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발견

밥 남기면 어김없이 주먹 날아와

그루터기 나무 2007. 11. 10. 12:23

블로거 토토님의 <군 입대 앞둔 아들 둔 엄마의 심정>이라는 글을 읽으니 슬며시 옛 추억이 생각난다. 약 14년전 군입대 했을 때의 상황이다. 입대 당시에는 모든 것이 숨막히고 지옥같았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저 한줄기 추억일 뿐이다. 아닌 말로 당시에는 군생활 했던 방향에 대고 오줌도 누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모두 추억이 돼 버렸다. 그 추억담을 지금부터 풀어놓을까 한다. 


논산훈련소 입소하던 날-

바지내리고 뭔가 검사


1993년 12월, 나는 上.下 두 권으로 이루어진 ‘논산’ 이라는 소설책을 읽었다. 논산훈련소로 입영날짜를 이미 받아놓은 때였다. 논산이라는 소설책에서 나는 그곳생활의 대부분을 읽을 수 있었다.


1994년 1월 20일. 1학년 2학기 성적표도 받아보지 못한 상태에서 나는 논산훈련소에 입대했다. 자원입대한 것이니 억울할 것도, 서러울 것도 없었다. 유난히도 춥던 그날 줄과 열을 맞춰 선 입소 장병들은 조교의 지시에 따라 아랫도리를 까 내리고 뭔가 검사를 받았다. 사실 추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앞으로 펼쳐질 이곳 생활에 대한 공포심, 두려움이 엄습했다.


지하철에 사람 들어가듯 대형 목욕탕에 꾸역꾸역 들어가니 천정에서 물이 쏟아졌다. 한 3분 정도 지났을까? 열심히 비누칠을 하는데 조교들이 들이닥쳐 참새 몰 듯 휘휘 몰아냈다. 황당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역시 군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군복을 받은 장정들이 보충대 내무반에 일렬로 정렬했다. 앞에는 입고 있던 사복과 신발이 놓여있다. 이어 조교들이 끈과 누런 소포용지를 나눠주며 소포는 싸는 요령을 시범했다. 장정들은 조교의 시범에 따라 소포를 열심히 싸보지만 쉽지 않았다. 종이가 터지고 끈은 풀어지고, 조교들의 성난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그날 저녁 메뉴는 ‘똥국’이었다. 물론 나중에 알게 됐지만 된장을 약간 풀고 무와 시래기 몇 가닥을 넣은 국을 ‘똥국’이라고 불렀다. 식사를 마치고 보충대 내무반에 들어오기 전 막사 앞에서 장정들은 2열로 마주 선 다음 꼿꼿한 자세로 담배를 피웠다. 이렇게 나의 군 생활은 시작됐다. 남들 다 하는 거 나도 나름대로 훈련소 생활에 적응해 갔다

 

 

 

군용열차 차고 공포에 떨며 밤새 어디론가 가다


4주 동안의 교육을 끝내고 우리는 일반 열차는 들어오지 않는 연무대 역에서 군용열차에 올랐다. 후반기 교육을 받으러 가는 것인데 누가 어디로 갈지는 아무도 몰랐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열차는 밤새 전국을 빙빙 돌다가 해당 부대에서 장병들을 내려준다고 했다. 밤에 이동하다보니 확인할 길이 없었다. 중간 중간에 여러 장병들이 누군가의 인솔 하에 내렸다. 몇시간을 달렸는지 아무도 몰랐다. 한참 만에 내린 곳은 용산역 용사의 집이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또 갈라졌다. 내가 간 곳은 성남 육군종합행정학교였다. 헌병과 함께 행정병들이 후반기 교육을 받는 곳이었다. 우리는 주로 교실에서 이론 교육을 받았다. 수동 타자기를 이용해 공문서를 작성하는 방법도 익혔다. 비교적 편안한 생활이었다. 다만 이곳에 온지 보름 만에 북한에서 ‘서울 불바다’발언이 나오면서 군에서 한동안 소란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그런 중에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가고 있었다.


1994년 4월 중순. 4주 동안의 후반기 교육을 끝내고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오른 어느 날 우리들은 자대배치를 받았다. 어떤 동기들은 특전사에 차출되기도 했다. 그곳에 가면 매일 낙하산에서 뛰어내리고 특수 교육을 받아야 한다며 걱정하는 동기도 적지 않았다. 그나저나 내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앞으로 2년 동안 몸담아야 할 자대는 어디란 말인가? 운명의 자대 명령지를 받아드는 순간이었다.


혼자서 자대 찾아가는 길-마지막으로 자장면 한그릇 


부산시 해운대구 ○○사단. 그 부대에 자대를 받은 동기는 나를 포함해 둘뿐이었다. 경기도 성남에서 부산 해운대까지 인솔자는 따로 없었다. 다섯 명 이상 돼야 인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대 명령지를 절대 잃어버려선 안된다는 조교의 말과 함께 동기와 나는 육군종합행정학교를 나섰다. 개인출발이었다. 다음 날 오후 세시까지 해당부대에 들어가면 된다는 것이었다.


동기와 나는 다음 날 부산 해당부대에서 만나기로 하고 서울역에서 헤어졌다. 등에는 큰 군용 백을 짊어지고 모자와 가슴에는 바늘로 어설프게 매단 이등병 계급장을 하고 나는 대전행 열차에 올랐다. 대전 자취집에서 하루 묵고 다음날 부산으로 내려갈 참이었다. 객실과 연결 칸을 오가며 담배를 태우는 동안 일병, 상병 등과 몇 번씩 마주쳤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들을 향해 ‘충성 충성’ 하며 거수경례를 했다.


석 달 만에 맛보는 자유는 너무나 달콤했다. 차장 밖으로 보이는 풍경과 객실 안 민간인들의 모습이 왠지 낯설어 보이기도 했다. 낯설어 보였던 이유는 내가 군인이 돼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했다. 싱그런 봄 바람을 맞으며 형이 살고 있는 대전 자취방에 도착했다. 석 달 만에 다시 찾은 자취집은 변한 게 없었다. 나 자신만 변한 것 같았다. 참으로 묘한 기분이었다. 자대를 찾아 가는 도중에 내가 학교 다닐 때 살던 자취집에 들어갔으니…


다음 날, 생전 처음 부산 땅을 밟았다. 명령지에 나와 있는 대로 나는 부산 역에서 내린 후 그 앞에서 해운대 행 109번 버스를 탔다. 해운대 역에 내리고 보니 해수욕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말로만 듣던 해운대 해수욕장. 해운대 고등학교 이정표가 보였고 곧바로 육군 ○○사단 사령부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 앞으로 장교들이 수시로 드나들고 있었다. 그때 시간이 오후 한 시. 중국집에 들어가 간자장 한 그릇을 시켜먹었다. 언제 다시 먹을지 모르는 사회에서의 자장면.그러나 목구멍으로 자장면이 넘어가는 동안 나는 아무 맛도 느끼질 못했다. 이젠 ‘죽었구나’ 하는 생각이 자장면 맛을 쓰게 만들었다.


자대배치 받고 보니 신병교육대, "난 죽었다"


○○사단 사령부 보충대에서 이틀정도 보냈다. 처음에는 사단 사령부가 자대인줄 알고 있었는데 그곳에 대기중인 대기병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또 다른 예하부대로 배치를 받는단다. 드디어 중위 한 명이 나와 후반기 교육을 받지 않은 94년 3월 군번의 한 사병을 군용 트럭에 태워 어디론가 데려갔다. ○○사단 예하대대인 신병교육대였다.


참으로 막막했다. 내무반을 같이 쓰는 고참들이 모두 조교라니? 게다가 나는 조교가 아닌 본부중대 행정병으로 보직을 받았는데… 마치 논산훈련소에 다시 입소하는 기분이었다. 뻣뻣하게 얼어붙은 모습으로 내무반에 들어가니 한 50명은 돼 보인다. 이들이 모두 고참이다.


그날부터 한 이등병 고참으로부터 몰래 몰래 ‘교육’을 받았다. 뭔가를 빼곡히 적은 쪽지를 건네주는데 이는 ‘서열표’라고 했다. 쪽지에는 50여명의 고참 이름이 계급과 함께 순서대로 적혀 있었다. 내일까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순서대로 모두 외우라는 것이었다.


밥 남기면 주먹 날라와-군기잡는 방법도 여러가지

저녁때가 되자 상병, 병장 고참들은 걸어서, 이등병 고참들은 뛰어서 신병인 나와 3월 군번의 후임병을 데리고 식당에 갔다. 그리고 이등병 고참이 퍼주는 대로 밥을 먹어야만 했다. 상식적으로 봐도 3인분은 돼 보이는 밥이었다. 그러나 고참이 주는 밥을 남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만약 밥을 남긴다면 어김없이 주먹을 이용한 ‘교육’이 시작될 테니 … 훈련소에서 익히 들은 바였다. 그날 나는 밥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먹었다. 그 상황에서 무슨 밥맛이 있었겠냐마는, 그건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의무감 같은 것이었다.


다음 날 나와 3월 군번의 후임병은 식기함 뒤에서 ‘서열표 시험’을 봤다. 제대로 정답을 맞추지 못하고 더듬거리면 고참의 주먹이 정신없이 날아들었다. 한 대 두 대, 석 대 그렇게 쓰디쓴 추억을 마시며 따듯한 부산에서 차가운 나날들을 보냈다. 2년 동안.


남들은 부산에서 군대 생활 했다고 하면 무지하게 편하게 했을 거라고 말을 하곤 한다. 물론 편하다. 훈련이 많지 않으니까. 그러나 훈련병을 교육시키는 조교들을 고참으로 모시며(?)내무생활을 해본 사람은 안다. 그 지긋지긋한 군기 잡기.


그러나 지금은 많이 그립다. 14년전 부산에서 같이 근무했던 조교 고참들. 혹여 이 글을 보고 연락을 해오는 고참 형님(?)이 있을까?





 

 

Daum 블로거뉴스
군대추억있는 분 이 포스트를 추천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