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뉴스

<전화취재>버스 기사가 전하는 감동의 시각장애인 사연

그루터기 나무 2006. 6. 8. 16:42
▲ 남해에서 버스운전을 하는 전석명 기사
ⓒ 윤태
경남 남해군 남해읍 한 공용버스터미널. 올해 서른 세 살의 운전기사 전석명 씨. 착하기로 소문 난 전씨는 비오는 날 할머니에게 우산을 빌려주기도 하고 거의 노인들밖에 없는 이 섬지역의 모든 손님들을 자신의 부모님처럼 생각하고 있다.

기자가 전석명 기사를 알게 된 건 일 때문이었다. 비오는 날 경험한 할머니에 대한 감동적인 사연을 전화로 취재하는 동안 전씨와 많이 친해질 수 있었다. 취재라는 업무를 떠나 인간적인 측면에서 전기사와 나는 교감하게 됐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최근에 경험한 가슴 진한 사연을 내게 들려줬다. 서울, 부산, 광주, 대전 등 전국을 다니는 버스운전사라는 직업 특성상 쉽게 글을 올릴 수 없어 내가 대신 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비 내리던 날 시간에 쫓겨 다음 코스인 진주에 가려고 터미널 홈에 차를 정차 할 때 택시 한 대가 전 기사 버스 옆으로 다가선다. 언젠가도 진주에 가기 위해 나섰던 그 사람은 전기사 버스 쪽으로 걸어오다가 '쿵' 하며 부딪쳐 버린 일을 기억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이상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색소결핍증으로 시력이 거의 없고 강한 빛만 간신히 감지할 수 있는 정도다. 올해 스물 세 살에 어둠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그.

오늘도 진주에 가려고 나선 모양이다. 얼굴은 멍들었고 손등이며 어깨까지 찰과상을 입은 듯 하다. 터미널까지 오는 동안 넘어지고 부딪히고 한 것이다.

"아, 또 그 기사님이군요. 오늘도 잘 부탁할게요. 그런데 몇 시 차죠?"

전기사와 그의 대화가 시작된다. 그는 이미 전기사에게 마음의 문을 어느 정도 열고 있는 상태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대화가 아닌 사람과 사람사이 평범한 대화라고 전기사는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달리는 차장 사이 소리에 민감한 그가 이것저것 묻는다. 남해대교가 무슨 색이냐고 물으면 전기사는 전에는 회색이었는데 이번에 다시 빨간색으로 칠했다고 대답해준다. 그리고는 낙엽이 한 둘씩 옷을 갈아입으려고 한다며 주변 풍경도 이야기해준다.

이때 그가 한마디 한다.

"장애란 앞을 볼 수 있고 없는데서 오는 게 아니라 느끼고 느낄 수 없는데서 오는 것 같다. 누구나 언제 어떻게 장애인이 될 수 있는지 모르는데 우릴 차갑고 귀찮게 생각한다."

그러면서 그는 얼마전 자신이 경험한 한 사건을 전기사에게 들려준다.

보이지 않는 그가 누군가에게 길을 물었다. "여기가 어디쯤이죠?"라고. 그런데 잠시 후에 상대방이 귀찮다는 듯이 "보세요. 여기 글이 안보입니까?"라는 한마디에 그는 주저앉고 말았다고 한다. 맹인이라는 소외감을 느끼지 않으려고 선글라스를 끼지 않고 지팡이만 들고 있던 건데 그 질문이 오히려 상처로 되돌아 온 것이었다. 결국 몇 발자국 못 가 공사로 깊게 파인 웅덩이에 빠져 눈과 어깨에 상처를 입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아직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낯설고 내가 알던 길을 내 눈이 돼 주는 지팡이만 믿고 간다."고 말한다.

맹인견을 이용하면 좀 낫지 않느냐는 전기사의 의견에 그는 "맹인견, 경남 서부에 두 마리 정도 있을 거예요. 애견센터서 4주 교육받고 집에서 몇 주 교육받고, 그 보다도 맹인견 신청하려면 서류도 엄청 많은데 보이지 않는 내가 그걸 일일이 다 챙길 수가 없죠. 그리고 매달 주사 맞히고 사료 값도 만만치 않아 감당하기 힘들어요."라며 하소연했다고 한다.

정부에서 조금의 지원이 있다고 하지만 나라에서 주는 돈은 장애인들이 마음을 아프게 한단다. 돈으로 장애인들을 무시하고 또 생색내고… 자신이 시각장애인이 되기 전에는 이런 세상인줄 몰랐다며 한탄하기도 했다는 그.

비록 하소연은 하지만 또 아직 시각장애인임이 낯설게도 느껴진다는 그 이지만 꿋꿋하게 세상을 헤쳐나가고 있는 그를 보면서 전기사는 자신이 무척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음이 따스한 그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서 그를 더 이해하고 싶었다고 한다.

진주의 첫문인 계양 5거리에서 전기사는 시각장애우를 돕는 봉고차를 불러 대기시킨 후 버스터미널로 갈 수 있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그는 다른 곳으로 가는 전기사에게 몇 번이나 고맙다며 머리 숙여 인사를 한다. 물론 그가 머리 숙여 인사하는 방향은 전기사와 반대방향이다. 전기사는 얼른 그가 고개를 숙이는 방향으로 뛰어가 고개를 숙여 맞인사를 한다. 남들이 보기엔 정상적인 사람이 마주하는 여느 인사처럼 보이지만 앞이 보이지 않는 그는 전기사에게 진정으로 마음의 인사를 하는 것이기에 전씨도 마주서서 정중히 받아야했던 것이다.

전씨의 삶을 다시 한번 살펴볼 수 있게 해준 고마운 사람. 다음주에도 아마 그는 진주에 간다. 그때까지 그의 눈이 되어주는 하얀 지팡이가 그를 다치지 않게 잘 인도해주기를 바라는 전석명 기사. 버스를 운행하면서 경험하는 그의 미담은 계속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