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눈물나는 방송작가 인생, 자료 조사원부터 시작해....

그루터기 나무 2007. 1. 28. 18:01

글 쓰는 일에 취미가 있거나 관련 학과 학생들은 종종 방송(구성)작가를 꿈꾼다. '프리'한, 그러나 막강 파워를 가진 구성작가의 매력에 빠지는 것이다. 그러나 막내작가(자료조사원)→꼭지작가→서브작가→메인작가에 오르기까지 넘어야 할 산은 높고 많다. 그 산에 오르지 못하고 중간에서 포기하는 작가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최근 기자는 한 독립프로덕션에서 기획팀장을 맡고 있으며 MBC <톡톡톡 오후 2시>라는 토크프로그램 메인작가로 활동 중인 9년차 베테랑 김혜영 구성작가(34)를 만났다. 자료 조사원 시절 '자료조사의 전설'로 통하며 능력을 발휘했던 그녀는 < VJ특공대 > <파워인터뷰> <사람의 향기 풀풀> 등 모두 16개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기획하거나 참여했다. 이번 김혜영씨 인터뷰를 통해 독자, 특히 구성작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하면서, 그들이 자신의 꿈에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새롬이 아빠 주>

 

 

 

김혜영 작가가 자신이 작업한 테이프를 보여주고 있다. ⓒ윤태



월 60만원 받았지만 내 아이디어 프로그램 반영에 재미 솔솔

 

- 구성(방송)작가라는 직업을 택한 동기가 무엇인가. 드라마 작가도 있는데
"지난 97년 KBS에 근무하던 후배 작가에게 무작정 이력서 한 장을 넣었다. 당시 작가 구인은 공채가 아니라 공개적인 수시모집이었다. 주로 방송아카데미 작가 과정 출신을 뽑는 것이 관례였지만 나라고 못하랴 싶은 배짱으로 이력서를 넣었다.

당시 내 이력은 열악한 환경단체에서 일당백으로 뛰며 잡지를 만들어본 것이 작가 이력의 전부였다. 이력서를 넣고 6개월 정도 기다리다 마음 접고 출판 일을 계속 하던 중 볼 것 없는 이력서가 흘러흘러 < KBS 파워인터뷰 >를 기획하던 제작팀에게까지 들어갔던 것 같다. 연락이 와서 대학생 아이디어뱅크 군단을 모집하는 데 의향이 있냐고 해서 기꺼이 응했다.

그때부터 작가 인생이 시작됐다. 나보다 어린 대학생들과 3개월 시한부 아르바이트로 프로그램 아이디어 회의를 했는데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아 나 혼자만 팀에 발탁됐다. 드라마 쪽은 아예 꿈도 못 꾸던 어린 시절이었다. 발로 뛰어 사람 만나고 종이 만지며 책 만드는 일이 즐거웠던 것이지 글을 창작해서 쓰는 것이 좋았던 건 아니었다. 내가 작가라는 사명감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당시에는 그야말로 무소속의 아이디어 뱅크였다."

- 그동안 진행한 프로그램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가 있다면
"지금까지 < VJ특공대 > <사람의 향기 풀풀> 등 모두 16개 프로그램에서 작가생활을 해왔다. 그중 < KBS 파워인터뷰 >가 내게 방송입문을 허락한 '빡센' 통과의례였다면 < KBS 환경스페셜 >은 방송 매커니즘과 구성작가의 길을 알려준 프로그램이라고 말할 수 있다.

<파워인터뷰>는 10명 남짓한 팀원 중에서도 내가 최고 막내였기 때문에 텃세에 적응하랴 일하랴 방송국 파악하랴 제정신이 아니었다. 월 60만원 내외의 박봉에도 그나마 견딜 수 있던 것은 내 아이디어와 의견이 프로그램에 반영되는 재미 때문이었다. 당시 패널이었던 박재동 선생님, 월간 < PAPER >의 정유희 기자를 비롯해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장관이었던 남해군수 등을 출연자로 모시는 등 나의 모든 인맥과 지인이 총동원됐다.

<파워인터뷰> 첫 회 '아우성'의 구성애씨 녹화가 있었는데 이날 세트가 늦어지는 바람에 방청석에 기말고사를 앞둔 대학후배들 100명을 밤새 세워 두기도 했다. 그렇게 산전수전 공중전을 인맥과 혈기 하나로 버텨냈던 자료조사의 열정은 곧 바닥을 드러냈다. 왜냐,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자료조사의 전설로 통하다

 

그러한 상황에서 다시 '배짱 이력서'가 힘을 발휘했다. KBS 3대 스페셜 프로그램 중 하나인 <환경스페셜>이 생겨나 한국 다큐멘터리 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킬 때였다. 그 프로그램에서 얼마나 일하고 싶었던지, 작가 자리도 없는데 매일 그 방을 기웃거렸다. 여의도에서 못 보던 새가 날아오면 <환경스페셜> 팀으로 달려가 '여의도에 황조롱이가 왔다'고 호들갑을 떨기도 했다. 최근 <세상을 말하다>라는 책을 낸 20년 현역 장해랑 PD가 당시 <환경스페셜> 팀장이었는데 방송 이력 한 줄(KBS 파워인터뷰)짜리 내 이력서를 보게 됐다. 그는 프로그램 진행비를 쪼개 '천방지축 김혜영'을 자료 조사 팀원으로 뽑았다.

당시 나는 팀의 분위기 메이커이자 '페이퍼 워크의 달인' '자료조사의 전설'로 불리며 1999년 초 KBS 교양국 자료조사 회장까지 맡게 됐다. 인터넷이 막 보급되던 시절, 누구보다 먼저 인터넷 사용법을 공부했고, 아침에는 친구 작가들에게 사용법을 알려줬다. 친구 작가들은 프린터나 복사기가 고장 나면 기술자 대신 '만능 자료조사'인 나를 먼저 찾았다."

하늘이 무너져도 방송은 나간다

 

- < VJ특공대 >를 인기반열에 올려놨다고 들었는데, 그때 활약상을 말해 달라.

"방송작가들에게 전투력 강화의 입문으로 알려진 < VJ특공대 >의 내레이션 작업은 초창기 < VJ특공대 > 기획 작가들이 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TV 동화 행복한 세상 >을 집필한 작가 이미애 선배는 이렇게 조언해줬다. '그림을 설명하지 말고 그림 속에 감춰진 이야기를 읽어라.' VJ 특공대 시절의 방송 뒷이야기는 너무나 많아서 책으로도 나왔으며 이 책에 나도 참여했다. 방송작가나 VJ가 꿈인 분들은 참조해도 좋을 것 같다."

- 도저히 못하겠다고 느낄 정도로 힘든 일(사건)이 있었다면
"대개 방송작가들은 '싸우면서' 산다. PD와의 전쟁, 산더미 같은 자료와의 전쟁, 섭외 전쟁, 새로운 아이템 찾아내기 전쟁, 뭐니 뭐니 해도 제일 힘든 건 역시 시청률 경쟁이다. 메인작가가 된 요즘도 아침인사는 언제나 '시청률 얼마 나왔니'로 시작한다. 동시간대 경쟁프로그램에 뒤졌을 때는 1분마다 변하는 '분당 시청률표' 추이를 보며 원인을 분석해내야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하늘이 무너져도 방송은 나간다'라는 무시무시한 원칙 속에 사생활을 담보 잡히기 일쑤다. 만삭이었던 방송작가 선배가 스튜디오 녹화 때 없어져 찾았더니 '잠깐 애 낳으러 갔다'고 한 이야기, 결혼하기 직전까지도 편집실에서 수백 개의 테이프와 씨름하다 금방 결혼하고 다시 온 선배의 이야기는 지금도 씁쓸한 전설로 남아 있다.

한 번은 아버지가 사고로 피를 철철 흘리며 응급실에 실려 가셨는데 방송하는데 방해된다며 딸인 내게 전화도 하지 말라고 가족들이 입을 모은 적이 있다. 아버지 딴에는 '어떻게 들어간 방송국인데…' 라고 생각하셨을 모양이다. 말씀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그 심정이 왜 그리도 서럽던지…, 비단 그 일뿐이 아니라도 방송 시간에 끌려 다니며 사는 방송작가의 삶이 너무 힘들고 버겁게 느껴진 적은 한두 번이 아니다."

 

- 반면 작가 되길 잘했다 할 정도로 보람 있었던 일은
"사생활도 반납하고 방송에 정열을 쏟은 덕에 실은 부모님 이하 가족 그 누구보다 일반 시청자들의 격려가 고맙게 느껴진다. 한번은 농사를 망치는 까치를 찍어 방송했는데 걱정을 덜어줘서 고맙다며 편지를 보내온 천안 배 과수원집 딸 민주에게 정성을 담은 답장과 방송본 테이프를 복사 해줬던 기억이 있다. 그랬더니 곧 이어 민주 부모님께서 커다란 배 한 박스를 보내셨다. 방송이 나간 뒤 출연자와 시청자들로부터 받은 전국팔도의 격려가 있어 작가 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회의중인 김혜영 작가와 그 후배들 ⓒ윤태

 



평범한 소재 방송으로 만들어내는 눈 가져야

- 작가에 대해 환상을 가진 지망생들이 많은 것 같은데, 이들에게 해줄 말이 있다면. 또 구성작가가 되기 위해 갖춰야 할 첫째 조건은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원고를 쓰는 일은 끊임없이 훈련하고 학습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구성작가의 자질이다. 그 능력을 탁월하게 검증 받은 현역 구성작가는 지금 불혹을 앞두거나 넘긴 대 선배님들이고 아마 손에 꼽으라면 스무 명 남짓 될 것이다. 그들은 대부분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다. 섭외 당하는 사람, 누구도 그들 앞에서는 결국 속내를 드러낸다. 이러한 능력을 바탕으로 그들은 평범한 일상 소재를 방송으로 만들어내는 눈을 가지고 있다.

말하는 것과 듣는 것을 두려워한다거나, 사물이나 사람을 대하는 특별한 호기심의 눈이 없다면 유능한 구성작가로 대성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구성작가의 자질은 그 으뜸이 내적인 성품과 외적인 성격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혼자 일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 소재는 주로 어디서 얻나
"멀티미디어 시대인 만큼 소재를 얻을 수 있는 곳은 무궁무진하다. 문제는 수많은 정보를 어떻게 새롭고 쉽게 만드느냐다. 오마이뉴스 같은 인터넷 매체에서는 각종 다큐멘터리 아이템을 많이 얻는다. 그러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구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반짝이는 아이디어는 혼자 있을 때 많이 떠오른다. 그 아이디어를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서 한편의 프로그램으로 만드는 것은 팀워크다."

넉 달 쫒아다녔지만 섭외 실패하기도

- 아주 좋은 소재였는데 섭외에 실패한 경우는 없나
"2002년 경북 봉화의 농부 작가이자 기인으로 통했던 전우익 선생님이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당시를 떠올리면 아련한 추억이 배어든다. 그의 집 마당에는 직접 심은 100그루의 나무가 있었고 넓은 기와집도 무척 정취 있었다. 빗물을 받아먹고 생활하며 자연인으로서 기인의 삶을 살았던 전우익 선생.

선생의 삶과 철학을 담으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한 번 내려가면 2박 3일 동안 여관 등에서 머무르며 선생을 설득하고 취재에 응할 것을 쫓아다니며 요청했지만 결국은 그의 앞에서 무릎 끓고 무엇인가를 열심히 들어야 했다. 서너 달에 걸쳐 대여섯 번 선생을 찾았지만 소용 없었다. 자연인으로 살아가는 그에게 있어 방송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듯했다. 결국 30분짜리 비디오테이프 여덟 개의 그의 영상을 담았지만 집에 앉아서 이야기하는 단순한 풍경에 그쳐 완성도 있는 작품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때 우리에게 이렇게 호통 치던 선생의 모습이 떠오른다.

'나를 어떻게 하려고 하지 마라'."

- 방송 출연 제의하고 인터뷰 하는 등 바람 넣은 후 돌연 취소, 연기돼 불만을 표하는 일반인들도 있던데, 다른 아이템에 밀린 것인가?
"만약 여러분이 방송국으로부터 출연 의사를 묻는 전화를 받았다면 어떤 프로그램이고 의도는 무엇인지, 그리고 그 프로그램에서 당신의 역할과 분량을 정확히 묻고 의사를 표명해야 한다. 이 사전 커뮤니케이션이 없으면 사실 출연을 약속했다고 볼 수는 없다. 출연제의와 인터뷰가 이뤄진 후에도 변경은 있을 수 있다. 프로그램은 언제나 시청자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정중한 사과와 다음을 기약하는 취소 전화는 늘 있는 일과다."

- 60분짜리 방송 대본 쓰는데 얼마나 걸리나? 토크쇼 같은 경우 대본 분량이 30여 페이지가 넘던데, 어떤 어려움이 있나
"60분짜리 다큐멘터리 대본의 경우 24시간하고 반나절 꼬박 걸린다. 토크쇼는 단지 대본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출연자들의 분위기와 멘트를 상상하며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화면을 보고 원고를 쓰는 다큐멘터리보다 재미와 집중력이 훨씬 더 요구된다.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 출연자의 경우는 방송 토크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사전 인터뷰에 따라 정확히 에피소드를 배분하고 묶어주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또한 카메라 위치, 스튜디오에 들어올 소품, 음악, 판넬, 사진, 자료화면 등 모든 것들을 염두에 두어야 하기 때문에 그 어떤 것보다 대본이 꼼꼼해야 한다. 대본이 재미없으면 녹화도 재미없다는 것이 토크쇼의 철칙이기 때문이다."

재밌게 사는 법 방송으로 만드는 게 꿈

 

- 작가 아닌 다른 삶을 생각해본 적 있나
"구성작가라는 직업이 밥벌이가 되기 시작한 건 불과 몇 년 전이다. 밥벌이가 안 돼 허덕거릴 때는 수도 없이 다른 직업을 생각했다. 그중 제일 하고 싶었던 건 선생님이었다. 학교 때 교직과목이 평균 D학점을 받는 바람에 포기해야 했던 선생님…. 충남 홍성에 사는 한 지인이 장애아 학교인 '다운이' 전문학교를 세운다기에 매월 만 오천 원씩 후원하고 있다. 나를 선생님으로 써준다는 조건부로 말이다.

사실 구성작가라는 직업이 밥벌이가 되기 시작하면서, 즉 내가 기획한 프로그램이 제값을 받고 돈이 된다는 것을 알면서 그 시너지효과는 참말로 무섭게 발휘되곤 했다. 10년을 한 우물을 팠으니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제는 다른 직업으로의 꿈은 밥벌이가 아닌 자원봉사나 취미로 돌렸다. 언젠가 제작하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신나는 즐거운 프로그램을 만드는 날, (식상한 표현 같지만)박수 받으며 떠나고 싶다. 그 날이 금방 오지는 않을 것이다. 괜찮다. 그때까지 또 신나게 밥벌이 프로그램 열심히 하면 되니까.

방송작가, 이렇게 이야기 해놓고 보니 참 괜찮은 직업 같다. 지금 이 시간에도 어두컴컴한 방송국 사무실 한 쪽에서 박봉으로 힘들게 일하는 수많은 막내 작가들에게 다시 한번 화이팅을 보낸다. 당신들은 정말 유능한 인재라는 사실을 언제나 잊지 말기를…."

- 끝으로 꿈이 있다면
"내 꿈은 재미있게 사는 법을 방송으로 만드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작가들이 주도해 만드는 환경전문프로덕션인데 시청자들이 심각한 표정 대신 재미있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줄 '재밌고 아름다운 환경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다. 앞으로는 이러한 소재의 프로그램이 화두가 될 것으로 예상하며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요즘 한창 작업 중이다. '감히 기대해도 좋다'라고 말하고 싶다."

 

 

편지를 꺼내 보여주는 김작가..ⓒ윤태

 

 

 

VJ 특공대 작가 시절 한 시청자(출연자)로부터 받은 감사의 편지란다. ⓒ윤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