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뉴스

친구 살리려고 살신성인 한 애절한 사연

그루터기 나무 2006. 6. 8. 12:11
▲ 겨울산에 오른 그들에게 과연 어떤 일이 생긴걸까?
ⓒ 김령희

영빈이 일행이 산 정상에 올랐을 즘 갑자기 눈발이 굵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산을 올라올 때는 검은 구름이 몇 점 떠다녔을 뿐인데 정상에 다다르자 많은 눈구름이 몰려 온 것입니다. 그렇다고 정상을 눈앞에 두고 물러설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눈보라가 약해지기만을 바라면서 영빈이 일행은 등반을 계속했습니다.

“영빈아, 너 괜찮니?”

세찬 눈보라 속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며 영빈의 손을 끌어주던 현준이가 위로의 말을 건넸습니다. 영빈이는 무척이나 힘들어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애써 웃음을 지었습니다.

“응, 괜찮아. 곧 잠잠해지겠지”
“그래. 조금만 힘내자. 자, 내 손 꽉 잡어”

현준이는 영빈의 손을 잡아끌면서 마음속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두 달 전 심장병 수술을 받은 영빈이가 주로 실내에서만 생활하면서 움츠려 있는 게 안 돼 보여 현준이가 겨울산행을 제안했기 때문입니다.

생사를 넘나들며 그 고통스런 심장병을 이겨냈듯이 겨울 등반을 통해 지친 몸과 마음에 자신감을 심어주려는 친구의 깊은 배려였습니다. 그러나 겨울등반이 이렇게까지 힘든 줄 영빈 일행은 오늘에서야 깨달았습니다.

등반에 오른 사람은 모두 다섯 명이었습니다. 시골서 농사짓는 부모님을 꼭 호강시켜드려야 한다며 열심히 공부해 장학금을 놓치지 않는 선숙이. 비교적 잘 나가던 집 외동딸로 생활하다 넉달전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모두 잃고 가장이 돼 버린 미경이, 가정형편이 어려워 지난 학기부터 휴학하고 등록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필재. 사업 실패에 따른 후유증으로 부모님이 이혼의 기로에 서 있는 현준. 다섯명 모두 희망과 용기가 필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모두 어려운 상황에서 살아가는 친구들이었지만 특히 영빈이는 죽음의 문턱을 드나들었던 만큼 누구보다도 희망과 용기가 절실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친구들은 학교에서도 자신들의 아픔을 영빈 앞에서는 드러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번 겨울 산 등반 역시 겉으로는 나름대로 희망과 용기를 다지기 위한 것이었지만 사실은 영빈을 위한 친구들의 깊은 우정이었습니다.

“이렇게 힘든 줄 미리 알았으면 안 오는 건데.... 미안해 영빈아”
“아냐, 오히려 쉬운 줄 알았으면 안왔을거야. 괜한 소리하지마 현준아”
“그래도..,”

둘의 대화가 오가는 사이 드디어 100여미터 앞에 정상고지가 보였습니다. 서서히 눈보라도 그치고 있었습니다.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태양도 비추기 시작했습니다. 산꼭대기의 날씨는 참으로 변덕 같았습니다. 일행은 불안한 마음을 떨치며 순식간에 정상에 올랐습니다.

“야, 전망 좋다. 야호”

미경이가 먼저 야호를 외쳤습니다.

“와. 천사 같은 흰 세상이다. 야호. 야호. 야호. 야호.”

영빈, 현준, 선숙, 필재도 입을 모아 고함을 질렀습니다. 제각기 희망과 용기가 메아리로 되돌아오는 순간이었습니다. 세상의 어떤 고난도 다 헤처갈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 영빈의 가슴위에는 친구 네명의 스카프가 차곡차곡 쌓여 있었습니다. 심장이 멈추지 않게 하려고 말이지요.
ⓒ 구지 조대희

바로 그때 발 밑에서 눈사태가 났습니다. 해가 비추면서 눈이 조금씩 녹기 시작했고 엄청난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내린 것입니다. 내려갈 길이 그만 끊기고 말았습니다.

“어... 어떡하지?”

영빈이가 그 자리에 주저앉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현준에게 물었습니다.

“구조를 기다리는 수밖에. 우선 피신할 데를 찾아보자. 이곳도 언제 무너질지 몰라”
“그래, 얘들아 너무 걱정하지마. 아무 일 없을 거야”

영빈과 현준은 친구들의 불안감을 떨치게 하려고 애써 밝은 표정을 지었지만 속으로는 애가 타고 있었습니다. 세명의 친구들도 불안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피신할 곳을 찾던 이들은 산 정상의 동쪽 방향으로 나 있는 조그만 석회암 동굴을 발견했습니다. 우선 몸을 피신하고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렸다 구조대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밤이 되면서 추위가 엄습했습니다. 워낙 높은 지역이었기 때문에 온도가 급강하 한 것입니다. 가장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습니다. 이들은 밖에서 나뭇가지를 주워와 불을 지폈습니다. 그러나 밤이 깊어지고 눈은 쌓이면서 더 이상 솔가지를 주워올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그들은 각자의 배낭을 열었습니다. 등산장비로 가져왔던 텐트와 침낭을 불에 넣었습니다. 침낭 속에 들어가 있는 것만으로는 체온을 유지할 수 없었습니다. 장갑, 모자 심지어 신고 있던 등산화까지 벗어 불을 지펴야만 했습니다.

“얘들아, 조금만 더 참자. 날이 밝으면 구조대가 도착할거야. 절대로 잠자면 안돼”

현준이가 꺼져가는 불 앞에서 친구들에게 용기를 복돋워주고 있었지만 이들의 눈은 이미 반쯤 감겨 있었습니다. 영빈이도 현준의 말에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정신은 혼미해져 가고 있었습니다.

다섯 명의 친구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서로를 부둥켜안고 몸을 마찰했습니다. 서로의 입김을 모아 온기를 만들었습니다. 점점 따듯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봄날 같은 낙원이 이들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그날 밤 영빈은 꿈을 꾸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형, 누나가 자신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자신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도담도담 자고 있는 꿈을... 너무나도 포근한 꿈이었습니다.

아침해가 떠올랐습니다. 동쪽방향에 위치한 이 동굴에 햇빛이 가장 먼저 닿았습니다. 동굴 안까지 햇빛이 비추고 나서야 영빈은 눈을 떴습니다. 그런데 너무 무겁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또한 가슴이 무척 답답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게 어찌된 일일까?

네명의 친구들은 모두 낙원으로 떠났습니다. 영빈만 동굴에 남겨놓고 모두 떠난 것입니다. 땔감으로 모두 사용한 줄 알았던 등산용 털 스카프 넉장이 영빈의 가슴에 칭칭 감겨 있었고 친구들은 차례차례 엎드린 채 영빈의 몸위에 포개져 있었습니다. 영빈을 얼어죽지 않게 하려고 털스카프에 이어 몸으로 친구를 보호했던 것입니다.

지난 밤 영빈이의 꿈속에 나타나 이불을 덮어주던 가족들은 다름 아닌 친구들이었습니다. 또한 꿈도 아니었습니다. 추위에 정신이 혼미해져가던 영빈에게 있어 단지 꿈으로 느껴졌던 것입니다.

스카프와 친구들을 끌어안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는 나지막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다정한 연인이 손에 손을 잡고
걸어가는 길
저기 멀리서 우리의 낙원이 손짓하며
우리를 부르네
길은 험하고 비바람 거세도
서로를 위하며
눈보라 속에도 손목을 꼭 잡고
따스한 온기를 나누리
이 세상 모든 것 내게서 멀어져 가도
언제까지나 너만은 내게 남으리
다정한 연인이 손에 손을 잡고
걸어가는 길
저기 멀리서 우리의 낙원이 손짓하며
우리를 부르네

 



--->이 글은 가요 <젊은 연인들>에 대한 것으로 제가 대학교 다닐때 엠티 가서 선배한테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동화적인 기법을 이용해 얼마전에 재구성해 완성한 것임을 밝혀드립니다. 이 시대 필요한 감동이야기라 생각되어 올립니다.  그림을 그려 준 아내 김령희와 땅끝 마을 해남의 동화 친구 구지 '조대희' 님에게 다시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