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여성 패러글라이더가 전하는 생생한 하늘속 세상

그루터기 나무 2006. 12. 11. 20:42

 

 

계곡사이를 날아오르고 있는 패러글라이더 : 사진 제공 동호회 곽성운 님

 

 

아기 낳기 전, 지난 1년 동안 아내와 함께 한 산부인과를 다녔습니다. 병원에 가면 연분홍 간호사복을 입고 친절하게 맞아주는 간호사, 조산사들. 늘 아기들과 함께 생활해서 그런지 더욱 더 착하고 다소곳이 보였던 간호사, 조산사들입니다.

그런데 이 중 한 조산사 한 분이 주말이면 패러글라이딩을 '광적'으로 즐긴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박현실(40) 조산사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주로 신생아실에서 근무하는 그녀는 아기를 다룰 때는 부드럽게, 패러글라이딩을 할 때는 거칠게 하늘을 박차 오른다고 합니다.

패러글라이딩. 많이 알려졌다고는 하나 아직까지는 대부분의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레포츠입니다. 올해 8년차 경력을 가진 베테랑 '비행 소녀(?)' 박현실 조산사. 첫 비행의 느낌에서 나무에 걸린 사고에 이르기까지 그녀가 말하는 패러글라이딩의 전반적인 사항을 직접 들어봤습니다. <기자 주>

 

 

낮에는 얌전한 간호사(조산사)지만, 주말엔 비행처녀가 된다는 박현실 씨. ⓒ윤태

- 패러글라이딩을 하게 된 직·간적적인 동기는?

"인간이 하늘을 날고 싶어 하는 건 잠재적이며 기본적인(?) 욕망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95년 남한산성에 놀러갔다가 산성 위로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 관심을 갖게 됐다. 당시에는 인터넷이 없던 터라 두꺼운 전화번호부 책을 뒤져 문의했는데 상황이 맞지 않아 그 일을 잊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집에 갔는데 마침 패러글라이딩 강사가 와 있었다. 그래서 98년 초봄부터 이 레포츠를 시작하게 됐다."

- 가족들이 반대하지 않았나

"다행히 반대는 없었다. 단지 위험하다고 염려는 하셨다. 내가 워낙 바깥에 잘 안 나다니는 성격이라 엄마가 걱정을 하셨는데 패러글라이딩을 한다니까 더 잘됐다고 하셨다. (웃으며) 다만 햇빛 많이 받으면 기미 생겨 남자 친구 못 만든다고 걱정하시긴 했다."

 

- 얼마나 자주 하나. 장소는 주로 어딘가. 한겨울에도 하나

"주말마다 했다. 좀 과격한 말로 미친 듯이 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언제 주말이 오나 하면서 하늘만 쳐다보고 살았다. 악천후로 비행을 못하면 동호회 사무실에 모여 부침개를 해먹으면서 날이 개기만 기다렸다. 그만큼 열정이 강했다. 비행하는 장소는 주로 양평의 유명산이다. 때론 경남 남해까지 간다. 요즘은 지자체에서 유치를 많이 하고 활공장 시설에 꽤 많은 투자를 한다. 특히 경북 문경은 세계대회가 열릴 정도로 손색없는 활공장이다. 비행은 봄, 가을보다는 겨울이 적합하다. 춥긴 하지만 북서풍이 일정하게 불어오는 우리 나라의 기상특성상 패러글라이딩의 제철이라고 할 수 있다."

- 비행 중 위험한 상황이 있었나

"초보 시절에는 이·착륙 실패로 땅에 구르거나, 나무에 걸린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러나 크게 위험한 상황은 아니었다. 극히 드물지만 착륙을 제대로 못해 다리가 부러지는 경우도 있다. 무동력과 기상 특히 바람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레포츠다 보니 장비를 다루는 기술과 경력이 부족해 사고가 날 수 있다. 과도한 묘기비행을 연습할 경우 사고 위험성이 높아질 수 있다."

- 맨 처음 하늘로 날아오르던 날 어땠나. 첫 비행을 설명해 달라

"처음에는 조교와 함께 탄다. 'Tandem'이라고 불리는 2인승 비행인데 교관이 뒤에서 조종하고 나는 앞에 앉아 있기만 했다. 바람을 맞으며 하늘을 나는 기분은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흔한 표현이지만 마치 내가 새가 된 듯한 신비감이 들었다."

- 그렇다면 혼자서 처음 비행한 날은 어땠나

"처음 하는 비행을 '처녀비행'이라고 한다. 지상연습 훈련을 마치고 기체 가방을 메고 정상까지 올라가 조교의 사인에 맞춰 뛰면서 기체(캐노피)를 올리고 바람을 안고 심호흡을 하는 순간 붕 하고 몸이 떴다. 그 순간을 글로 표현하자면 '육체이탈(?)'이라고 해야 할까. 짜릿하면서도 마음 속으로 내 자신이 대견스럽고 눈물이 나기도 했다. 첫 키스의 느낌이라고 할까. 비록 10분 정도의 짧은 비행이지만 내가 내려다 본 세상을 모두 가진 것처럼 뿌듯하고 기뻤다. 우리끼리 통하는 말이지만 그 기분을 '패러 뽕'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 우선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막상 하려면 겁날 것 같은데 실제로는 어떤가. 하고 싶은데 겁나서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이에 대한 견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막연하게 위험하고 힘들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바이킹, 쌍용 열차 등 놀이기구를 못 타는 나도 패러글라이딩을 한다. 규칙을 잘 지키고 나를 다스릴 수 있으면 늘 행복하고 좋은 비행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 나오는 패러글라이딩은 기체의 성능과 안전도가 크게 개선됐다. 충분한 연습과 함께 무리한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면 재밌게 즐길 수 있는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 비행하면서 산하(山河)를 내려다보면 느낌이 어떤가. 어지럽지는 않은가

"내려다 보이는 풍경들이 현실인지 꿈인지 구분이 안 될 때가 있다. 그냥 몽롱하게 보인다. 위에도 언급했지만 '패러 뽕'을 맞은 느낌이랄까. 구름 속을 날 땐 천사가 된 듯한 느낌이고 단풍철 산을 내려다보면 내가 불 속에 뛰어드는 느낌이다. 그리고 패러글라이딩 고급자들이 일부러 연속회전의 기술로 비행을 하지 않는다면 어지러운 현상은 전혀 없다. 다만 다른 운동과 마찬가지로 음주 후나 심신이 피곤할 때는 비행을 자제하는 것이 좋다."

- 어느 정도의 훈련을 해야 스스로 탈 수 있는가

"기초교육은 보통 8주 정도 받는다(매주 일요일). 10∼12회 정도 조교의 무전 사인(콜사인)을 받으며 단독 비행을 하면 졸업식을 한다. 무전 교신 없이 하는 단독비행 즉 자유비행을 하려면 약 2년 정도의 경력이 필요하다. 물론 사람에 따라 기간이 달라질 수 있다."

- 장비는 직접 구입하나. 비용은 얼마나 하나

"비용이 꽤 나간다. 새것을 구입할 때 초보자는 대략 400만 원 선에서 필수장비를 갖출 수 있다. 기체, 하네스(의자형태의 비행자가 앉고 기체와 연결된 장비) 헬멧, 무전기, 보조낙하산이 필수 장비이고 기타 비행복과 비행화, 장갑 등과 계기로서 고도계와 GPS 등이 있다."

- 패러글라이딩 동호회의 연령대나 직업은 어떤가

"내가 속한 동호회(클럽)의 연령대는 20∼50대까지 거의 모든 연령이 있다. 다른 팀에는 고등학생이나 70세가 넘은 할아버지도 있다. 전체적으로는 30∼40대가 가장 많다. 전체적인 주류는 30∼40 대이다. 직업은 학생부터 교수까지 다양하며 특정 계층이 따로 없다. 우선 장비만 갖추면 골프나 스키보다 저렴하게 4계절 내내 쉽게 즐길 수 있는 레포츠라고 생각한다."

- 주위 친구들이나 동료들 반응은 어떤가. 낮엔 다소곳한 간호사인데…

"내가 비행한다고 하면 다 놀란다. 특히 이 조그만(?) 몸매에 25kg이나 되는 장비를 메고 다닌다는 사실에 더욱 놀란다. 친구들이 말하길 '나는 책보는 남편 옆에서 수놓으며 아이들 재롱 보며 좋아할 스타일'이라며 놀리기도 한다. 그리고 간호사와 패러글라이딩 취미와는 무관하다. 마라톤이 취미인 의사가 수술할 때 뛰어다니면서 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 패러글라이딩을 하면 어떤 점이 좋은가

"먼저 스스로를 다스릴 줄 알게 된다. 이와 함께 해야 할 때, 기다려야 할 때 또 나서야 할 때 등 예리한 판단력과 민첩함을 기를 수 있다. 또한 팀을 이뤄 비행을 주로 하기 때문에 '함께'라는 소속감을 강하게 느끼게 해준다. 이와 함께 자연에 순응하면서 자신을 한 풀 꺾는 겸손함도 배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비행을 통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는 것이다. 이 밖에 운동면에 있어서는 허리와 심장을 튼튼하게 해주고 비행하는 동안에 온몸을 움직여 조정해야 하므로 전신 운동에 큰 도움이 된다. 비행을 하고 나면 한 주 동안 쌓인 스트레스는 완전히 해소된다."

- 비행하는 동안 옆에서 나는 새를 본 적 있나

"비행 중 바로 옆에서 새가 같이 나는 경우는 드물고 이륙장에 올라서면 근처 열 기류를 타고 나는 매를 본 경우는 여러 번 있다. 새의 본능적인 비행경로를 보고 열 기류 위치를 파악한다. 극히 드문 경우지만 새가 와서 부딪히는 경험을 한 동호인도 있다."

- 지금까지 몇 번, 몇 시간 비행했나

"8년째 비행을 하고 있으니 횟수나 시간은 헤아리기 힘들다. 내 별명이 '매미'다. 그만큼 비행에 있어서는 자신이 있다. 여하튼 비행 횟수보다는 얼마나 만족스러운 비행을 했느냐가 중요하다."

- 가장 기억에 남는 비행이 있다면

"처음 배울 때 조종 미숙으로 밤나무에 걸린 적이 있다. 5월이었다. 나는 곤충을 무척 싫어하는데 이름 모를 벌레들이 내 속으로 파고들었다. 무전기에 대고 소리 지르고 울고불고했다. 태어나서 그렇게 오래도록 큰 소리를 질러본 적이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비행인들은 자신의 최고고도나 비행시간을 갱신하고 가장 멀리 날아간 것을 기억에 남긴다. 동호인 중에 한 명은 외국의 해변 가에서 비행하다가 누드비치로 착륙한 경험을 최고로 치기도 한다. 남자들이라…."

- 패러글라이딩을 하기 위해 갖춰야할 첫 번째 조건은

"절대 당황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륙 후에 무전기 유도가 있지만 기체를 조종하는 것은 비행자 자신이다. 당황하면 본능적 행동이 나오고 결국 우발적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끈기 있게 정확히 배워나가는 자세가 필수적이다."

- 패러글라이딩은 쉽게 접할 수 있는 레포츠가 아니다. 어떻게 하면 친해질 수 있나

"이 레포츠는 인라인스케이트처럼 바로 구입해 동네 공원에서 배우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즉 기술적인 면에서 책자나 동영상 등을 구해 혼자 배울 수 있는 종목도 아니다. 자신에게 맞는 동호회(클럽)를 찾고 일정 교육을 받은 후에 천천히 숙달 시켜야 한다. 장기적인 계획 없이는 비행의 참 맛을 느끼기가 어렵다. 안전과 숙달을 위해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하다. 한번에 1% 씩 비행기술이 늘도록 공부와 노력을 해야 한다."

- 패러글라이딩에 관심 있어 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분명히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 다른 취미생활과 달리 주변의 친구들에게 함부로 권하면 안 된다. 주말 비행자로 몇 개월 정도 연습한다고 완성되는 레포츠가 아니기 때문이다. 막연한 동경으로만 하늘을 날기가 그리 쉽지 않음을 밝힌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전에는 패러글라이딩을 타고 착륙을 하면 주변에서 농사일을 하시는 분들이 '여자가 별걸 다 한다'는 식으로 놀라곤 하셨다. 동호인들이 많아지면서 때론 농작물이 있는 밭에 내리는 경우도 있고 바쁜 농번기에 그 옆에서 즐기기도 한다. 그래서 가끔 미움을 사기도 한다. 특히 4륜구동 차량으로 착륙장과 이륙장 이동을 위해 시골 동네에서 소음을 내는 경우가 많아 어르신들이 싫어하는 경우도 있는데 죄송한 마음이 든다. 우리 동호인들도 조심할 것은 조심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문제가 되는 것 중에 자연스럽게 초지로 형성된 이륙장이 아닌 대부분의 이륙장은 산 정상에 나무를 베어 공간을 만드는데 자연보호라는 이유로 종종 사람들의 비판을 받는 경우도 있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최소한의 이륙 안전을 위한 공간확보인 만큼 이 글을 빌어 이해해 줄 것을 부탁드린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다만, 패러글라이딩에 대해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생생한 정보를 제공하고자 올리는 것입니다. <새롬이 아빠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