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파란만장(?)한 사랑이야기

그루터기 나무 2007. 7. 24. 22:33

 

6월초 대학 친구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제가 사회를 봤죠. 그런데 그 친구가 벌써 아기를 가졌다고 합니다. 제일 먼저 저한테 연락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에게는 특별한 사랑 이야기가 있습니다. 특히 그녀와 처음 만나 데이트를 하고 프러포즈를 하는 과정이 너무 재미있습니다. 지금부터 그 친구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그러나 파란만장한(?) 연애담을 펼쳐보겠습니다.... <새롬이 아빠>

 

주인공 광호와 그 친구들

 

 

대학 시절 광호는 소위 ‘범생이’였다. 수업이 끝나면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가 어학실에 들러 두 시간 정도 영어회화 연습을 한 후 자취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이러한 내 생활은 늘 반복됐다. 쉬운 말로 광호는 ‘시계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생활이 반복되던 어느 봄날, 광호는 그날도 어김없이 어학실에서 영어회화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귀에 헤드셋을 쓰고 작은 목소리로 영어테이프를 따라 발음하고 있는데 갑자기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유창하게 영어회화를 구사하는 한 여학생의 목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광호는 고개를 살짝 돌렸다. 영문학과 야간학부에 재학 중인 여학생이었다. 광호는 그 여학생을 잘 알지는 못했지만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어 어학실에 오갈 때마다 눈인사를 나눈 적이 있는 사이였다.

여하튼 그녀의 큰 목소리 때문에 회화 공부에 방해가 되긴 했지만 그렇게 나쁘진 않았다. 얼굴도 예뻤을 뿐 아니라 평소 차분한 그녀의 행동에 광호는 점점 빠져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광호는 다음날도 어학실에서 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그날따라 머리가 약간 아팠다. 아무래도 실내에 너무 오래 있어 그런 것 같다고 광호는 생각했다. 광호는 머리를 식힐 겸해서 어학실에서 나와 도서관 앞 시계탑 광장에 앉았다.

많은 커플들이 나란히 앉아 사랑의 언어를 속삭이는 모습이 보였다. 따스함 봄볕에 행복해하는 그들을 보면서 광호는 마음이 씁쓸해졌다. 자신에게는 언제쯤 저렇게 예쁜 사랑이 찾아올까 생각하며 마냥 부러울 뿐이었다.

우울한 마음에 광호는 학교 뒤에 있는 우암산에 올랐다. 기분전환이나 할까 해서였다. 울긋불긋 피어있는 진달래, 개나리가 광호의 마음을 더욱 더 우울하게 만들었다. 정겨운 풍경이 있는 이곳을 혼자 올라가야 하는 신세가 한탄스러웠기 때문이었다.

바로 그때 50미터 전방에서 바위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는 누군가를 발견했다. 어학실 바로 그 여학생이었다. 광호는 그녀가 있는 곳으로 산길을 따라 올라가는 동안 그녀에게 말을 걸어야하나 그냥 지나쳐야하나 하고 많이 고민했다. 숫기가 없던 그에게 있어 그녀에게 말을 건넨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용기를 냈다. 그냥 말 친구라도 해볼 참이었다.

“안녕하세요. 저 영문과 3학년 문광호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긴 왠일이세요?”
“안녕하세요. 머리가 아파서 바람 쐬러 잠깐 올라왔어요.”
“아, 그러세요? 저도 두통이 있어서 바람 쐬러 왔는데.”
“아, 정말요? 아마 헤드셋을 오래 쓰고 있어서 그런가 봐요.”

‘두통’이라는 공통 주제로 시작한 광호와 그녀의 대화는 곧바로 다른 주제로 이어졌다. 그들은 그날 엉덩이가 저리도록 세 시간동안이나 그곳에 앉아 대화를 나눴다. 광호는 그녀와 얘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빠져들었다. 마음 씀씀이가 너무나 곱고 반듯한 사람임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회를 본 나, 새롬이 아빠..

 

 

 다음날부터 광호와 그녀는 같이 다녔다. 떡볶이 먹으러 갈 때나 수업 들어갈 때 늘 붙어 다녔다. 물론 외형상으로는 분명 커플이었지만 누가 먼저 사귀자는 말은 못했다. 그러나 광호는 이런 관계까지 발전한 것만도 큰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좋아한다고, 사귀어보자고 말은 하고 싶었지만 숫기 없는 광호로써는 그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 뒤 한 달. 그녀의 생일날이었다. 광호는 이벤트를 준비했다. 그녀를 불러 향긋한 아카시아 냄새가 은은한 법대 앞 벤치에 앉혔다. 그리고는 평소 갈고 닦은 기타와 노래솜씨를 과감하게 뽐냈다.

곡명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내게 너무 예쁜 그녀’였다. 노래가 끝남과 동시에 선물도 건네주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는 책’ 이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그 책의 첫 페이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내게 너무 이쁜 그녀, 언제나 내 곁에 있어 줄 건가요?”

책을 건네주고 나서 광호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이 앞에 있는 상황에서 그녀가 그 메모를 확인하는 게 쑥스럽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조용히 생각할 수 있도록 한 광호의 배려이기도 했다.

그날 밤 광호는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그 동안의 정황으로 봐서는 이번 일을 계기로 더 친해질 거라고 믿었지만 혹시 부담을 느껴 더 멀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광호는 내심 전자의 경우만 생각했다. 행복한 상상을 했던 것이다.

그 다음날 그녀는 어학실에 나타나지 않았다. 수업시간에도 올라오지 않았다. 망설이다 못한 광호는 그녀에게 수 차례 걸쳐 문자메시지를 보냈지만 답이 없었다. 또 많이 고민한 끝에 휴대전화도 해보았지만 묵묵부답이었다.

광호는 억장이 무너지는 듯 했다. 자신에게 부담을 느껴 그녀가 학교도 나오지 않고 훌쩍 떠나버린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음날도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광호는 그녀의 생일날 그렇게 고백한 것을 몹시 후회했다.

시간을 더 두고 자연스럽게 더 친해졌어야 했는데, 너무 성급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잠시나마 광호에게 행복감을 안겨줬던 그녀는 완전히 떠나버렸던 것이다. 믿고 싶진 않았지만 광호는 그녀가 떠난 것이라고 최종 결론을 냈다.

그녀가 사라진지 3일째 되던 날 어학실에서 광호는 깜짝 놀라 쓰러질 뻔했다. 광호 자리에 그녀가 놓고 간 선물이 놓여있었기 때문이었다.

‘소중한 사람에게 주는 책’ 이었다.

“그리 예쁘진 않지만, 언제나 광호 씨 곁에 있을게요.”

그랬다. 그녀는 프러포즈를 받은 후 생각 중이었다. 그래서 광호 전화도 받지 않은 것이었다. 그저 광호 혼자 섣부른 판단을 한 게 잘못이었다.

올 6월 초 광호와 그녀는 결혼을 했으며 허니문 베이비를 갖고 마냥 행복에 빠져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