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생전 처음 중국 음식 시켜먹던 날

그루터기 나무 2007. 11. 17. 20:34
 

'뭐 먹고 싶냐'는 물음과 '밥' 이라는 대답


17일 토요일 저녁, 우즈베키스탄과의 올림픽 축구 아시아 예선전이 펼쳐지는 가운데(지금도 보고 있지만 박진감 있는 경기는 아님)아내가 저녁으로 무얼 먹을거냐고 묻습니다. 더 정확히 “뭐 먹고 싶냐?”고 물었고 저는 늘 그랬듯이 “밥” 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뭐 먹고 싶냐?”는 물음과 “밥” 이라는 대답에는 매우 큰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아내는 매일 저녁 어떤 반찬, 어떤 국을 끓여야 할지 고민하고 또 고민합니다. 야심차게 반찬이나 국, 찌개 등을 준비해도 제가 그렇게 맛있게 먹지 않으면 아내는 고민하며 실망에 빠지기도 합니다. 만든 사람의 입장이 원래 그렇지 않습니까?


또 제가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고 그저 “밥”이라고 대답하는 것은 특별히 먹고 싶은게 없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매우 좋아하거나 매우 싫어하는 음식이 없기 때문에 아내가 뭘 먹고 싶냐고 물어도 “밥” 이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주 특별히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그중에서 논우렁과 냉이 들어간 된장찌개는 좋아하는 편입니다. 그렇다고 세끼를 그 된장으로 내놓을 수도 없는 일이기에 아내는 저녁밥을 차릴때마다 오늘은 또 무얼 준비해야 하나 하고 고민하는 것입니다.


저녁, 뭘 준비해야 할지 고민하는 아내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제가 반찬 투정은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주면 주는대로 먹고 없으면 없는대로 먹고, 정히 밥맛 없으면 물도 말아 먹고는 하지만 아내에게 왜 이것은 맛이 이렇고 저렇고 짜니, 싱겁니 등 이런 말은 일체 하지 않습니다.


아내 입장에서는 차라리 투정이라도 하면 이렇게 저렇게 신경이라도 써 볼텐데 제가 아무말 없이 그냥 먹으니 오히려 속이 더 답답한 모양입니다. 맛있으면 맛있다, 맛없으면 맛없다 등 가타부타 말이 있어야 하는데 음식에 있어서 만큼은 제가 뭐라 하질 않으니 답답하기도 할 겁니다.


아내는 아마 이런 것을 원하고 있을 겁니다. 무슨 음식을 내 놓았을때 내가 한입 먹고 보고 “와 맛있다”라는 감탄사. 이것이 모든 아내들의 바람 내지 원하는게 아닐까요? 어떤 것에 대해 반응해 주는 것, 표현해 주는 것, 어찌 보면 남편 입장에서는 쉽게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아내들에게는 큰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제 딴에는 그 표현이 잘 되지 않네요.


먹고 싶은거 표현하면 아내도 좋아할 터

여하튼 오늘(17일), 올림픽 축구 예선전이 펼쳐지는 가운데 우리 식구, 아니 아내가 선택한 저녁음식은 중국집에서 시켜먹는 것이었습니다. 자장면, 탕수육, 짬뽕. 그런데 재밌는건 6년째 살면서 집으로 중국음식을 시켜본 일은 처음이었습니다. 종종 중국집에서 외식도 하곤 하지만 생전 처음 가정으로 주문이라는 것을 해봤습니다.


날씨도 쌀쌀하고 하루 종일 부엌과 화장실에서 서서 일을 했던 임신 20주의 아내. 힘들기도 많이 힘들었을 것입니다. 시장엘 나가지 않았으니 마땅한 반찬거리, 국거리, 찌개거리도 없었을테고 그 어느때보다도 ‘귀찮니즘’이 아내의 몸을 괴롭혔을 것입니다. 그 귀찮니즘으로 중국집 배달이라는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생전 처음으로 중국 음식을 가정에서 시켜먹은 아내. 이것을 기념하기 위해 사진 한 컷을 찍었습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자면 그동안 저녁밥은 외식보다는 손수 지어먹었고 그때마다 반찬, 국거리, 찌개거리로 얼마나 많은 고심을 했을지를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네요.


 

 

앞으로는 특별히 먹고 싶은게 없어도 일부러 먹고 싶은 음식 목록을 아내에게 이야기해야겠어요. 그래야 아내도 신나게 음식을 만들 수 있겠지요. 그리고 먹으면서 연신 감탄사를 외쳐야겠어요. 그래야 아내 마음이 기쁠테니까요. 오늘 중국집 음식 시키면서 아내의 마음, 음식을 위해 고심하는 아내의 마음을 한번 느껴보게 됩니다.


매일 저녁 찬거리 때문에 고심하시는 주부님들, 공감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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