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생계 위한 행상과 아기의 낮잠 사이에서의 단상

그루터기 나무 2007. 6. 2. 09:06

 

 

 

23개월된 우리 새롬이. 낮잠을 자야하는데 트럭 확성기 소리에 놀라 깨 울어대곤 한다.

 

 

나는 우리나라 최대 주택밀집지역인 성남 구시가지에 살고 있다. 주택이 밀집하다보니 거리거리마다 많이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방충망 달아요. 싱싱한 과일 사세요. 산지에서 직접 올라온 마늘이 있습니다” 등등 외치는 트럭 행상들. 스피커에서 쩌렁쩌렁 울리는 행상들의 목소리. 특히 우리집앞을 지날 즈음엔 더욱더 크게 들린다. 한마디로 내 입장에서는 엄청난 소음이다. 물론 행상아저씨 입장에서는 생계유지의 중요한 수단이다.


다시 주택밀집지역으로 돌아와서, 집이 많은 만큼 사람도 많고 아기들도 많다. 우리집 아기 새롬이도 23개월이다. 아기들은 거의 예외 없이 낮잠을 잔다. 주로 오후 들어서이다. 그런데 낮잠을 자는데 복병이 숨어있다. 바로 트럭 행상들의 확성기 소리이다. 아기는 제대로 낮잠 자고 깨어나야 기분좋게 놀고 쑥쑥 잘 자라는데, 트럭 행상들 확성기 소리에 늘 놀라 잠에서 깨어 울어대곤 한다.


거의 예외 없이 반복돼 펼쳐지고 있는 트럭 행상들과 낮잠자는 아기와의 치열한 공방전(?). 날이 더워 문을 닫아 놓을 수도 없고 멀리서 확성기 소리를 듣고 문을 얼른 닫는다 해도 그 소리가 너무 커 아기는 잠에서 깨어나 울어버리기 일쑤이다. 그래서 때로는 아내가 잠자고 있는 아기 새롬이의 귀를 틀어막기도 한다. 그러면 간신히 위기(?)를 모면할때도 있지만 뒤이어 따라오는 또다른 행상의 확성기 소리가 들린다. 그때마다 매번 달려가 아이의 귀를 틀어막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확성기 소리를 좀 낮춰주시면 안될까요?” “확성기 방향을 하늘 위로 향하게 하면 안될까요?” 이렇게 부탁드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방향을 위로 하게 되면 고층에 사는 세대들이 화를 내겠지?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갈 게 있다. 트럭 행상들의 생계와 아기의 낮잠 이라는 두 가지 일과 중에서 중요도이다. 물론 트럭행상들의 외침소리의 중요도가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생계를 위해 외쳐대는데 그깟 아기 낮잠이 뭐 대수냐 생각할 수도 있다. 사실 대수는 아니고 아기의 낮잠은 작은 일에 불과하다. 다만 그것을 받아들이고 느끼는, 사람의 차이에 따라 불평불만의 정도는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이런 마음자세는 필요한 것 같다. 트럭 행상들은 확성기 소리를 내면서 아기들의 단잠을 깨우는 것에 대해 약간은 미안해하거나 “그럴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아기와 함께 있는 엄마들 입장에서도 시끄럽긴 하지만 생계를 위한 것이니 트럭 행상들을 이해해주고 불편하더라도 참거나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서로서로를 이해하며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마음가짐의 기본이 아닐까?


트럭 행상은 더욱더 큰 소리를 내고 아기 엄마들은 더욱 더 불만의 소리를 높여 항의하고 따지고 해봐야 서로 싸움만 벌어질 일이고 그렇다고 서로간에 딱히 이를 해결할 만한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되면 서로의 기분만 상하게 될 것이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트럭 행상의 외침과 아기의 낮잠에 대해 이야기해보았다. 아마도 주택밀집지역에서 살아가는 아기 엄마들은 누구나 흔히 겪는 일이고 공통적으로 느끼고 있을 것이다. (너무 거창하게 말하는 것 같지만)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서로 강구해야 하는데 마땅한 방안 없이 맞물려 돌아가고 있는 일상 생활.


이 이야기를 하면서 문득 이 사회속의 일상이 떠오른다. 흡연자는 흡연 권리를 주장하고 비 흡연자는 간접 흡연 피해를 지적하며 담배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혹은 연예인들을 향해 달려드는 팬들을 몸으로 막아서는 경호원과 그래도 그 사이를 뚫고 들어가 스타의 옷자락이라도 잡아야만 속이 풀리는 극성 팬들 등등등... 이처럼 세상은 물고 물리는 사이로, 막아서는자와 뚫고 들어가는 자, 피해를 주장하는 자와 가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일상으로 채워지고 있다.


트럭 행상의 외침과 아기의 낮잠 사례를 직접 겪으면서 이 사회의 ‘상생’에 대한 나의 단상을 풀어 보았다.

 

 

생계를 위해 확성기를 외치고 다녀야 하는 트럭 행상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