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속 좁은 사위, 마음 넓은 장모님

그루터기 나무 2007. 6. 1. 21:49

명수 부모님은 시골에서 농사를 짓습니다. 덕분에 명수네는 시골에서 쌀을 비롯해 온갖 야채들을 갖다 먹습니다. 지난 주말에 시골에 다녀온 명수는 이번에도 무, 감자 등 야채를 많이 가져왔습니다. 특히 아내는 명수가 좋아하는 쇠고기 무국을 끓여주기 위해 다른 야채보다 무를 더 많이 챙겨왔습니다.

그런데 명수 아내는 시골에서 가져온 야채들을 종종 친정집에 갖다 주었습니다. 어떤 때는 쌀을 퍼다 주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콩을 좀 덜어 주기도 했습니다. 이번에는 큼직한 무 대여섯개를 갖다 주었습니다. 사실 친정의 생활이 어려워 아내가 신경을 꽤 쓰는 편이었습니다.

물론 아내가 친정에 곡식이나 야채를 갖다 줄 때는 남편인 명수에게 갖다 줘도 되냐고 물어보곤 했습니다. 명수가 장인, 장모님을 시골에 계신 부모님처럼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부모님이 시골에서 고생하며 농사 지은 곡식이라는 걸 생각하면 약간 마음이 좋지 않은 건 사실이었습니다.

명수 생각에는 서울에서 살아오신 장인, 장모님이 농사짓는 어려움을 모른다고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명수는 그런 마음을 아내 앞에서는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그냥 속으로만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속좁은 사위와 마음 넓은 장모님 (그림 조대희)

 

 

 

일주일 후에 장모님이 성남 명수네 집에 오셨습니다. 서울 영등포에서 성남까지 가깝지 않은 거리인데 장모님은 머리에 무엇인가를 잔뜩 이고도 손에는 비닐봉투가 들려 있었습니다. 길이 좁고 비탈져서 마을버스도 들어오지 않은 딸집에 장모님은 땀을 뻘뻘 흘려가며 무엇을 가지고 오신 것입니다.

명수는 장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방으로 들어가 컴퓨터 작업을 계속했습니다. 장모님과 아내의 대화가 주방에서 명수가 있는 방의 문틈으로 들려왔습니다.

"엄마, 이 상추쌈 어디서 났어? 굉장히 싱싱한데. 금방 따온 거 같아."
"응, 이거, 저번에 네 시댁에서 가져온 상추씨 옥상 화분에 심었는데…. 이번에 비 오고 나서 많이 자랐더라. 그래서 삼겹살 싸먹으라고 따왔어."

그러면서 장모님은 정육점에서 사온 삽겹살까지 내놓았습니다.

"와우, 역시 우리 엄마네."
"네 신랑, 몸이 좀 허약한 것 같아. 잘 좀 먹여라."
"알았어, 잘됐다. 그러잖아도 오늘 삼겹살 먹고 싶었는데…. 그런데 엄마 이건 뭐야?"

아내는 파란색 플라스틱 통을 열면서 엄마한테 물었습니다.

"응, 그거 총각김치야. 저번에 네가 준 무로 담았어. 맵지는 않을지 모르겠다."
"어? 그거 엄마 김치 담가 먹으라고 준건데…."
"집에 남겨놨어. 네 아빠하고 둘뿐이어서 많이 먹지도 않아."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많이 가져오면 내가 더 미안하지."

그동안 몇 번 처갓집을 갔었지만 명수는 상추가 자라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처갓집 대문 위 옥상 화분에서 상추가 자라고 있었지만 명수는 그동안 한번도 옥상에 오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상추를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퍼다 줬다고 생각했던 무는 맛있는 김치가 되어 되돌아왔고, 상추는 씨앗으로 처갓집에 간 지 두 달 후에 싱싱한 야채로 되돌아 왔습니다. 결국 장모님은 딸, 사위자식 어떻게든 더 먹이려고 애를 쓰신 것입니다.

장모님과 아내의 대화를 듣고 있던 명수는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 위 글은 제가 경험한 것을 그대로 동화 형식으로 다시 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