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뉴스

이런 취재할때 정말 가슴 아파요

그루터기 나무 2006. 7. 9. 16:31

 

 

<서울 강남구 포이동 266번지 일대, 넝마주이로 삶을 살아가는 주민들이 모여 있다>-사진 : 윤태

 

 

저는 과거 한 미디어회사에서 '행복, 희망, 감동' 이라는 큰 주제를 가지고 이른바 '휴먼 취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취재해 올리는 기사는 한 인터넷 포탈 사이트에 올라갑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사이트에서 만든 또 다른 사이트에 뉴스가 올라가는 것인데 그 사이트의 성격은 이름 그대로 '나눔'입니다. 즉 아픔과 행복을 나누고 희망과 감동도 나눠가면서 진정한 휴머니즘을 만들어 가자는 게 그 사이트의 목적입니다.

제가 속한 미디어 회사와 그 사이트는 기독교 민간구호 단체인 '한국월드비전'과 상호 협력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기사를 통해 네티즌들로 하여금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공식적으로 후원을 하기도 합니다.

성격이 이렇다보니 저도 어려움에 처해 있는 사람들을 취재할 때가 많았습니다. 불 난 집에 불 끄러 들어갔다가 중화상 입어 사경을 헤매는 60대 후반의 가장, 부모가 모두 집을 나가 비참한 생활을 하는 어린 두 자녀, 남편 10년 병간호하고 남편 퇴원 후 3일 만에 말기 암으로 숨진 아내의 안타까운 사연, 열여섯 나이에 골수암으로 한쪽 다리를 잃고도 좌절하지 않는 딸을 보며 마음이 찢어지는 아버지 등등.

취재를 위해 이런 분들과 접촉하다보면 참으로 눈물이 날 정도로 찡할 때가 많았습니다. 취재 혹은 기사라는 업무를 떠나 어떻게든 도와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늘 앞섭니다. 그래서 기사가 나간 후 도와주고 싶다며 제게 전화를 주시는 분들께 지체 없이 연락처를 알려주거나 혹시나 해서 받아두었던 계좌를 알려주기도 했습니다.

그것도 아니면 포탈 사이트 쪽에 연락해서 기사 말미에 당사자가 후원을 받을 수 있는 사이트(블로그, 까페)를 안내해 좀더 많은 사람들이 도움의 손길을 뻗을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기도 했습니다. 이럴 때마다 저는 무척 보람을 느꼈습니다. 제 일이 아닌데도 매우 기쁘고 절로 흥이 나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러나 이러한 도움의 손길을 싫어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당시 강원도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 사회복지사로에게 전해 듣고 딱한 사정에 처한 어떤 분을 취재한 적이 있습니다.

알 수 없는 병으로 임산부처럼 배가 불러오는 60대 후반의 할머니인데 검사비 때문에 병원에도 못가고 거동도 못하는 등 병이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기초수급생활 대상자도 아니고 남편인 할아버지가 한달에 50만원을 받아 아들과 손주 등 네 식구가 생활을 하는 어려운 가정이었습니다.

무엇보다 할머니가 하루라도 빨리 검사 받고 치료를 받아야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할머니 댁과 관련해 구구절절한 이야기는 더 이상 하지 않겠습니다. 이 딱한 사정은 이 집을 방문한 한 사회복지사가, 이 가족이 수급대상자가 아니어서 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안타까워 모 방송 프로그램 게시판에 사연을 올려 제가 알게 됐습니다.

기사를 다 써 놓고 저는 관련 사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미디어 본사에서도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아무래도 사진이 있으면 좀더 수월하게 도울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저는 그 사회복지사를 통해 사진을 찍어 보낼 줄 수 있는지 문의했습니다. 복지사는 그 댁 상황을 살펴봐야 한다고 했고 저는 가능하면 꼭 그렇게 해줄 것을 신신당부했습니다. 기사만 내보내도 되지만 매우 딱한 사정에 돕고 싶어 그러니 "꼭"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복지사로부터 사진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가족들이 사진이 나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자존심 문제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안타까웠지만 도리가 없었습니다. 저는 사진 없이 또 '○할머니'라고 성만 표기해서 기사를 송고할까 생각도 했습니다.

비록 당사자는 도움이 필요 없다고 했지만 혹시 기사 보고 돕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회복지사를 통해 도움을 전달할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고민 끝에 그만두었습니다. 원치 않는데 굳이 강행할 필요가 없겠다는 최종 판단에서였습니다.

그 기사를 접고 나서 마음이 씁쓸해졌습니다. 사진 때문에 사회 복지사와 꽤 여러 번 문자를 보내고 통화를 하며 이메일을 주고받는 등 나름대로 신경을 많이 썼는데 그러한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됐기 때문입니다.

저는 단지 좋은 마음으로 도움을 주고 싶었을 뿐입니다. 제가 물질적으로 도움은 못 주지만 글을 통해 조그만 힘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려고 했습니다. 물론 당사자의 입장이나 곤란한 점을 충분하게 생각하지 못한 점은 저의 불찰일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런 저런 정황을 접어두고라도 할머니가 서둘러 병원에 가야한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제 머릿속에 가득했던 것입니다.

기사가 수포로 돌아가고 나서 괜한 후회도 했습니다. 내가 왜 그랬나? 어차피 사진은 처음부터 협조가 안 됐으니 그냥 기사만 송고할 걸, 이렇게 말이지요. 어떻게 보면 마음을 독하게 먹는 거지요. 그러나 그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다음 기사인 '화재로 전소된 무료 공부방, 배움터 잃고 발만 동동 구르는 아이들' 기사를 쓰면서 어떻게 하면 최대한 도와줄 수 있을까 고민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어떤 분들은 이러한 감동이야기, 도움이 필요한 기사 즉 '휴먼 기사'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제 선배 같은 경우는 싫어하는 이유를 이렇게 밝혔습니다.

"불쌍하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 무척 많다. 이와 관련해 감동적으로 쓴 기사들도 쏟아져 나온다. 그런데 가능한 한 최대한 망가지고, 비참해져야 도움을 더 받을 수 있다. 어느 정도 감동을 주느냐에 따라 도움의 손길이 더 가고 덜 가기도 한다. 즉 '감동에도 등급'이 있다. 그 감동의 차이는 제목을 어떻게 뽑느냐에 달려 있기도 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신문사도, 포털 사이트도 '감동 경쟁'을 하고 있다. 이게 무슨 감동인가? 어려운 사람들은 똑같이 도움을 받아야지 어려운 정도에 감동의 등급이라는 잣대를 들이대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 수 있나?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감동 글, 기사가 적잖다. 그래서 나는 감동 글을 쓰는 것도, 읽는 것도 싫다."


저는 선배의 말에 고개를 끄떡였습니다. 틀린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언론적인 측면에서 보면 선배의 말이 전적으로 맞지만 조금 부드러운 시선으로 돌리면 다른 방향으로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희귀병, 난치병을 비롯해 차마 눈 뜨고 못 볼, 눈물 쪽쪽 빼는 사연을 지닌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물론 어려운 사람들을 돕자는 취지에 대해 반감을 가진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현상일수도 있겠습니다.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언론 매체 등을 통해 도움을 받는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진정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거짓으로 제보를 하거나 인터넷에 그럴싸한 사연을 흘리는 사람도 개중에는 있겠지요. 감기를 말기 암이라 호소하고 길거리에서 빵 사먹은 일을 두고 돈이 없어 음식물 쓰레기통을 뒤져 먹었다며 허위, 확대, 과장 등의 수법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것처럼 말이지요. 이는 모두 양심에 맡길 입입니다.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경우는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누군가가 나서줘야 합니다. 선배의 말처럼 이러한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 모두가 똑같이 도움을 받을 형편이 안 된다면 어차피 누군가 어느 정도 도움을 줘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언론이든, 독지가든 혹은 민간구호 단체이든 말입니다.

'도움을 받아본 사람만이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말처럼 서로 공존하면서 살아가는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감동의 등급에 따른 잣대의 문제도 아니고 '갑과 을'의 관계도 아닌 더불어 사는 따뜻한 세상의 진면목을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