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뉴스

암투병 26세 주부, 지금은 어찌됐을까?

그루터기 나무 2007. 2. 12. 23:42

 

아홉살 난 아들 하빈이와 엄마 이남희 씨.

 

지난 2005년 9월 ‘비호치킨 림프종’ 이라는 일종의 혈액암을 앓고 있는 당시 26세 주부 (전남 진도 거주, 이남희.28세.9세 아들 하빈이)의 병원 생활을 취재한 적이 있다. 당시 빨리 병이 나아 친정 엄마와 함께 도봉산 산행을 하고 싶다며 소박한 꿈을 밝혔던 그녀. 그러나 암 투병중에도 스스로를 ‘행복한 암환자’라고 생각하며 긍정적인 마인드로 인터뷰까지 응했던 그녀다. 상태가 호전되면 다시 한번 인터뷰를 하겠다고 당시 그녀와 약속했지만 “어쩌면 이젠 만날 수 없는 사람이 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녀에게 쉽게 연락을 할 수 없었다. 1년 3개월이 지난 지금 그녀는 비교적 건강한 편이었다. 항암치료 후유증(합병증과 부작용)으로 고관절 수술이라는 큰 수술을 앞두고 있지만 그녀는 여전히 활발하다. 그래서 그녀의 요즘 생활과 지난 암투병기를 12일 인터뷰했다. 인터뷰를 통해 암투병 환자들에게 작으나마 힘과 용기를 복돋워줄 수 있었으면 바란다. <새롬이 아빠 주>


☞요즘 몸 상태는 어떤가요? 완치는 되었는지? 병원에서는 뭐라고 하는지요?


=요즘은 집에서 그냥 다른 주부들처럼 집에서 살림하고 아기보고 그래요. 애기도 아니죠!. 이제 초등학교2학년 올라가니까요. 몸은 예전에 비하면 말 그대로 ‘사람’됐죠. 밥도 해서 가족들하고 먹고 외출도 하고 놀러도 다니고 다른 사람들이랑 똑같아요. 아직 완치라고 하긴 그렇고요 항암치료 끝나고 4년 이상 아무이상이 없어야 “이남희님 병이 완치되셨네요!” 그 얘길 할 수 있다고 의사 선생님이 그러시네요.


매번 한달에 한번정도 정기적으로 검사받고. MRI, CT 찍어도 별 이상은 없다고 하네요. 너무 안정적이라고 잘 돼가고 있는 것 같다고 담당 교수님이 그러시더라고요, 그런데 석달 전에 다리가 아파서 검사를 했는데 약으로 인한 부작용과 합병증으로 다리가 안 좋아져서 고관절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이젠 종양내과가 아닌 정형외과를 다니고 있어요.


함암치료의 부작용으로 흔하진 않지만 간혹 그렇게들 나타난다고 그러시더라고요. 그래도 재발이 아니라 후유증이라고 하니 수술은 해야 하지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오히려 수술만하면 괜찮아 지는 거잖아요. 그냥 그렇게 편하게 생각하니깐 오히려 편하더라고요. 다시 그때로 돌아가라면 상상조차 하기 싫어요. 저한테 ‘완치’ 라는 단어는 중요한거 같지 않아요. 지금 생활에 만족하구 내 나름대로의 생각이 중요한거지 뭐 난 아프다. 난 작년만 해도 암환자였다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더 제자신이 더 초라해 지지 않겠어요?


☞처음에 암이라는 걸 알게 됐을 때 심정이 어땠는지 말해줄 수 있나요?(영화나 드라마속 주인공이나 걸리는 것인 줄 알았다지요?)


처음에 암이라는 걸 알았을 때. 그냥 병원침대에 누워서 천장만 쳐다봤어요. 그러다 이 생각 저 생각 하다보니깐 “내가 그동안 무슨 죄를 그렇게 짓고 살았나” 그 생각이 가장 먼저 들더라고요 나쁜 짓하고 그래야 벌 받고 나쁜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물론 저도 착한 일만 하구 산건 아니지만 남한테 해 끼치고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싶었는데 암이라… 그런 생각할수록 끝이 없더라고요. 그냥 저도 담담하게 받아들였던 거 같아요.


또 안 받아들이면 어떡하겠어요. 정말 TV드라마처럼 홀로 사라져서 바닷가 가서 울 수도 없는 거고… “왜 나예요? 왜 하필 나냐고요?” 하면서 병원에서 따질 수도 없는 거고 그냥 담당교수님도 항암치료하고 방사선치료 하면 금방 좋아진다고 하셔서 정말 그런 줄만 알았어요.


원래 성격이 진짜 단순해요. 말 한대로 믿고 보이는 게 진짜인줄알고 교수님 말은 너무 믿었어요. 당연히 그래야 되는 줄 알았고요. 처음부터 치료과정이 그렇게 힘든 줄 알았다면 정말 영화나 드라마 주인공처럼 폼도 좀 잡고 아픈 척도 많이 했을 거예요. 처음에 암이라는 진단이 내리기 전까지 검사를 너무 많이 했어요. 검사해서 이상 있으면 또 하고 또 하고 정말 별의별 검사를 다하니깐 지치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암이라고 했을 땐 이젠 검사 안 해도 되겠구나. 그 생각에 오히려 편한 거 같더라고요. 검사하는 게 얼마나 아프고 무섭던지… 통속에(MRI) 나 혼자만 집어넣고 40~50분을 있는데 눈만 깜빡거리고… 오히려 전 원인도 모르고 그렇게 끌려다니는게 더 싫었어요. 차라리 암이라는 진단 나오니깐 제 마음도 편하더라고요. 이젠 그냥 병원에서 하자는 대로만 하면 되겠구나 생각했어요. 뭐 슬퍼할 겨를도 없이 너무 정신없게 암이라는 걸 알았어요.


☞ 병실에서 잊지 못할 에피소드나 기억나는 분들이 있다면 누구이며 그 이유는요?


하도 많이 입원하고 옆에 사람도 자주 바뀌어서 기억도 가물가물해요. 어떤 중년의 아주머니가 입원을 하셨는데 하루 종일 누워만 계셨어요. 밤에 아저씨가 오셔서 주무시고 아침에 출근을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오전엔 아주머니 혼자 계셨는데 아무것도 안 드시고 누워만 계셨어요. 그러면서 끙끙 앓는 소리를 얼마나 하시는지 너무 듣기 싫은 거예요. 하루는 혹시 화장실가시기 불편해서 아무것도 안드시는줄 알고 화장실갈거면 엄마랑 제가 도와드릴 테니깐 뭘좀 드시고 TV도 보고 좀 일어나 계시라 그랬거든요. 그런데 대뜸 먹어서 뭐하냐고 그냥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알고 보니깐 대장내시경검사를 했더니 무슨종양이 있다고 했대요. 그런데 그게 암이 의심되진 않고 지켜보고 검사를 하는 중이었어요. 전 무슨 정말 말기암 환자인줄 알았어요.


그러다 몆일 있다 아무 이상 없다고 좋합검사비만 날렸다면서 퇴원하셨어요. 얼마나 기가 막히던지… 그러면 안 되지만 그분 퇴원하고 엄마랑 저랑 한 이틀은 그 아줌마 흉만 봤어요. 사람들은 그런가봐요. 조금만 이상있다하면 걱정부터 되고 겁부터 나고 그런가봐요. 아무 일도 아니면서 그 상황이 겁나고 해서 막말을 하고(그냥 물도 안 먹고 죽어버린다하고) 퇴원하실 땐 어찌나 아들 자랑을 하시던지…, 몇 일전에 제가 봤던 그분이 맞나싶을 정도로 다른 사람같더라고요.


전 속으론 정말 나 이러다 죽으면 어쩌지? 그 생각은 했어도 입 밖으로 낸 적은 한번도 없어요. 그럼 안되는 거잖아요. 내 새끼를 위해서라도 빨리 병을 떨쳐버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는데…그분 보면서 한 가지 느낀 건 “난 저러지 말아야지” 그거였어요.


또 제 옆에 저보다 1살 많은 언니가 암으로 치과병동에서 내과병동으로 옮겨 와서 알게 된  언니인데요. 그 언니는 제보다 1살이 많은데도 완전 아기 같았어요. 매일 TV에 목숨을 걸다시피 했어요. 드라마나 음식 나오는 프로를 놓치면 “어떡해 못 봤어 못 봤어.”하면서 난리법석을 떨었어요. 우리 같이 병원에만 있으면 무슨 낙이 있겠어요. 그런데 그 언니는 좀 지나치다싶을 정도로 TV를 좋아하더라고요. 그 언니도 참 표정이 밝았는데 계속수술을 해도 좋아지지도 않고 지금까지도 연락을 하는데 병이 재발돼 다시 항암치료를 시작했다네요. 머리가 좀 길었다고 좋아했는데 또 머리가 빠질 텐데 그 언니 많이 속상하겠어요.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 무척 즐겁고 명랑하게 생활했다고 들었는데, 그렇게 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항암치료 받는 동안 정말 힘든 일도 많았어요. 그런데 그럴 때마다 아들 하빈이랑 통화하고 그러면 또 아픈 게 금방 잊혀져버리더라고요. 그리고 아픈 건 잠깐이지. 자꾸 “나 아퍼” 라고 생각하면 실제로 더 아프더라고요. 항암주사 맞을 땐 머리가 정말 반으로 갈라지는 거같이 그 정도로 아프고 했는데도 일부러 TV도 개그프로만보고 다른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전 항암주사 맞을 때도 일부러 앉아서 맞고 엄마랑 말도하고 전화통화도하고 재밌었던 일만 생각했어요. 제가 머리가 너무 아프다하면 엄만 더 속상하실 거고 그래봤자 무슨 수가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어차피 그 횟수만큼 항암주사를 맞아야  내 병도 낫는 거라고 생각했고 얼른 맞아야 하빈이 학교 입학하는 것도 보고 그럴 수 있을 거 같았어요. 그냥 정말 좋은 생각만 하고 이시간이 지나면 난 정말 행복하게 잘살 거야. 그런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었어요. 모든 병은 마음속에 있다는 게 맞는 거 같아요.


☞지난번 인터뷰 때 항암치료 받고 몸이 개운해지면 친정 엄마와 함께 도봉산에 오르고 싶다고 했는데, 그 작은 소망은 이루었나요?


도봉산이요? 아빠랑 엄마랑 도시락 싸가서 밥도 먹고 막걸리도 한 잔씩하고… 도토리도 몇 개 줍고했어요. 형부들이 노는 날이면 친정집에 와서 교외로 드라이브도 시켜주고 몸에 좋다는 음식은 다먹으러다녔어요. 엄마랑 뚝방에 가서 자전거도 타고 운동도 조금씩 다녔고요. 그런데 엄마는 짜증났을 거예요. 제가 아프고 나서 ‘거북이’가 됐거든요. 다리에 힘이 없다보니 당연히 느려지더라고요. 그래도 전 양호한 편이예요. 뚝방에 운동 나가면 중풍 걸린 할아버지들도 운동하신다고 지팡이 짚고 다니시고 할머니들도 얼마나 열심히 운동하시는지 몰라요. 그걸 보면서 저 반성도 많이 했어요. 전 조금만 걸어도 힘들고 지쳐서 엄마한테 인제 그냥가자고 짜증도 내고했는데…. 저보다 더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친구도 없이 혼자서 땀 흘리시면서 얼마나 열심히 운동하시는지 몰라요. 그런 거에 비하면 저 아픈건 아무것도 아니죠.


☞열세 살 많은 남편과 살고 있는데, 무뚝뚝하다고 지난 인터뷰 때 밝혔는데요, 병을 앓고 난 후 좀 변화된 게 있나요? 처음 병이 났을 때 남편의 반응은 어땠나요?


처음에 암인 줄 알았을 때도 뭐 별로…, 정말 무뚝뚝해요. 자기감정을 잘 표현을 안하는 사람이거든요. 그건 기억나요. 요즘에 암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예전 같지 않고 약 좋고 기술 좋으니깐 분명히 고칠 수 있을 거라고, 금세 나을 수 있을 거라고 처음에 그런 말을 했어요. 집이 농사를 짓다보니깐 한달에 한두 번 하빈이(아들․9세) 데리고 서울 와서 며칠 같이있다가고, 그럴 때도 별말은 안 한거 같아요. 워낙에 좋은 말도 할줄 모르고 꾸며서 이쁜 말도 할줄 모르는 사람이에요. 처음엔 너무 서운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그런걸 아니깐 그러는가보다 해요. 말하면 뭐든지 들어주고 하는데 말 안하면 절대 제 속을 모르는 사람이에요. 다른 남자들도 다 그런다고 하지만 ‘우리집 아저씨’는 특히 더 한 것 같긴 해요. 이건 흉인데요 어떨 땐 정말 너무 서운할 때도 있어요. 정말 이 사람이 내 사람 맞나. 나한테 왜 이러지 하고 말이지요. 다른 집들도 이러고 살까? 다른 남자들도 다 그런가? 서울남자들은 안그럴땐데…라고 생각한 적도 있어요. 그런 사람 있잖아요. 제가 말 안 시키면 먼저 말도 살갑게 건낼줄모르고… 어디같이 외출을 해도 저 챙길 줄도 모르고요(뭐 제가 애는 아니지만…) 여자들은 그런 거 있잖아요. 자꾸 관심 가져주길 바라고 챙겨주길 바라고 보호받고 싶은데…. (저만 그런가요?) 워낙 정말…이런 말하면 화나려하네요.


그래도 저 아플 때 고생 많이 했어요. 농사지으면서 아이 챙기도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일하고 그랬어요. 한번씩 서울 오면 얼굴이 홀쭉해서 광대뼈가 튀어나와있더라고요. 그런 거 보면서 빨리 나아서 진도 가서 고기반찬도 많이 해주고 이제는 내가 챙겨줘야할텐데…그 생각만 들더라고요. 작년 3월1일에 아이 입학식 맞춰서 서울에서 진도로 내려와서 지내고 있어요. 처음 내려왔을 땐 밥도 방에다 가져다주고 청소도 좀 도와주는가싶더니 이제 다시 예전이랑 똑같아요. 하긴 제가 자꾸 집안일 도와달라는 것도 제 생각만하고 이기적이겠죠? 집에 농사일이 많이 바빠요. 어머니는 이제 나이도 드셨고 몸이 많이 안 좋아지셔서 저희 아저씨 혼자서 일을 다 하다보니 자기도 힘들죠.



☞며칠 전 KBS 미니다큐 <인간극장> 프로그램에서 이남희 씨 출연요청 때문에 전화번호 알려달라고 연락 왔는데, 출연하시게 되는 건가요?


전화 와서 작가언니랑 통화하고 다시 연락주겠다고 해서 기다리는 중이예요. 거창하게 출연까지… 저희 아저씨한테 말했더니 기겁을 하더라고요. 무슨 좋은 일이라고 TV까지 나가냐고. 저희 아저씨는 그런 거 싫어해요. 지역사회에서 창피하고 그렇대요. 저도 아직 잘 모르겠어요. 뭘 어떻게 하는 건지. 내가 정말 TV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지도….


☞ 암 투병중인 환자들에게 꼭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제가 뭘 말할 주제나 되나요. 다만 항상 긍정적인 생각을 하시고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좋은 거 같아요. “왜 이리 아프지, 왜 나만 이런 병이 걸렸지?”하면 자신이 더 힘들어 지잖아요. 나만 위해서 사는 게 아니고 가족들이 있고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내가 뭐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난 항상 중요한 사람이고 난 항상 필요한 사람이기 때문에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많이 하면 좋은 거 같아요. 힘들어서 참으려고만 하지 말고 힘든 건 다 말을 해야 또 잊혀지더라고요. 정말 이렇게 말하라고 하니깐 뭐 특별히 할말도 없네요. 항상 밝게 생활하고 환자라는 사실을 잊고 사는 게 좋은 거 같아요. 그리고 저처럼 단순해지면 편해요.


☞ 항암치료 받으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이 있다면요?

 

흔히 항암치료하면 잘 못 먹고 먹으면 토하고 굉장히 힘들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다 그렇진 않아요. 주위에선 항암치료 받으면 다 그런 줄 알고 걱정들 많이 해주셨는데 전 그렇지 않았어요. 밥도 잘 먹고 그랬는데 중간에 자꾸 합병증이 생겨서 응급실을 하루에 두 번씩 간적도 있고요. 치료 중에 감기가 와서 중환자실까지 가서 인공호흡기도 달고 저만 혼자서 격리실에 두고선 옷도 안 입고 손발도 다 묶어놓고 움직이지도 못하게 하고 말도 못하고 울기만 했어요. 면회도 하루에 두 번밖에 되지 않는 곳에서 6일을 있었어요. 밥도 안주고….


정말 그땐 너무 무섭고 내 병을 우습게 생각해선 안 되는 거구나. 내가 너무 쉽게 생각했구나..그런 생각을 하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그땐 정말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 나 이러다 잘못되면 어떡하지? 그때 정말 암이라는 게 무서운 병인지 알았어요. 그저 병원에 있으면 아프다는 핑계로 엄마가 다 알아서 해주고 그냥 쉰다는 핑계로 이렇게 있다보면 때가되면 낫는 병인 줄 알았어요.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혼자 격리실에 있는 외로움이 더 슬펐어요. 눈으로는 다보이고 머리로는 다 생각하고 있는데 몸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그건 정말 당해본 사람만이 알거예요. 가족들이 아니었다면 이겨낼 수 없는 고통이고요. 근데 지금은 그때 그 일은 생각하기도 싫은 ‘추억’ 같은 거예요. 지나고 나니깐 철없던 저한테 진정한 어른(?)이 되게 해준 계기도 된 거 같고요. 저 정말 단순하죠? 오히려 그땐 그 단순함이 무기가 됐다는 걸 몰랐지요.

 


☞투병 전과 투병 이후 이남희 님 자신에게 달라진 점이 있나요? 어떤 각오나 새로운 마음가짐, 모든 면에서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오히려 아플 땐 정말 잘 지냈어요. 정말 밝다는 말도 많이 듣고 제 자신도 앞으로도 이렇게만 살면 앞으로 못할 것도 없겠다 싶더라고요. 그런데 투병이 끝나고 나서 한동안 우울증도 걸렸어요. 전 다른 사람하구 반대가 된 거죠. 남들은 투병기간이 더 우울하고 힘든데 전 오히려 그 반대였어요. 당시에 느낀 건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 있었어요. 그냥 병원에 있을땐 머리가 없어도 환자겠지, 사람들이 그렇게 볼 거라고 당연히 생각했는데 집에 오고 주위를 보니깐 제가 너무 초라한 거예요. 오히려 병원에선 집에만 가면 동네 언니들도 만나고 가보고 싶은 곳도 가야지 했는데…. 거울을 볼 때마다 제가 아닌 거예요. 약 때문에 얼굴은 두 배가 돼 있고 머리도 없고 도저히 밖에 나갈 엄두가 안나더라고요.


오히려 아플 땐 씩씩했는데 아프고 난 다음이 자신감이 더 없어진 거 같아요. 친구들을 만나도 그래요. 나이가 나이인지라 친구들은 결혼도 안 해서 다 너무 예쁘고 쌩쌩한데 저 혼자만 너무 초라해 보이고 그러는 거예요. 처음엔 친구들 만나고 들어오면 괜히 우울해지고 그랬는데 그러지 않기로 했어요. 사실 친구들도 옆에서 많이 응원해 줬고요. 친구들은 예쁜 아기도 없고 듬직한 남편도 없지… 하면서 제 자신을 위로 아닌 위로를 했어요. 지금은 많이 나아졌어요. 거의 예전하구 다름없어요. 단지 걱정이 있다면 후유증 때문에 다리가 괴사돼서 수술을 해야한다는 거. 고관절 수술이라고 골반과 다리를 잊는 부분이 많이 괴사해서 인공 관절로 바꿔줘야 한대요. 또 가족들 고생하구 저 때문에 자꾸 돈만 많이 들어서 없는 형편에 미안할 뿐이죠.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좀 무섭기도 하구 걱정은 돼요. 그래도 전 지금생활에 너무 만족하구요.


사람이 꼭 돈이 많아서 행복한건 아니더라고요. 하루는 식구들끼리 밥을 먹고 들어오는데 제가 운전을 하고 하빈이랑 아저씨가 뒤에서 장난치면서 농담 식으로 둘이 너무 재밌게 노는 거예요. 그때 문득 생각나는 게 “아, 이게 행복이지. 내가 지금 이 모습을 보고 있는 것만 해도 너무 좋다.” 이 생각이 들면서 혼자 얼마나 뿌듯했는지 몰라요. 정말 아무것도 아니죠. 그런데 그 아무것도 아닌 것이 가슴으로 느껴질 때가 있더라고요. 전 지금 생활에 만족하고요. 어머니와 말없는 남편 그리고 하빈이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해요.


제가 해준 밥 식구들이 맛있게 먹고 하빈이 아침에 가방 메고 엉덩이 실룩거리면서 (요즘 우리 하빈이는 완전 돼지가 돼가고 있어요) 학교 가는 것만 봐도 기분이 좋아지고 다리가 좀 불편해서 비록 ‘거북이’가 됐지만 오래 걸려 청소도 해놓으면 깨끗한 집 보면서 뿌듯하고 오전에 라디오도 들으면서 빨래 널고 정리하면 금방점심때에요. 어떨 땐 밥시간도 잘 돌아오네 하면서 또 따뜻한 밥 해서 먹고 치우고 일 좀보고 하면 하루가 금방가요. 하는 거 없이 시간이 잘 간다는말이 이런건가봐요. 이제 봄도 오고해서 꽃벽지로 도배하려고요. 분홍색 꽃 벽지 예쁘겠죠? 분홍색 꽃벽지가 희망이고 그것이 투병전과 투병이후 달라진 점을 상징한다고 하면 이해하시겠어요? / 끝.

 

 

진도 앞바다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 아들 하빈이와 엄마 이남희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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