의 일거수일투족을 취재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그런데 엊그제 한 방송사 고발 탐사보도 프로그램에서 내게 연락이왔다. 기봉씨 관련 제보가 들어왔는데 그동안 기봉씨를 밀착취재 해 온 내 의견을 듣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는 더 이상 기봉씨 관련 기사를 쓰지 않을 것이며 기봉씨 관련 그 어떤 일에도 관여하지 않겠다고 대답했지만 해당 프로그램 작가는 30여분이나 전화통화를 하면서 나를 설득하려고 했다. 작가는 기봉씨가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수 있는지, 누구와 살면 행복할 수 있는지 등 기봉씨에게 도움이 되기 위한 기획의도라고 설명하며 이메일까지 보내왔다. 고발 탐사보도 프로그램에서 참 ‘희안한 기획의도’라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그런줄 알아야지.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이제는 그만 기봉씨를 놓아주자. 자연인으로 돌아갈 수 있게 놓아주자는 것이다. 그 프로그램에서는 어떻게 하면 기봉씨를 더 행복하게 할 수 있는가 그 때문에 취재를 한다고 하지만 어떤 결과물이 방영된다고 해도 기봉씨에게는 큰 도움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는 가까이에서 밀착취재를 하며 느낀 것이며 그동안 그 많은 기사를 쓰는 과정에서 알고 있는 그대로를 전부 다 기술할 수 없었던 그러나 말할 수 없었던 이유라고 하면 독자여러분들은 이해해 주실까?


다시 한번 고발 탐사보도 프로그램에 당부하고 싶다. 다른 아이템으로 바꾸면 안될까? 물론 그 방송사 프로그램의 본연의 업무이고 신중히 선정한 아이템이겠지만, 그래서 내가 감놔라 배놔라 할 처지는 아니지만, 위에도 언급했지만 어떤 형식, 내용 방영도 기봉씨와 주변 인물들에게 득보다는 해가 더 많을 것이다. 따라서 그동안 내가 쓴 기사에서는 못다 한 이야기를 해당 프로그램에 이야기해줄 수도 있지만 그러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이 글을 그 프로그램 작가 및 PD님께서 보신다면 재고하셨으면 한다.

 

 

 

고발 탐사보도 프로그램 작가가 내게 보내온 이메일 일부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