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심야 대리운전기사와의 '깜짝 인터뷰'

그루터기 나무 2007. 5. 12. 15:26

 

 

대리운전 업체를 이용할때는 보험 등에 가입했는지 꼼꼼히 따져봐야 합니다.

 

 

5월 12일 새벽 2시, 성남시 분당구 분당지하철 미금역 근처에서 회식이 끝났습니다. 맥주 두잔 정도 마셨고 뱃속과 머릿속은 멀쩡했지만 혹시나 음주운전 단속이 우려되어 대리운전기사를 부르기로 했습니다. 길거리 차 유리창에 꽂혀있는 대리운전 전단지에 전화를 걸으니 5분 만에 대리운전 기사가 나타났습니다.


참고로 저는 대리운전으로 집에 오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술을 한잔이라도 마시면 원래 차를 안 움직이는데, 그날 분위기따라 맥주 두 잔을 마시고 대리운전을 부른 것입니다. 분당지하철 미금역에서 성남 단대오거리까지의 비용은 2만원. (업소 대리기사는 일반 길거리 대리기사하고는 달라서 요금이 조금 비싸다고 합니다)


생전 처음 해 보는 대리운전자와 함께 집으로 가는 길, 대리운전자는 운전석에, 저는 동반석에 타고 가는데 서로 말이 없으니 뻘쭘하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대리운전에 대한 이런 저런 것을 물어보았습니다.


이 대리운전 아저씨, 연세는 50대 초반이고 두 명의 대학생 자녀를 두고 있다고 했습니다. 6년째 성남 지역에서 대리운전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내와 맞벌이를 하고는 있지만 그것으로는 두 대학생 자녀 교육하기가 벅차다고 했습니다. 낮에는 따로 직장에 다니고 있고 밤에 대리운전일을 한다고 합니다. 일요일만 쉬고 일주일 내내 밤샘 대리운전을 한다고 합니다. 적잖은 연세에, 낮에는 본업을 갖고 밤에 대리운전을 한다는 사실에 저는 조금 놀랐습니다.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구요.


하루에 얼마 버느냐고 솔직담백하게 물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해 하룻밤이지요. 많이 버는 날은 10만원, 적게 버는 날은 3~5만원 정도. 2~3년 전에는 약 250만원 정도 가져갔는데 요즘은 150만원 선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경제 불황탓이지요. 대리운전을 부르기보다는 사우나나 찜질방 같은데서 묵는게 대리운전보다는 싸게 먹힌다는 뜻이지요.


그 다음 질문, 이 일 하면서 가장 큰 애로사항 뭐냐고 물었습니다. 역시 잠 부족입니다. 비는 시간 틈틈이 PC 방 같은데 들어가서 잠깐이나마 눈을 붙인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연락이 오면 곧장 튀어나가는 것이지요.


그 다음 애로사항으로는 역시 술을 좀 많이 드신 분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전에는 곤드레 만드레 취해서 어려움을 겪은 경우가 많지만 요즘엔 그렇게까지 마시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합니다. 간혹 술을 많이 마신 분들 중에는 자신의 집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아 시간만 빼앗기고 잔뜩 애를 먹는다고 합니다.


또 하나 애로사항은 이러한 술 취한 분들중에 대리 운전 요금을 제대로 내지 않는 경우입니다. 깎아달라고 하는 분들은 그래도 얌전한 분들이고, 아예 돈이 없다고(실제로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빼째라는 식으로 나오는 분들도 있다고 합니다. 정당한 요금을 받는 것이지만 술취한 사람을 상대로 그 요금을 받아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런 경우 이 대리운전 아저씨는 그냥 보내준다고 합니다. 그 술 취한 사람에게 무진장 미안함을 느끼게 한다고 합니다. 대리운전요금 2만원, 고객에게는 작은 돈일수도 있지만 밤샘 일을 하는 대리운전자에게는 큰 돈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 없다고 잡아떼는 경우 최대한 미안함을 줘서 집에까지 무료로 모셔다 드리면 나중에 이런 분들이 단골이 된다고 이 아저씨는 말합니다. 어쩌면 이러한 ‘악재’를 단골로 만들어버리는 이 대리운전기사 아저씨의 센스(?)


이러한 애로사항만 있는 것은 아니랍니다. 어떤 분들은(여유 있는 분이겠지요) 웃돈으로 1만원 정도 더 주시면서 수고했다고 하는 분들도 있다고 합니다. 저 같은 경우 그리 넉넉한 형편이 아니라(차종 마티즈)더 얹어 드리는 못했지만요...


집으로 오는 15분 동안 대리운전에 대한 아저씨와의 ‘인터뷰’는 이렇게 끝났습니다. 적잖은 연세에 참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분이라는 걸 느꼈습니다. 그리고 말로는 잘 표현 못하겠지만 험한 세상,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인생의 선배로써 알려준 그 대리운전 기사 아저씨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사실, 대리 운전에 대한 것만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서운했던 건, 그 대리운전 기사 아저씨. 왠 반클러치를 그리 심하게 사용하고 신호 대기하다 출발할 때 마치 수십톤 트럭 출발하듯 무리하게 출발운행을 하는지요. 주행거리 25km 남짓한 거리를 달려왔는데 주유계 바늘이 왼쪽으로 엄청 쳐져있었다는...제가 좀 소심해서 “살살 모세요” 라고 말도 못하고... (대리기사님 입장에서는 '한탕'이라도 더 뛰어야하니 어쩔 수 없었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여하튼, 대리운전 기사 아저씨와의 짧지만 유익한 인터뷰였다고 생각합니다.


대리운전으로 댁까지 가보신 분들께서 겪은 경험담을 들려주세요...

또 대리운전을 하시는 분들이 겪는 애로사항도 들려주세요.

 

 

밤만 되면 대리운전 전단지가 수없이 붙는 자동차. (성남시 중원구 금광동 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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