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교통사고와 '차 긁었다'의 차이점?

그루터기 나무 2006. 12. 1. 23:12
 

 

붉은 원 표시된 골목으로 차가 들어가야 한다. 사진 왼쪽 빈자리에 차를 세워 놓으면 이 골목을 드나들때 차가 긁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침 7시 30분경, 화장실에 앉아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마침 집에 와 계신 장모님께서 전화를 받으셨는데, 거실에서 급하게 나를 찾는 장모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윤서방, 윤서방, 어딨나?"

"예, 화장실 있는데요."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런데 처제가 교통사고가 났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날벼락 같은 소식인가. 사람은 얼마나 다쳤으며 어디서 어떻게 사고가 난 건지 알 수 없는 갑갑한 상황이었다. 사고 장소가 집 앞 골목이라는 것밖에 알 수 없었다.


처제가 운전이 좀 서툴러 주차하는 과정에서 담벼락 등에 긁히고 찌그러지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사고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급한 마음에 뒤처리를 하는 둥 마는 둥 화장실 문을 박차고 장모님과 함께 급히 뛰어나갔다.


집 앞 골목에서 처제는 얼어붙어 서 있었다. 차를 빼다가 주차해 있는 다른 차를 긁어버린 것이었다. 차 두 대가 옴짝달싹 못하고 맞붙어 있었다. 다른 차들이 지나가지 못해 경적을 울리자 처제는 더욱 당황했다.


조심스럽게 차를 빼 안전한 곳에 세워두고 상대편 차를 자세히 살폈다. 앞범퍼가 약간 긁혀 페인트가 일부 벗겨져 있었다. 어젯밤 처제가 먼저 차를 세워놓은 골목 앞에 누군가가 차를 세웠고 그 비좁은 틈을 처제가 빠져나가려다가 변을 당한 것이었다.


차 주인에게 차를 좀 빼 달라고 연락하고 편하게 차를 꺼냈으면 됐는데, 아침부터 전화하기도 미안하고 그래서 스스로 빼려다가 사고를 친 것이었다. 상황을 보니 대략 10번 이상 앞뒤로 움직여야 간신히 빠져나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아무래도 처제에겐 무리수였다.


처제는 나더러 차 주인에게 전화를 해달라고 부탁했지만 거절했다. 이것도 경험인지라 스스로 해결하는 법을 터득하라는 의미에서였다. 대신, 주인이 나오면 무조건 죄송하다고 양해를 구하라는 말만 해줬다. 사실 1차적, 근본적인 책임은 처제에게 있지만 차가 수시로 드나드는 골목 앞에 엉성하게 주차해 놓은 그 차 주인도 야속했다.


전화를 하는 동안 처제는 무척 떨고 있었다. 40대 중반의 아주머니가 잠에서 금방 깬 듯한 얼굴로 나와 차를 살폈다. 처제는 죄송하다고 연방 고개를 숙였다. 나도 옆에서 운전이 서툴러 그런 것이니 선처해줄 것을 호소했다. 그 마음이 통했던 것일까? 아주머니는 웃는 얼굴로 괜찮다고 했다.


"괜찮아요. 어차피 앞범퍼 수리하려고 했어요. 차 긁어놓고 그냥 가는 사람도 많은데 이렇게 전화까지 하셨네요. 그리고 원래 여기 차 세우면 안 되는 거 아는데 어제 늦게 들어오는 바람에 자리가 없어서 여기에 댔어요. 나도 미안하네."


서로 기분 좋게 사건은 수습됐다. 사고 났을 때 차주 잘못 만나면 별 거 아닌 것 가지고도 덤터기 씌우고, 이 때문에 서로 목소리 커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한데 다행스럽게도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런데 처제가 약간 '오버'한 듯했다. 물론 처제로서는 처음 당하는 일이라 큰 걱정을 한 것이지만 내가 볼 땐 별일 아니었다. 그리고 처음 전화할 때 '사고 났다'고 하지 말고 그냥 '차 긁었다'고 했으면 아침부터 심장이 벌렁벌렁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처제는 안전운전에 더욱 신경을 쓸 것이다. 돈 안 내고 안전교육 받은 것으로 생각하면 마음 편해질 일이다.

 

 

지난해 가을 새 차를 구입한 후 고사를 지내고 있는 처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