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발견

운동중독, 당사자는 인정 안한다

그루터기 나무 2007. 11. 19. 07:59


당뇨 발병, 술 담배 끊고 운동 시작


이번주 주말에 시골에서 김장을 한다. 우리 6남매 모두 다 내려와서 한꺼번에 김장을 한다. 그런데 큰 매형은 못내려온다고 하신다. 동호회에서 마라톤이 예정돼 있기 때문이란다. 마라톤 때문에 가족 행사에 큰 매형이 빠졌던 적이 비단 오늘내일의 일은 아니다. 이제 그러려니 하고 식구들도 생각한다.


큰 매형! 3년전까지만 해도 엄청난 주당에 일명 ‘골초’였다. 길바닥 아무데서나 누워 잘 정도로 인사불성이 돼 술을 드셨다. 얼마나 술을 즐겼는지 아니, 술에 빠져 살았는지 더 이상은 설명 안해도 될 듯 하다. 담배 또한 손에서 떠날 순간이 없었으니 대단한 ‘골초’였다.


그러던 어느 날 40대 초반의 나이에 당뇨가 찾아왔고 이 여파로 이가 흔들리고 잇몸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그 일을 계기로 큰매형은 그 좋아하던 술과 담배를 완전히 끊었다. 작은 업체 사장이었지만 술자리 모임은 가지도 않았으며 불가피하게 가더라도 1.5리터 페트병 사이다를 지참해 소주 대신 마시곤 했다. 매형의 꿋꿋한 의지와 성격을 아는 사람들은 더 이상 술을 권하지 않았다.


술, 담배를 끊은 후 시작한 것이 바로 ‘운동’ 이었다. 매형은 마라톤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5km 뛰기도 헉헉거리던 매형이 3년이 지난 지금 풀코스를 가뜬히 뛰고 메달을 가져온다. 마라톤 동호회에 든 매형은 주말마다 마라톤을 한다. 신문사에서 주최하는 마라톤은 물론 동호회 자체적으로도 매번 마라톤이 있다. 쉬운말로 그 동호회는 밥 먹고 뛰는게 일이다.


나날이 심해지는 운동...철인 3종 경기까지


매형 사무실이 서울 여의도이고 집은 성북구 한성대 근처이다. 한성대와 혜화동은 지하철 한정거장 차이라고 하면 거리 개념이 쉽게 이해될까? 여하튼 집과 직장이 결코 가깝지 않은 거리이다. 그런데 매형은 일주일에 세 번은 마라톤으로 출퇴근하고 세 번은 승용차로 출퇴근한다. 저녁 8시쯤 퇴근하면 매형은 인근 학교 운동장에서 마라톤을 계속한다.


그러던 어느 날 매형은 ‘인간 체력의 한계에 도전하는 경기’라는 정의가 내려진 <철인 3종 경기>를 시작했다. 고가의 싸이클도 구입했다. 아예 거실에 모셔놓고 시간이 날때마다 윤을 내곤 하신다. 아이들이 만지지도 못하게 애착을 갖고 계신다.


매형의 ‘운동 심취’는 생활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첫째 술, 담배를 퇴치하고 당뇨를 물리칠 수 있었다. 이와 함께 주말이면 빡빡한 운동 일정 특히 마라톤 때문에 집안 대소사에 빠지는 일이 많아졌다. 주로 일요일에 마라톤 일정이 있다보니 토요일날 오후에 시골에 내려갔다 저녁에 바로 서울로 올라가 부모님(장인, 장모님)마음을 오히려 속상하게 만들기도 했다. 차라리 내려오지 않았더라면 덜 서운했을 것을 하고 말이다. 모두 그 마라톤이 가져온 여러 가지 변화중에 하나였다.


 

 

운동중독증 조언...당사자는‘아니다' 부인


상황이 이렇다보니 우리 형제들 사이에서 큰 매형이 ‘운동중독’ 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고 역시 ‘운동중독’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특히 마라톤은 자기만족, 자기와의 싸움 등 심리적인 차원에서는 좋은 운동이지만 장기적인 마라톤은 무릎관절 손상이나 활성산소 다량방출로 노화를 촉진하는 등 운동효과면에서는 역효과를 가져오는 운동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의학계에서는 마라톤보다는 걷는 운동인 ‘파워워킹’을 많이 권장하고 있지 않은가?


여하튼 매형은 마라톤을 하다가 타박상을 입었다며 허벅지에서 종아리까지 내려오는 무슨 테이프 같은 것을 붙이고는 다음 마라톤을 준비했다. 무릎관절 손상, 활성산소 등의 예를 들으며 운동이 너무 과한 것 아니냐고 걱정의 말씀을 드리면 비타민 A에서 G까지(?)의 영양분을 섭취하고 뛰는 것이라 전혀 지장이 없다고 하신다.

TV라도 출연시켜야 인정하려나?


그래서 어느 날은 매형에게 요즘 ‘운동중독’이 이슈화되고 있고 TV에서 보니 매형의 증상이 운동중독 증상과 완전히 일치한다고 하자 여전히 비타민인가 하는 영양제와 일본에서 만들었다는 무슨 테이프같이 생긴 파스(?) 같은 걸 보여주며 중독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면서 나더러 운동부족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면 나는 내가 운동부족인건 확실하게 인정하는데 매형도 운동중독이 확실하다고 말씀드리지만 전혀 먹히지 않는다.


답답하고 걱정되는 마음에 누나에게 한마디 했다. 마라톤 하면 심폐기능 좋아지고 지구력 길러지겠지만 무릎관절이나 활성산소로 인한 노화촉진 등 그 부작용을 텔레비전에서 못봤냐고 하자, 다 봤다고 한다. 그러면서 나름대로 마라톤 즉 운동은 매형이 자신을 다스리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설명하며 나더러 운동을 하라고 한다. 다른 사람들처럼 텔레비전이라도 출연시켜 의사 진단 내리고 해야 스스로를 인정하고 운동중독임을 믿을 것인가?


누가 봐도 매형은 운동중독임에 틀림없는데, 당사자와 그 가족들은 그것을 인정하고 있지 않다. 운동중독에 대한 증상이나 현상 등을 텔레비전에서 다 봤다고 하면서도 정작 매형과 누나는 운동중독이라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운동을 하지 않는 나에게 운동을 권유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날이 가고 세월이 지나도 매형의 운동량은 줄어들질 않고 때때로 통증을 호소하기도 한다. 또한 이 때문에 불참하는 가족 대소사로 인해 말들이 나오고 있는 상황인데....큰 매형에게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적당한 운동을 하시라고 말이다. 


좋은 방법 없을까? 운동중독증임을 스스로 깨닫게 하는 좋은 방법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