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뉴스

행복 싣고 달리는 애마 '중고자전거'

그루터기 나무 2006. 6. 27. 09:37

 

<아기 시트와 뒤에 짐받이를 단 중고자전거>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인왕산 자락에 사는 선배 집에서 중고 자전거를 가지고 온 지 한 달이 지났다. 그 자전거 덕분에 걸어서 20분 거리인 재래시장도 5분이면 갈수 있게 됐고 앞에 바구니가 달려 있어 물건 넣고 다니기도 편했다.

며칠 전에는 선풍기 날개가 부러져 규격에 맞는 부속품을 사려고 성남시 은행동, 금광동, 단대동, 중동 등 동네 철물점 10여 군데를 30분 동안 자전거 타고 돌아다녀 일을 해결했다. 그 많은 곳을 걸어다녔더라면 아마 2시간 이상은 족히 걸렸을 게다.

내 자전거는 21단이지만 이를 통제하는 줄(선)과 변속레버가 없어 일반자전거나 다름없다. 선배 집에서 가져올 때부터 변속장치는 제거된 상태였다. 이 평범한 자전거의 운행기록을 보면, 성남 남한산성에서 서울 홍제동까지 왕복 2회, 성남에서 청계천을 거쳐 홍제동에 이르기까지 운행거리가 결코 짧지 않다.

아들 병원 입원 3일 동안 자전거 출입, 주차료 부담 없어

또 엊그제는 성남 분당에 위치한 병원에 아들 새롬이가 3일간 입원했는데 입원하는 날 빼고 3일 동안 자전거를 타고 병원을 출입했다. 1시간에 1200원인 주차료를 입원 기간 내내 내지 않아도 됐다. 사실 마음 편하게 간호를 하고 싶어도 주차 요금 때문에 괜히 병원문을 들락날락한 경험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마음이 무척 편했다.

여하튼 내 자전거는 기어 통제가 되지 않아 오르막이나 더 빠른 속력을 내는 데 한계가 있어 불편하긴 하지만 그런 대로 탈 만하다. 여의도공원에서 돈 주고 타는 자전거와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비록 중고에다 변속기어 장치도 없지만 특별히 마음을 써준 선배의 배려와 멀리서 타고 와서 그런지 더욱 애착이 간다. 사실 이 자전거에 애착이 가는 데는 다른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한 달 전 서울 홍제동에서 성남 집으로 자전거를 타고 오는 동안 길을 헤매 8시간이나 걸렸다. 거의 초주검 상태로 집에 도착한 나는 그 자전거를 바라보며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는 감정처럼 자전거를 대하게 됐다. 서울서 성남까지 오는 동안 고통은 따랐지만 추억이 이미 스며 있었기 때문이었다.

짚 앞 골목에 다소곳이 서 있는 중고 자전거. 지난 98년 학생시절 건설 현장에서 일해 번 돈으로 새 자전거를 산 후 8년만에 이번 자전거를 갖게 됐다.

<아들 새롬이를 앉혀 봤지만 너무 어려 사용할 수 없었다>

 

 

자전거를 가져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내가 탄다고 나섰다가 앞브레이크가 파열되고 말았다. 근처 자전거포에서 1만5천원을 주고 갈았다. 지우개만한 고무와 이를 조이는 조그만 쇳조각이 뭐 그리 비싸냐 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한바퀴 돌기도 전에 이번에는 뒷브레이크가 고장났다. 고무가 너무 많이 닳아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1만원 주고 고무만 교체했다. 브레이크 수리를 하는 동안 아들 새롬이를 앞에 태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만5천원 주고 유아용 시트를 앞에 달았다. 그러자 아내가 한마디 했다. 아기만 태우고 다닐 거냐고?

아내와 아들 온 가족이 타기 위한 장치 부착, 그러나...

아내를 위해 뒤에 짐받이도 1만원 주고 달았다. 모두 5만원의 수리비가 들어갔다. 비용은 들었지만 온 가족이 함께 자전거를 탈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만은 뿌듯했다. 그런데 앞바퀴가 좀 이상했다. 바퀴살을 조이고 풀고 해서 휘어진 휠을 펴는데 이 상태에서 무리하면 살이 끊어질 수 있다고 자전거포 아저씨가 설명했다. 확실히 수선하는 방법은 휠을 교체해야 하는데 2만5천원의 비용이 든다고 했다. 부담이 됐다. 심하게 흔들거리는 바퀴살이 여러 개 있었지만 당장 운행하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아저씨는 앞브레이크 교체비용 1만5천원을 빼 줄 테니 21단 기어자전거 새 것을 7만원에 가져가라고 했다. 결국 5만5천원에 준다는 것이다. 유아용 시트와 짐받이는 떼어내 다시 새 자전거에 부착하면 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들인 수리비용이 거의 새 자전거 한 대 값이다.

많이 끌리긴 했지만 새 자전거는 포기했다. 지금까지 들어간 수리비용으로 적잖게 부담이 된데다 새 것을 산다 해도 마땅히 세워둘 만한 장소도 없었다. 그렇다고 번들번들한 새 자전거를 집 앞 넓은 골목에 세워두기에는 위험부담이 컸다.

또한 서울 홍제동에서 어떻게 해서 성남으로 가져온 자전거인데… 특히 운행하는데 전혀 지장 없는 양호한 상태인데 새 자전거 가격이 싸다는 이유로 애착이 가는 이 자전거를 버릴 수 없었다. 어쩌면 이 자전거를 고수한 내 판단이 어리석거나 비효율적이거나 비경제적일수도 있으나 후회는 없었다.

<적잖은 비용으로 브레이크를 교체했다>

 

 

저렴한 새 자전거 많지만 행복 실어 나르는 중고 자전거가 좋아

그런데 내가 한 가지 실수를 했다. 수리를 마친 후 기쁜 마음으로 달려와 아들 새롬이를 시트에 앉혀봤지만 너무 어려 태울 수가 없었다. 적어도 세 살은 돼야 유아용 시트에 태울 수 있음을 알았다. 내가 성급했다. 허벅지에 시트가 걸려 페달 밟는데 방해만 될 뿐이었다. 결국 유아용 시트는 떼어내 보관할 수밖에 없었다.

또 인터넷 쇼핑몰에 들어가 보니 다양한 기능의 새 자전거(21단) 가격이 5만원 안팎인 것들이 많았다. 그렇게까지 저렴한 줄은 몰랐다. 아무리 신문 구독하고, 인터넷 가입하면 경품으로 자전거를 무료로 준다지만 이 정도까지는 생각 못했다. 아마 자전거 가격을 인터넷으로 미리 알았더라면 지체 없이 저렴한 자전거를 구입했을 것이다.

여러모로 따져봤을 때 새 자전거를 구입하는 편이 훨씬 나았다. 물론 사전에 깨닫지 못하고 뒤늦게 알아차린 것들이 많지만, 결과론적으로는 그렇다는 얘기다. 그러나 후회는 없다. 더 이상의 욕심도, 새 것에 대한 갈망도, 21단 기어가 앞뒤로 오르락내리락 하는 그런 자전거에 대한 미련도 없다.

내 땀과 선배의 정성이 배어 있고 아내의 바람과 우리 가족의 작은 행복을 실어 나를 수 있는 몇몇 장치가 부착돼 있는 지금의 '중고 자전거'가 좋다. 앞 바구니에 희망을 가득 싣고 시원하게 달려야지.

내 발의 수고를 덜고 허벅지의 근육을 키워줄 것이며 자연과 세상 풍경을 스쳐 지나지 않고 음미할 수 있는 즐거움을 안겨줄 자전거. 8년 전 도둑맞았던 새 자전거에 비하자면 거들떠보지 않을 정도로 중고 자전거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행복을 도둑맞을 염려가 없는 마음 편안한 물건이기도 하다.

이렇게 정과 사랑과 애환이 가득한 이 자전거를 어찌 아끼지 않을 수 있으리?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다만 포털에는 송고되지 않은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