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할머니가 남기신 곰팡난 카스테라, 연양갱

그루터기 나무 2007. 11. 17. 00:06

붕어와 눈 마주치면 황달병 낫는다고 믿은 할머니

16일 저녁, 친한 선배 할머니께서 돌아가셔서 상가에 다녀왔다. 올해 80세인데 황달병이 심해져 돌아가셨다고 한다. 영정사진을 보니 풍채가 있으신 게 돌아가신 내 할머니하고도 모습이 비슷했다. 풍채가 있으셨던 내 할머니도 황달병으로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시골에서 살던 25년전 내가 초등학교 3학년때인가보다. 2월이었는데 할머니께서 황달병에 걸리셨다. 얼굴이고 눈이며 모두 노랗게 변했다. 당시 어떤 약을 썼는지 혹은 병원에 가셨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할머니는 어디서 들으셨는지 붕어와 눈을 마주치고 있으면 황달병이 붕어에게로 옮아간다고 믿고 계셨다. 미신이었다.


나와 형, 동생은 근처 냇가로 가서 붕어를 잡기 시작했다. 아직은 한참 추운 2월, 변변한 장화도 신지 않고 맨발로 그 차가운 물을 첨벙거리며 붕어를 잡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할머니의 병을 낫게 해드려야겠다는 일념으로 잡히지도 않던 붕어를 잡기위해 열심히 그물질을 해댔다. 붕어만 잡으면 할머니 병이 말끔히 나을거라고 어린 마음에서 믿었다.


우리 형제는 10여마리의 붕어를 잡을 수 있었다. 할머니는 그 붕어들을 놋대야에 담고는 물을 반쯤 채운 다음 집 뒤에 있는 비닐하우스로 들어가셨다. 밖에 날씨가 아무리 차가워도 해만 있으면 비닐하우스는 따뜻했다. 따스한 온기 속에서 할머니는 놋대야속의 붕어들과 종일 눈싸움을 하셨다. 그 풍채 있으신 할머니께서 쪼그리자 앉아 놋대야를 노려보고 계시던 모습,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우리는 그 후로도 몇 번 붕어를 잡아왔고 그때마다 할머니와 붕어와의 눈싸움은 계속됐다. 어린 마음에 우리 형제들은 제발 할머니의 황달이 붕어에게로 옮아가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그 싸움은 오래가지 못했다. 두 달 만에 할머니는 붕어와의 눈싸움에서 지고 말았다. 못자리를 한창 하던 4월의 어느 날 할머니는 그렇게 돌아가셨다. 10여년을 같이 생활하던 할머니의 죽음은 손자들에게도 큰 충격을 주었다.


할머니 남긴 곰팡난 연양갱, 카스테라 빵 보며 목 메어와

할머니의 장례가 끝나고 옷가지 등 유품을 정리하던 중 할머니가 지내시던 골방에서 여러 가지 물건들이 쏟아져나왔다. 그중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것은 할머니의 서랍속에서 나온 군것질 거리였다. 곰팡이나고 부패한 연양갱, 카스테라 빵 등. 당시 큰 형이 대전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큰 형을 끔찍이도 생각하셨던 할머니는 이런 간식이 들어올때마다 드시지 않고 잘 숨겨두셨다. 방학 때 큰형 내려오면 주려고 그렇게 쟁여 놓으셨던 것이다. 그것들을 보니 어찌나 가슴이 미어지던지....


할머니에게는 서른 명이 넘는 친손자 친손녀, 외손자 외손녀가 있지만 할머니와 함께 생활한 손자 손녀는 우리 형제들(6명)뿐이다. 다른 손자 손녀들이야 명절이나 생신때 한 두 번 �아오면 그만이었다. 다른 사촌들은 할머니가 한 가족이라는 개념보단 멀리 시골에 계신 ‘막연할 할머니’였지만 시골에서 같이 생활한 우리형제들은 할머니에 대한 느낌이 달랐던 것이다.  


할머니 산소 비석에 비문도 내가 작성했고 제사때에는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다른 손자 즉 사촌들은 갖고 있지 할머니와의 추억담을 가끔 이야기하며 한번 한번 절을 올리때마다 그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리곤 한다.


붕어, 연양갱, 카스테라 빵 그리고 넉넉한 풍채와 품성을 간직하신 할머니를....






Daum 블로거뉴스
할머니와 추억 있으신 분은 추천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