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세상

유사휘발유 여전히 기승

그루터기 나무 2006. 6. 6. 20:03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 나라.' 에너지 절약을 강조하다 보니 이 문구는 이제 한글을 깨우친 어린 아이들도 다 알고 있을 정도입니다.


휘발유 가격이 엄청납니다. 국제 유가가 오르니 국내 공급가도 당연히 오를 수밖에 없겠지요. 지난 10년 동안의 휘발유 평균 가격을 한국석유공사 자료에서 조사해보니 97년(838원), 98년(1122원), 99년(1191원),2000년(1248원), 2001년(1280원), 2002년(1269원), 2003년(1294원), 2004년(1366원), 2006년 현재는 1500-1600원대. 엄청 올랐습니다.


이처럼 휘발유 가격이 오르면 승용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요? 타던 승용차를 팔아버리겠다는 사람도 있겠고 운행 횟수를 줄이겠다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자는 극단적인 경우로 그저 마음만 그렇게 먹은 사람들이 많고 후자는 운전자의 입장에서 장기적으로 볼 때 최선책은 아닐 것입니다.몇 번 실천하다가 결국 편안한 운전석으로 되돌아오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직업상 항시 운전을 해야 하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이 고유가 시대가 죽을 맛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운전자들은 다른 데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습니다. 휘발유가 아니더라도 차를 움직일 수 있는 싼 가격의 대체품이 있다면 당연히 그것을 찾게 됩니다. 바로 '세녹스'입니다. 차를 운전하고 다니는 사람들이라면 세녹스에 대해 대부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연료 첨가제라는 이름을 단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페인트 가게에서 희석제로 쓰이는 시너, 톨루엔 등을 불법으로 제조해 만든 가짜 휘발유도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불법 제조하다가 불나는 경우도 종종 있었지요.


이 같은 무허가 불법 판매상을 적발했다는 뉴스 보도가 여러 차례 나간 바 있지만 TV나 신문지상을 통해 보여지는 것보다는 훨씬 많은 곳에서 이러한 제품들이 실제로 암암리에 유통되고 있습니다.


특히 주택가 골목을 지날 때 주의 깊게 살펴보면 '연료첨가제'라는 문구가 적힌 조그마한 플래카드나 입간판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또한 한적한 시골의 도로에는 트럭이나 봉고차 등 지입 차량을 통해 불법으로 유사제품을 판매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골에 내려가다보면 이런 불법 판매상을 여러 차례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이 문제를 좀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연료첨가제로 잘 알려진 'LP파워'를 판매하고 있는 집 근처의 한 페인트 가게에 들렀습니다. 이미 한 대의 승용차가 첨가제를 넣고 있었고 또 한 대가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두 차가 모두 가고 난 후 저는 창문을 빼꼼히 열고 "아저씨, 지금 넣을 수 있어요?"라고 묻자 주인 아저씨가 고개를 끄덕이며 파란통과 함께 주입을 할 수 있는 장치를 꺼내왔습니다. 파란색 플라스틱 통에는 제품에 대한 아무런 표시가 없었습니다. 그냥 통이었습니다. 연료첨가제로 'LP파워'라고는 하지만 공인기관에서 성분 분석을 하기 전에는 어떤 물질인지 도통 알 수 없습니다.

 

<아래쪽에 파란색의 연료첨가제 통이 보인다>


다음은 연료첨가제를 넣는 약 3분여 동안 페인트 가게 주인과 나눈 대화입니다.


"아저씨, 이거 넣어도 정말 문제 없어요?"

"우리는 최고급 제품만 취급하기 때문에 문제 없어요. 우리는 세금 다 내고 허가도 받았기 때문에 아무 문제 없어요. 단골 손님도 많아요."

"그런데 이거 세녹스인가요?"(물론 세녹스가 아니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LP파워요."

"그런데 세녹스는 현재 정부에서 원료 공급을 중단해서 유통이 안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런데도 굉장히 많이 유통되고 있어요."

"아니, 정부에서 규제를 하고있는데 어떻게…?"

"말이 세녹스지 가짜가 많아서 그렇죠."

"(화제를 돌려)"그런데 사람들 많이 와요?"

"에쿠스에 넣는 사람들도 많아요."

"네? 에쿠스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뭐가 아쉬워서 이걸 넣어요?(눈을 휘동그랗게 뜨며 놀란 표정을 지여 보였다)"

"에쿠스는 만땅 넣으면 4통(80리터)들어가는데 휘발유보다 3만원은 싸게 넣을 수 있죠."


첨가제를 넣고 나오는 순간 또 한 대의 승용차가 들어왔습니다. 10여 분 동안 저를 포함해 총 4대의 승용차가 연료 첨가제를 넣었습니다. 정말 불티나게 팔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저는 골목 주차를 하는 동안 무려 세 번이나 시동을 꺼뜨렸습니다. 주차 중에는 전례 없던 일입니다. 평지를 달릴 때는 별 문제가 없었는데 비탈진 골목길에서 후진으로 주차를 해야 하는 상황, 즉 힘을 많이 써야할 때에는 힘 없이 시동이 꺼져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휘발유를 사용할 때와는 확연히 다른 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세녹스가 처음 출시돼 환경부(국립환경연구원) 인증을 받고 산자부 등 정부기관과 법적 마찰이 없었던 때 몇 번 넣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도 차에 이런 현상이 있었습니다. 시동이 매끄럽게 걸리지 않는가 하면 비탈길에서 힘이 딸리는 현상이었습니다.


한국석유협회에 따르면 연료첨가제 혹은 유사휘발유로 알려진 세녹스, LP파워, ING 또 이것들의 아류 제품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가짜 휘발유가 전체 휘발유 시장의 약 7∼8%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불법 연료 첨가제 또는 유사 휘발유(가짜 휘발유) 등이 우후죽순처럼 퍼져나가고 있고 검증되지 않은 물질로 인한 차량의 안전성, 세금 등 문제가 많아 보입니다. 특히 페인트 희석제로 쓰이는 시너는 차량 충돌이 일어날 경우 휘발성이 강해 화재·폭발 위험이 높다고 합니다.


요즘처럼 어려운 시기에 소비자들은 제품을 선택하는 데 있어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순하게가격이 싼 것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결과가 향후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는 크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유사 휘발유 근절 대책이 아쉬운 때입니다.

 

다른 기사를 보니 지난 해 12월 LP파워 제조 판매 행위가 불법이라고 대법원 확정판결도 났고 올초 세녹스도 대법원이 최종 유죄판별을 내린 소식이 있는데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소식도 끊이지 않는군요. 차량의 안전과 운전자의 안전을 위해 정말 신경 많이 써야할 듯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