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70, 80년대 복고풍 이색 선술집 발견

그루터기 나무 2007. 6. 11. 13:22

 

 

영자의 전성시대로 시작하는 분위기부터 심상치않은 ** 열차 선술집.

 

 

 

오랜만에 지인들과 술 한 잔 하기로 하고 술집을 찾아 나섰다. 지난 일요일 저녁, 4호선 미아삼거리 역 근처에서 이색적인 선술집 간판이 발견했다. ??열차라는 간판의 선술집이 눈에 들어왔던 것.


선술집에 들어섰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문방구>,<목포식당>,<부안이발>,<대지극장>,<미아쌀상회> 등 향수를 자극하는 인테리어였다. 옛 이름의 상점명을 새겨 넣은 간판을 보니 마치 70, 80년대 영화세트장에 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자리에 앉으니 아기자기한 추억의 소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은 텔레비전에서나 볼 수 있는 여고시절 사진이며 교련복을 입고 실시했던 사열훈련, 작은 구슬 다섯 개를 왕구슬로 바꾸자며 친구를 구슬리던 추억, 이제는 개그프로에서 웃음의 소재로 사용되는 한 시대의 상징 새마을 운동까지 그야말로 ??열차에서는 추억의 향기가 물씬 풍겨나왔다. 7080 우리네 사는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선술집이었다.


복고풍을 들여다보며 옛날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며 주전자 막걸리와 김치파전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메뉴에는 김치파전, 부추전, 김치전, 감자전, 호박전 등이 있었는데 각각 오천원이었다.


그런데 기본 안주가 그야말로 예술(?)이었다. 메추리알, 방울토마토, 마카로니 범벅, 쥐포튀김, 연두부, 수박 이것이 서비스 안주란다, 뒤이어 계란찜이 추가 서비스로 등장했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술잔이 왔다 갔다 하고 술이 오를 즈음에서 팥빙수는 서비스가 나왔다. 이것이 서비스의 화룡정점(?). 달콤한 팥빙수 한 그릇을 비우고 나니 몸을 데웠던 술기운과 함께 이르게 찾아온 초여름 더위까지 싹 물러가는 듯 했다. 배고픈 청춘 안주발을 내세워 배불리 한 잔 술과 추억을 마실 수 있는 곳이었다.


이곳 ??열차에서는 기본으로 나오는 서비스 외에도 ‘추억의 뽑기’ 이벤트를 통해 주객들만의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어린 시절, 문방구에서 코묻은 오십 원을 내고 딱지를 뽑으면 구슬이며 문어발, 장난감을 주던 추억의 뽑기를 각색하여 술안주로 서비스하고 있는 것이었다. 주객들이 가장 뽑고 싶어 하는 안주는 바로 ‘공짜 계란말이’. 평소 운이 없다고 불평하던 우리  지인중에 공짜 계란말이를 뽑아 버렸다. 순간 박수가 터졌다. 계란말이에 케찹으로 정성껏 쓴 ‘공짜’를 보는 순간 테이블에는 웃음보가 터지기도 했다.


추억을 안주삼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일어나야 할 시간. 계산서는 가뿐하게도 만원 한 장이었다, 술에 취하고 서비스에 놀라고 분위기에 젖다보니 기분 좋게 취한 오늘의 멤버는 모두 흐뭇한 마음이었다.


지인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생각해보았다. 뭐든 새것이 좋다지만 추억만은 그 반대가 아닐까. 오래되고 낡고 먼지가 앉을수록 기분이 좋으니 말이다. 조금 오래된 지인이나 그리운 사람이 있다면 이곳 ??열차에서 얼굴 한번 보자고 말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그리고 한 번 흘러가버리면 다시는 오지 않을 가장 귀한 것, 젊은 날의 사랑과 추억을 마시자고 말이다.


여하튼 그날 본 이곳 선술집에 대해 한마디 덧붙이자면 가게 유니폼은 새마을운동 유니폼이었다. 아르바이트생이 새마을 운동 유니폼을 입고 열심히 서비스를 하고 있었다.


너무나 이색적인 분위기에 문 듯 주인장이 궁금했다. 확인 결과 주인장은 올해 37세의 최중규 씨. 이 가게에서는 ‘동네이장’으로 통한단다. ‘사장님’이나 ‘주인장’ 대신 ‘이장님’으로 통하는 이곳. 가게 인테리어 컨셉이 7,80년대이니 정감 있게 하려고 손님들이 그렇게 부른단다. ‘이장님'과 만나 간단한 얘기를 나눠봤다.


-인테리어를 7,80년대 풍으로 만든 까닭은?

“뭐든지 새것이 좋다지만 추억만은 낡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또 술 한 잔 마시면 빠질 수 없는 것이 옛이야기 아닌가. 각박한 세상 속에서 잠시나마 추억을 되돌아보게 하고 싶어 고풍격(?)으로 가게를 꾸몄다.”


-손님들의 반응은 어떤지?

“간판을 보고 재미있어 한다. 어떤 여자 손님은 자신의 이름이 ‘영자’라며 음식 값을 깎아달라고 농담을 한 적도 있다. 젊은 친구들부터 중년 분들까지 학창시절, 군대이야기를 하다보니 야인시대 김두한의 사무실이던 ‘우미관’이나 ‘화신백화점’등 옛날 간판을 더 만들어달라는 부탁도 있다.”


-이렇게 서비스를 많이 주는 이유는?

“추억을 파는 동네 이장이 야박해서 되겠는가, 저렴한 가격으로 푸짐하게 드시고 마음이  배부르게 돌아가시라고 항상 많이 드리려고 노력한다.”


역시 동네 이장님다운 말이다. 그날 나는 술 마시러 갔다가 이 선술집 취재만 잔뜩 하고 왔다. 좀 오래된 분(?)들이 옛날이야기를 안주 삼으면서 옛 추억들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면서 술 한잔 하면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나머지 글로 못다 한 이야기는 지금부터 사진으로 풀어놓겠다. 사진 촬영에 협조해 주신 ‘이장님’께 감사드리며 또한 옛 추억을 미디어다음 독자 여러분들과 공유할 수 있게 해 주신 점에 대해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열차 내부 풍경


 

춘천 여인숙이 보인다. 복고풍 그대로다.

 

 

 

이 얼마만에 보는 개조심 문구인가?

 

 

뽑기를 통해 서비스로 제공되는 공짜 계란말이.

 

 

군사정권 시절 교련복을 입고 군사훈련을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조교와 헌병이라는 완장이 왠지 정겹게 느껴진다.

 

 

1992년 땅콩. 술안주로 먹을 순 없지만 이렇게 걸어놓으니 그때의 추억이 떠오른다.

 

 

 

막걸리 한잔과 김치 파전. 입안에 군침이 돈다.

 

 

이색적인 메뉴판.

 

 

이 그림은 얼마만에 보는 것인가?

 

 

풍선과 태권브이까지 그 아득했던 옛날의 문방구.

 

 

 

기억하시는가? 빨간 마후라!!

 

 

뽑기판

 

 

1등에서 4등까지. 술마시는 재미 외에 뽑기하는 재미도 솔솔하다.

 

 

산아제한정책. 지금의 취지와는 맞지 않지만 한때 저런 시절이 있었다.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는 새마을운동.

 

 

술에 취해 전봇대만 보이면 소면을 갈기던 시대가 있었다.

 

 

미아리의 유명한 대지극장을 아시는가?

 

 

이름부터 정겨운 아리랑 사진관...그대로 재현했다.

 

 

지금도 간혹 전당포가 보이긴 하지만....

 

 

**열차 이장 최중규 씨.

 

 

추억의 구슬치기.

 

 

오른쪽 문구가 참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