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이 시대 아버지로 산다는 것은...

그루터기 나무 2007. 1. 14. 23:01

 

 

축 늘어진 어깨에 가방을 멘 아버지의 뒷모습을 자주 보곤 한다  ⓒ윤태

 

 

 

얼마전까지 텔레비전을 보면 재미있는 생명보험 광고가 나왔다. 중학생쯤 돼 보이는 딸이 식사를 하고 있는데, 아빠가 다정스런 목소리로 "우리 딸 많이 드세요"라며 딸의 등을 토닥거린다. 순간 딸은 어색한 웃음을 짓는 동시에 움찔하며 아빠가 토닥거렸던 등 뒤로 손을 뻗쳐 속옷 끈을 다시 챙긴다. 일련의 내레이션이 끝나면서 딸은 아빠를 향해 환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정황으로 봐서는 이제 막 속옷(브래지어)을 입기 시작한 딸이 아빠한테 부끄러운 무엇인가를 들켜 쑥스러워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처음 입기 시작한 속옷이 어색해서 자꾸만 신경이 쓰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하튼 아버지와 딸이 참 다정스러워 보인다.


아버지가 자녀에게 이처럼 늘 다정하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역시 정해진 대사로 만들어진 한편의 TV 광고에 불과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속의 아버지는 자녀가 말 한마디 붙이기 어색할 정도로 무뚝뚝한 경우가 많다.


아버지 스스로 권위의식에 젖어 그렇게 만드는 경우도 있고 가정의 대들보로 살아가면서 아버지라는 무거운 짐에 눌려 어쩔 수 없이 묵묵해지는 경우도 흔하다. 이유야 어쨌든 현실에는 '불행한 아버지'의 모습이 많다. '불행'이라는 말이 좀 강하긴 하지만 '해피'하지 않으니 불행하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하지 싶다.


'불행한 아버지'의 모습이 '즐거운 아버지'의 모습으로 바뀔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즐거운 아버지>의 저자 이요셉 한국웃음연구소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강사로 인정받으며 사람들에게 웃음을 전파하고 또 웃음으로 환자들을 치료하는 웃음전문가로써 어디로 보나 행복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이러한 그가 지난 날 가정에서는 행복한 가장, 행복한 아버지의 모습이 아니었다. 연일 계속되는 강의와 세미나에 지쳐 정작 가정에서는 웃음을 잃어버린 자신의 모습이자 두 아이 아빠의 모습은 가족들에게 상처가 되고 있다고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고백한다. 쉽게 말해 밖에서 남들한테는 잘 하는 반면 가정에서는 소홀한 아버지가 된 것이다. 직업병인 셈이다.


어디 이뿐인가. 무뚝뚝하고 호랑이 같은 저자의 아버지 밑에서 성장하는 동안 단절된 대화 속에서 어색하기만 했던 아버지와의 관계를 밝힌다. 과거 아버지의 모습이나 성장해 아버지가 된 자신의 모습에서도 즐거운 아버지 상을 찾지 못했던 저자는 스스로 즐거운 아버지가 돼야 행복한 가정을 꾸려갈 수 있다며 이 책을 통해 즐거운 아버지가 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즐거운 아버지>는 2부에 행복한 아버지가 되는 방법을 제시한 '즐거운 아버지 프로젝트 29'를 전개하기 앞에 1부에는 저자가 그동안 강의와 세미나를 다니면서 웃음이나 희망을 잃었다가 되찾았거나 가장으로써 책임을 지며 본인을 희생해야만 했던 아버지의 쓰라린 이야기도 담긴 '아버지, 그 이름의 진정한 의미'로 구성돼 있다. 모두 아버지들의 체험담이다.


이중 '여보 미안해'라는 제목의 내용을 요약해본다.


..일곱 살 난 아이를 두고 삶의 기반을 마련하던 서른 후반의 가장. 어린 아들을 생각하며 아내가 융자까지 얻어 분식집을 차려 억척같이 살아간다. 가난했지만 미래가 있었기에 이들은 행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가장은 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아내에게 말할 수 없었다. 치료비 때문에 가정 파탄이 올게 뻔했고 결국 아들 교육에도 차질이 생길게 분명했다. 장담할 수도 없는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 아내와 자식을 비참한 나락으로 떨어트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결국 그는 병원에 입원하지 않고 고통을 감내하며 한통의 편지를 남기고 숨졌다. 퇴직금 나오면 아파트 사는데 보태고, 아이의 미래를 위해 재혼도 하라는 등 경제적인 문제를 걱정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봄직한 상황이지만 실화다. 젊은 나이인데 그도 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 남편이라는 책임감 때문에 치료비 부담을 가족들에게 지우지 않고 홀로 떠나갔다. 가족들에게 병원비 부담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우지 않는 게 최선의 방법이며 또한 가장의 책임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다시 말해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도 자신의 행동이 그나마 행복한 가정, 즐거운 아버지의 모습이라고 판단을 했던 것이다. 엄청난 고통을 감내하면서 힘없이 어깨를 늘어뜨린 이 아버지의 뒷모습이 무척 서글펐을 게다.


도서 <즐거운 아버지>에서 극단적인 예를 들었지만 과연 독자 여러분들이 겪는 현실속의 아버지는 어떤 모습일까? 독자 중에는 본인이 아버지이면서도 아버지를 모시는 분이 있을 것이다. 가장인 본인이 아버지로써 또 아버지를 모시는 자식으로써 각각 아버지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깊이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과연 행복하게 가정을 경영하고 있는지 말이다.


대한민국에서 행복하고 즐거운 아버지로 살아가는 일이 그리 쉽지는 않는 것 같다. 자녀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더 많은 돈을 벌려고 발버둥치지만 자식들은 알아주지 않는다. 스트레스가 쌓이고 힘든 회사 일에 몸과 마음이 지친다.


그래도 희망인 자녀들을 보고 웃으며 에너지를 충전하려고 자녀들과 마주하지만 사춘기 아이들은 친구들끼리 어울리면서 아버지와는 세대 차이가 난다며 대화를 회피하기도 한다. 아내는 가사일과 아이들 교육 문제로 늘 곤두서 있고 도통 대화의 창이 열리질 않는다.


그뿐인가. 휴일 모처럼 가족들과 공원이라도 가려고하면 아이들은 인터넷 게임을 한다며 아빠를 따라 나서지 않는다. 회사에서는 재미없고 가정에서도 설 자리가 없는 이 시대 불우한 아버지 모습. 아버지로 살아간다는 게 무슨 죄라도 되는가 말이다. 가족들 먹여 살리려고 뼈 빠지게 일한 죄(?) 밖에 없는데.


가정에 충실하려면 돈버는 일 즉 회사 일에 소홀해질 수 있고 회사 일에 충실하려면 가정일이 소홀해질 수밖에 없는 이 시대 아버지들이 겪는 딜레마라 할 수 있다. 자녀들과 시간을 함께 하려고 야근 안하고 일찍 퇴근할 수 있는 이 시대 아버지들이 얼마나 될까? 당연히 생계를 위한 일에 쏠릴 수밖에 없고 결국 즐겁고 행복한 아버지에서 더 멀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유야 어쨌든 아버지는 가족을 경영해야만 한다. 맞벌이 부부도 많은데 꼭 남자만이 가부장이 돼야만 하냐고 묻는다면 할말이 없지만, 정신적인 지주, 대들보로써 아버지가 가족을 경영하는 차원이라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일에 찌들고 생계에 끌려 다니는 아버지가 아닌 가족의 앞에 서서 혹은 가정과 함께 가야하는 게 아버지의 몫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버지가 먼저 변해야 한다. 아니 즐거운 아버지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자녀들이 이해해주기를 바라기 전에 자신이 먼저 자녀들 문화, 수준에 맞춰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 이처럼 능동적인 아버지만이 즐거운 가정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즐거운 아버지>에서는 이러한 아버지가 될 수 있는 해법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