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름하지만 소중한 할머니의 삶터 ⓒ윤태
"할머니, 만약에 돈이 많이 생기면 뭐 하실 거예요?"
"무슨 돈이 생겨?"
"그러니까, 만약에 할머니한테 큰 돈이 뚝 떨어진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돈이 왜 떨어져.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어?"
"…"
"할머니, 소원이 뭐예요?"
"소원? 많이 팔리면 좋지."
"…"
종로 3가에서 인적이 드문 골목에 천막 치고 과일과 군밤을 파는 올해 82세 할머니. 50년째 이 자리에서 과일을 팔고 있다. 안에서 보면 여기 저기 찢어진 천막을 파란색 테이프로 붙여 누더기가 따로 없지만 할머니에게는 소중한 삶터이다. 변변한 판매대도 없이 바닥에 라면, 과자 상자 등에 과일을 올려놓고 장사를 하고 있다.
최근에는 허리가 아파 과일을 옮기는 일이 쉽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얼마 전에 구청에 받침대가 있는 좌판을 직접 가서 신청했는데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할머니는 울상을 짓는다.
그래도 할머니는 이 좁은 '길바닥'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하루 종일 팔아봐야 겨우 2만원 정도 하지만 공치는 날이 더 많다고 한다. 그래서 소원이 뭐냐고 물었을 때 '많이 팔리는 것'이라고 답을 한 것이다.
물건은 할아버지가 경동시장에서 떼어온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할아버지의 연세가 올해 103세라는 사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일을 하고 있다는 할머니 말씀에 기자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설마 하는 생각에 몇 번을 여쭈어도 할아버지 연세는 103세란다.
할머니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곳에 '일그러진 좌판'을 펼친다. 일요일도, 명절도, 춥거나 더운 날씨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힘겨운 삶을 펼쳐 놓는다.
겨울에는 오징어, 쥐포 등 건어물을 주로 판매하고 여름과 가을에는 과일을 갖다 놓는다. 종로 거리라서 떡볶이나 어묵 등이 인기가 있을 법 한데 할머니에게는 벅찬 일이다.
할머니는 아침 일찍 나와서 포장을 치는데 그 모든 일을 혼자서 처리한다. 혼자서 장사 준비를 하는데 무려 1시간이나 걸린다고 한다. 주위 분들이 도와주지 않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할머니는 "도움 받는 게 싫다"고 한다. 포장을 치고 좌판을 펼치는 할머니 본연의 일은 스스로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이들의 도움이 없는 건 아니다.
바로 옆에 있는 해장국 집에서 날마다 점심을 무료로 갖다 준다고 한다. 해장국 가게 주인이 할머니가 꼭 자신의 어머니 같다며 식사를 대접하고 있다며 할머니는 흐뭇해 하신다. 1시간 남짓한 인터뷰 도중에 이웃 두 명이 다녀갔다. 한 아저씨는 음료수를 갖다 드렸고 건너편에서 가게를 하는 아저씨는 과일을 사갔다.
인터뷰를 마치고 짐을 챙기는데 할머니가 관심 가져줘서 고맙다며 가져가서 먹으라고 비닐봉투에 과일을 담는다.
"아이구, 할머니 이러지 마세요."
한참 실랑이를 벌인 후 기자가 과일을 몇 개 사기로 결정했다. 천원에 두 개 하는 자두를 봉투에 담았다. 그리고 5천원을 건네고는 도망치듯 '할머니의 삶터'를 빠져나왔다. 멀리서 할머니가 천 원짜리 지폐를 흔들며 오라는 손짓을 한다.
"할머니 죄송해요. 만 원짜리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비록 물질적으로는 큰 도움을 드리진 못했지만 할머니의 삶터가 많은 손님들로 붐볐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만은 그곳에 놓고 왔다.
**이 글은 <월간 아름다운 사람들> 재직 시절, 종로 3가 이 할머니를 직접 방문 취재한 것으로 해당 잡지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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