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농약으로 기른 콩나물(?)' "우린 신경 안써요"

그루터기 나무 2007. 1. 27. 19:12

콩나물 좋아하세요? 파 숭숭 썰어 넣은 콩나물국에 밥을 만 후 김치 얹고 그 위에 김 한 장 올려 먹으면 맛이 일품이지요. 또 술 마신 다음 날 홍합을 넣고 끓인 해장국 한사발이면 속이 확 풀립니다. 특히 콩나물 대가리는 씹히는 맛이 고소하고 식감이 좋아 계속 먹게 됩니다. 콩나물에 들어있는 영양소는 또 얼마나 많은데요.

동의보감에 콩나물은 온몸이 무겁고 저리거나 근육과 뼈가 아플 때 치료효과가 있고 제반 염증 소견을 억제하며 수분대사를 촉진할 뿐만 아니라 위의 울열(鬱熱)을 제거하는 효과가 뛰어나다고 기록돼 있다. 현대 의학으로 확인된 결과에 의하면 단백질, 탄수화물, 식물성 스테롤, 올리고당, 섬유소, 아스파트산 등 여러 가지 영양소와 콩에 없는 비타민 C도 들어있는 등 칼슘과 비타민이 풍부한 영양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콩나물 뿌리에 많이 들어있는 아스파라긴산은 알코올의 자연분해를 촉진시켜 숙취 해소에 도움을 주므로 콩나물국밥은 특히 아침해장용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매일경제> 2001.3.15

 

 

집에서 기른 콩나물로 끓인 콩나물국. 콩나물 대가리 씹히는 고소한 맛이 일품이지요. ⓒ윤태

 

 

콩나물은 영양소가 많고 여러 가지 요리로 손쉽게 해먹을 수 있지만 불안 요소가 있습니다. 지난 86년과 88년 '농약 콩나물 사건'이 터져 식품업계를 흔들었던 적이 있지요. 상온에서 유통되는 콩나물의 특성상 부패 방지와 좋은 색깔 유지를 위해 살충제, 보존제 등 농약 성분을 사용한 콩나물 공장이 적발된 사건이었지요.

지금은 식품 감시체계가 많이 강화됐지만 이에 대한 불안감이 완전 해소됐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요즘 대기업이 '유기농 콩나물' 제품을 일반 콩나물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하고 각 시․도 농업기술개발센터가 '무농약 혹은 무공해 콩나물'을 개발했다는 소식이 종종 들려옵니다. 결국 공장 콩나물의 안전성이 확실하지 않음을 증명하는 게 아닐까요.

왜 나는 기른 콩을 살 생각만 했을까?

제가 재래시장에서 할머니들이 직접 기른 콩나물을 산 적이 몇 번 있는데요. 요즘에는 재래시장에 할머니들도 안보입니다. 집에서 기른 콩나물은 고향에 가야 먹을 수 있는 정도입니다. 그래서 비싼 유기농 콩나물은 가격표 보고 놀라 얼른 내려놓고 그냥 공장 콩나물을 사게 됩니다. 아마 많은 주부들이 유기농보다는 일반 콩나물을 구입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집에서 기른 콩나물을 찾기만 했지 직접 길러야겠다는 생각을 미처 못 한 것입니다. 이번에 어머니께서 콩나물을 비롯해 이것저것 챙겨주시는 것을 보면서 문득 콩나물을 직접 길러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시골서 사시는 옛날 분들 그런 말씀 하시지 않습니까. 공장 콩나물은 농약 쳐서 절대 안 되고 공장 고추장은 탄저병 걸린 고추 섞어 만들기 때문에 사먹어선 안된다고 말이지요. 저희 어머니께서도 늘 하시는 말씀입니다.

여하튼 이번에 어머니께서 직접 기른 콩나물 콩 한 되를 가져왔습니다. 콩나물 콩은 재래시장이나 마트, 농협 같은데서 쉽게 구입할 수 있습니다. 먼저 썩거나 깨진 콩, 돌 등을 골라낸 후 반나절 정도 물에 불렸습니다. 그 다음 조그만 화분에 평평할 정도로 콩을 깔아 넣고 30센티 자를 대야에 걸친 후 그 위에 화분을 놓았습니다.

시장에 가면 콩나물시루도 있지만 대량으로 기를게 아니라면 화분이나 페트병 등을 잘라 시루를 만들어도 크게 문제없습니다. 페트병 같은 경우 구멍을 많이 뚫어 물 빠짐이 좋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잔뿌리가 많이 나 콩나물 질이 떨어질 수 있으니까요.

 

 

콩나물 기르기 관찰 카메라, 1주일이면 됩니다. ⓒ윤태

 

 

이번에 콩나물을 기르면서 떠오른 것이 있습니다. 시루 밑에는 불리지 않은 콩을 넣고, 위에는 불린 콩을 넣어 기르면 시간에 따라 콩나물을 빼 먹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꺼번에 다 자라면 어차피 냉장고에 넣어야하고 결국 신선도가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희 어머니는 콩나물에 주는 물을 걱정하셨습니다. 수돗물을 주면 잘 안자랄 뿐 아니라 콩나물이 쉽게 썩는다는 말씀이셨습니다. 하지만 한번도 수돗물로 콩나물을 길러본 경험이 없는 어머니 말씀을 전적으로 믿을 순 없습니다. 물론 지하수보다 수돗물이 좋진 않겠지만요.

퇴근 뒤 인사말 “물 얼마나 줬냐?”

그런데 이런 행운이 또 있습니까. 저희 집에서 정확히 1분 떨어진 거리에 약수터가 있더군요. 산 밑에서 오줌 줄기 만하게 졸졸졸 흘러나오는, 그야말로 깨끗한 약수입니다. '콩나물 기르기 프로젝트'는 하루 한 번 약수를 떠오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기르는 장소는 욕실입니다. 첫날 불린 콩을 화분에 넣고 까만 비닐봉지를 씌운 다음 대 여섯 시간 동안 약수를 열 번 정도 주었습니다. 빛을 잘 가려주지 않으면 콩나물 대가리가 보라색으로 변해 맛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차광에 신경을 썼습니다.

다음 날 싹이 트기 시작했고 이틀 후에는 제법 자랐습니다. 그러나 목욕탕이 워낙 추운 탓인지 성장속도가 무척 느렸습니다. 3일째 되는 날에는 뜨끈뜨끈한 방으로 옮겼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보니 웃자라 있었습니다. 안되겠다 싶어 이번에는 약간 서늘한 거실로 옮겼습니다.

귀찮을 정도로 자주 물을 주었습니다. 출근한 뒤에도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물을 자주 주라”고 여러 차례 말했습니다. 퇴근한 뒤 현관문을 열며 가장 먼저 하는 말도 “물 얼마나 자주 줬냐?”였습니다. “적당히 줬다”고 아내가 대답하면 “시간 나는 대로 더 자주 줘야지”라며 훈계를 했습니다.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가도 콩나물 생각이 나면 쪼르르 달려가 물을 주고는 쪼그리고 앉아 지켜보았습니다. 물주는 시간이 아니더라도 저는 수시로 검은 비닐을 들고 콩나물 상태를 살폈습니다. 몇 시간 만에 눈에 띌 정도로 자라는 콩나물이 무척 신기했습니다. 약수를 줘서 그런지 몰라도 색깔이나 모양도 아주 좋아보였습니다.

드디어 먹게 된, 직접 기른 콩나물

집에 있는 동안 온 신경은 콩나물에 쏠려 있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자 콩나물이 수북이 올라왔습니다. 콩나물 대가리가 검은 비닐봉투를 밀쳐내면서 빛을 받은 일부는 보라색으로 변했습니다. 드디어 직접 기른 콩나물을 먹는 순간이 됐습니다.

오늘 아침 아내가 약수를 이용해 콩나물국을 끓였습니다. 국에 밥 말고 김치와 김 한 장 올려 한 입 떴습니다. 김이 누그러지기 전에 얼른 입 속으로 가져갔습니다. 시큼한 김치와 바삭한 김 맛 그리고 콩나물 대가리의 고소함이 한데 어우러져 감칠맛이 났습니다.

시중에서 사먹는 콩나물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맛이 입안에서 맴돌았습니다. 시골서 농사지은 콩나물 콩인데다, 약수를 사용하고 게다가 깊은 애정과 관심으로 기른 정성이 맛에 녹아들어가 그런 감칠맛이 나지 않았나 싶습니다.

사실 콩나물 해장국, 콩나물 밥 등 콩나물을 이용한 요리에 대한 이야기는 신문 방송 등 언론매체에서 많이 나오지만 '콩나물 직접 길러 먹기'에 관한 내용은 잘 나오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저 물만 열심히 주면되는 아주 쉬운 일인데요.

독자 여러분, 오늘 퇴근길에 가까운 마트나 시장에 들러 콩나물 콩 한 되 사가지고 들어가 보세요. 집에 페트병이 없어 화분을 구입한다면 물 빠지는 구멍이 조금 작은 걸로 선택하시구요. 그런데 보통 큰 화분이 아닌 다음에야 불린 콩을 넣기 때문에 절대 새나가지 않습니다.

일주일후면 맛 나는 콩나물 무침, 콩나물국을 드실 수 있습니다. 기르기 위한 시작도, 과정도, 요리도 아주 손쉬운 콩나물. 이젠 집에서 직접 길러 드세요.

 

우리집에서 1분 거리에 있는 약수터. 그 약숫물로 콩나물을 길렀습니다. ⓒ윤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