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냉장고 없이 사는 '이 사람'

그루터기 나무 2007. 1. 21. 10:49

 

 

윤호섭 국민대 시각디자인과 교수 ⓒ윤태

 

윤호섭(63) 국민대 시각디자인과 교수는 '그린맨'으로 통한다.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이에 관련된 모든 것들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윤호섭 교수를 처음 대면하는 사람은 특이한(?) 그의 환경사랑 모습에 당황할지도 모른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인터뷰를 시도한 나도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였다.

그의 연구실에서 먼저 명함을 나눴다. 그런데 윤 교수의 명함은 한지처럼 가볍고 하얀 색에 이물질 같은 것이 섞여 있었다. 명함 하단에는 'orange paper'라는 문구가 보였는데, 귤껍질을 갈아넣고 반죽을 한 종이로 만든 거란다. 말 그대로 환경친화적인 재질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나의 명함을 자세히 살피더니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이구, 이 번들번들한 코팅 종이에 화려한 색깔. 이걸 만들려면 얼마나 많은 나무를 베어야 하며 또 얼마나 많은 염료가 사용됐을까? 또 화학공장에서는 얼마나 많은 폐수를 배출했을까?"

나는 할 말을 잃었다. 형형색색의 잡지를 그 앞에 내놨을 때도 환경오염에 대한 그의 우려는 계속됐다. '역시'라는 감탄사를 연발하고 난 나는 연구실을 한번 둘러보고 나서 마치 폐품처리장에 온 듯한 착각에 빠졌다.

휴지통에 들어 있어야 할 물건들이 곳곳에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맨 먼저 세면장 밑에 끓이고 난 녹차 티백이 돌무덤 형상으로 수북히 쌓여 있었다. 나는 속으로 '음, 뭔가 재활용 차원에서 모아 두셨구나' 생각하며 그에게 넌지시 물었다.

"교수님, 저기 녹차 티백 어디에 쓰려고 모아두신 거예요?"
"쓸데없어요. 그냥 휴지통에 버리기 싫어서 저 밑에 놓아둔 겁니다."
"네? 그래도 뭔가 재활용하려고 모아둔 게 아닌가요?"
"글쎄요. 저걸 갖고 나중에 혹시 재활용 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죠. 하하하."

참으로 모를 일이었다. 누더기 같은 티백 찌꺼기를 버리지 않는 이유가 '휴지통에 버리기 싫어서'였다니. 그리고 언제인지 모를 어느 날에 재활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의 말. 내 눈에는 그저 지저분한 쓰레기로밖에 보이지 않는데 말이다.

티백 옆에는 일회용 종이컵이 길게 쌓여 있었다. 나는 속으로 또 한 번 '아니, 환경운동을 몸소 실천한다는 분이 웬 일회용 종이컵을 저렇게 많이 쌓아 두고 사용을 하나?' 생각했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다.

학생들이 먹고 아무 데나 놓아둔 일회용 종이컵을 수거해 물로 헹궈 쌓아 둔 것이었다. 놔두면 분명 어딘가에 쓸 일이 생길 거라며. 요즘에는 매점에서 파는 꼬치구이에 달린 나무꼬챙이를 열심히 주워 모으고 있단다. 나중에 예술 작품으로 쓸 수 있는 귀한 재료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윤 교수는 설명했다.

이처럼 윤 교수는 모든 물건을 허투루 버리지 않는다. 시각디자인과 교수인 그의 눈에는 아무리 하찮은 물건도 친환경적으로 재활용할 수 있는 가치가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전에 타고 다니던 전기 자전거를 일반 자전거로 바꿨다. 자전거 모터에 부착된 배터리 때문이었다. 환경오염의 근본 원인이 되는 에너지. 그것의 노예가 돼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뿐인가. 그는4년 전부터 집에 있는 냉장고도 없앴다. 냉장고 없이 지낸다는 말에 사람들은 깜짝 놀라지만 오히려 그는 놀라는 사람들이 더 놀랄 뿐이라고 한다.

"윤태님도 오늘 가서 냉장고 한번 열어보세요. 그 안에 들어 있어야 할 물건들이 얼마나 있는지. 냉장고 없이 며칠만 지내보세요. 전혀 불편하지 않아요. 시원한 거 먹고 싶으면 슈퍼마켓 가서 아이스크림 사먹으면 되고. 김치는 겉절이 해서 먹으면 되고…."

윤 교수에게는 앞으로 큰 꿈이나 계획이 없다. 지금 이대로가 좋단다. 돈을 많이 벌면 덧없는 것에 빠져 환경문제를 소홀히 하게 돼 부자도 싫단다. 단지 일상에서의 녹색환경을 위해, 더 나아가 녹색의 지구 생태계를 위해 실천하는 작은 행동들에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고 따라주었으면 하는 게 그의 꿈이자 소원이란다.

우리는 흔히 이런 말들을 한다. '모든 가정에서 하루 10분씩만 전등을 끄고 아끼면 연간 ○○○억원이 절약된다.' 초등학생도 알고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러한 수치상의 지식이나 정보보다는 이를 달성하기 위한 실천이 중요한 것이다.

만약 국민들의 의식이 윤호섭 교수의 경우처럼 행동하는 삶으로 이어진다면 에너지, 환경 문제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윤 교수의 실천하는 삶을 칭찬해야 하는 마땅한 이유를 독자들이 새겨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페품을 쌓아놓은 듯한 그의 연구실. ⓒ윤태

 


 

 

이 글은 월간 '아름다운 사람들'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