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뉴스

암투병 26세 주부 취재..(1년 3개월 전 당시)

그루터기 나무 2007. 1. 23. 22:17

 

 

 

이남희씨는  암을 극복하고 친정 엄마와 함께 도봉산을 산행하고 싶다고 했다. 과연 그 소박한 꿈을 이루었을까? (사진은 성북구 성가복지병원에서 촬영한 자료사진임) ⓒ윤태

 


전남 진도군 고군면에서 열세 살 많은 남편과 시어머니 그리고 일곱 살 난 아들(박하빈)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사는 이남희(26)씨. 결혼 7년차이다. 그런데 지금은 서울에서 병원신세를 지고 있다. '비호지킨 림프종'이라는 암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이 병은 백혈구 속의 림프구가 암화한 악성종양으로 림프절이 붓거나 종괴가 생긴다.


자세한 사연을 취재하기 위해 이씨에게 전화를 했을 때 기자는 무척 걱정했다. 암환자라는 사실에 기자는 무척 조심스럽고 무겁게 말문을 열었지만 이씨는 오히려 밝고 맑은 목소리로 기자를 맞았다. 그녀의 활달한 목소리에 기자의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열아홉 살에 결혼한 이씨는 스무 살에 하빈이를 낳고 이상하게허리가 아팠다. 아기를 낳으면 원래 안 아픈 곳도 이유 없이 아프다는 일반적인 말을 믿었다. 그러다가 3년 전부터 살이 갑자기 찌면서 허리가 매우 아파 근육이완제, 물리치료, 진통제 등으로 버텼는데 올 6월 진통제도 듣지 않을 정도로 통증이 심해졌다.


진도에 있는 모든 병원은 물론 목포에 있는 유명한 병원을 돌며 MRI, CT, 내과, 일반·신경외과, 산부인과, 통증의학과 등에서 검사를 했지만 아무 이상도 없었다. 이씨는 너무 고통스러운데 모든 병원의 각종 검사에서 이상이 없다고 나오니 더욱 답답할 노릇이었다.


그러다가 올 7월부터 양다리에 마비가 와 걸음조차 힘들게 되자 지난 7월 25일 광주의 조선대 병원에서 진찰을 받은 결과 폐와 허리에서 각각 종양이 발견됐다. 의사에게 "이 정도면 상당히 아팠을 텐데 왜 이제까지 참았느냐"는 구박을 받은 후 입원을 했다. 입원 후 조직, 척수, 골수, 핵의학 검사 등 30여 가지의 정밀검사를 끝내고 지난 달 5일 '비호지킨 림프종 암'이라는 병명이 나왔다.


암! 영화나 드라마 속 주인공이나 걸리는 병으로 알았던 그녀에게 암 진단은 청천벽력이었다. 처음엔 하늘을 보며 계속 울기만 했다. 그러나 방사선과 항암치료를 병행하면 완치될 수 있다는 의사의 말에 이씨는 힘을 내기로 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존율이 높다 해도 암은 암이고 재발 가능성 때문에 늘 마음을 졸이는 게 이 병이다.


그 후 이씨는 광주에서 서울대 병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농사를 짓는 남편이 매일 병간호를 할 수도 없어 친정이 있는 서울에 올라와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그런데 서울대 병원에서 이씨는 조금 황당한 일을 경험했다고 기자에게 털어놨다.


"할머니들이 저더러 안 됐다고 혀를 차셨어요. 어떤 할머니는 저더러 '암이여? 젊은 사람이 안 됐네. 쯧쯧쯧, 그래 얼마나 힘들까? 아이구 머리도 없네…'하면서 저를 불쌍하게 생각했어요"라며 당시 병원에서 있었던 일을 회상했다.


정작 이씨 자신은 암환자라고 생각하지 않고 즐겁게 지내려고 하는데 옆에서 이상하게 보는 게 싫었다고 한다. 특히 '젊은 사람도 암에 걸릴 수 있구나'하고 신기해하며 수군거릴 때 힘이 더 빠진다는 이씨.


그러나 이씨의 병원 생활은 역시 활기차다. 지난 달 13일 처음 항암치료를 받고 보름이 지나 머리가 조금씩 빠지기 시작했다. 생머리였던 이씨는 이번 참에 단발로 자르고 앞머리도 살짝 내며 멋을 좀 부렸는데 그 다음날부터 머리가 한꺼번에 빠져 황당했다는 이야기를 하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하지만 매일 즐거운 병실 생활은 아니었다. 지난 달 26일에는 상태가 갑자기 나빠져 응급실로 실려 가기도 했다. 4일 동안 응급실에서 지내는 동안 머리를 못 감아 떡이 졌고 어차피 절반 이상이 빠진 상태라 아예 밀어버리기로 했다. 병원 지하 미용실에서 머리를 '빡빡'밀고 아무렇지도 않았다는 이남희씨.


"TV나 영화에서 보면 항암치료 하면서 머리 밀 때 대부분 눈물 흘리잖아요. 그런데 저는 아무 느낌도 없었어요. 머리가 매끈하게 잘 안 밀어지는데 오히려 웃음이 나대요.다 깎은 후에는 조금 멋쩍긴 했는데…, 대신 엄마가 많이 우셨어요."


앞으로 이씨는 6개월 동안 방사선 치료 열 번, 항암치료 여덟 번을 받아야 한다. 이씨는 반드시 자리를 털고 일어나야 한다고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남편과 아들 하빈이를 위해서라도 꼭 일어서야 한다고. 전라도 말로 '그까이거 별거 있나. 모 아니면 도지'라며 암을 별 대수롭게 않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씨는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왔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시아버지 4년 동안 잘 모셨고 살림도 반듯하게 잘 했다. 시어머니와 사이좋게 잘 지내면서 아기도 잘 키워왔다. 이렇게 순박하게 살아온 그녀에게 '하필' 암이라는 병이 찾아와 괴롭히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이씨 자신은 '하필'이라고 표현하지 않는다. 지금껏 살아온 26년, 그리 많지는 않지만 하늘과 땅을 원망할 일도 아니고 그냥 운명이려니 생각하고 이 운명을 가볍게 생각하며 털어 버리기 위해 애써 즐거운 마음으로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것이다.


진도 시골서 고생하는 시어머니는 며느리 이씨가 전화만 하면 울면서 "아가, 얼른 나아서 온나" 하고 이씨는 "어머니, 얼른 나아서 갈게라"라고 응수한다고 한다. 그리고 무뚝뚝한 신랑 부드러운 목소리로 전화 좀 자주하고 문자도 좀 보내주지, 단 한번만이라도 '사랑한다'고 말해주면 좋으련만… 꼭 강요하면 남편은 "소설 쓴다"고 구박한다고….


그리고 친정 엄마. 옆에 계속 있으면서 챙겨주는데 오히려 그게 귀찮아 엄마한테 짜증내고, 심지어 보기 싫다고 가라고까지 하면 엄마는 울고. 그러나 진심은 아니었다. 자는 척 베개에 얼굴을 묻고 돌렸지만 자신의 짜증에 상처받았을 엄마를 생각하며 베개를 적셔야 했던 이씨는 힘들었던 그때를 회상했다.


"항암치료 받는 한 달 동안 대·소변 다 받아내며 고생하신 엄마인데, 항암 치료에 힘이 들어서인지 괜히 짜증이 났던 모양이에요. 누구보다도 엄마 사랑하는데 그땐 정말 죄송했어요."


이씨는 몸이 좀 좋아지면 도봉산 밑에 위치한 친정에서 요양하면서 도봉산을 오르고 싶다고 했다. 머지않아 산에 단풍이 들 거라면서 엄마랑 맛있는 도시락 싸서 등산도 하고… 이런 생각에 스스로를 '행복한 암환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바로 이씨이다.


2006년 3월, 봄꽃들이 꽃망울을 터트리려고 할 때 암을 완전히 극복한 이남희씨의 '행복한 극복 수기'를 다시 한번 취재해 글을 실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