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동영상

출산 전과정, 생생한 동영상으로 담다

그루터기 나무 2008. 3. 30. 08:18

 


 

 

출산 예정일(4월 8일)이 12일이나 남은 3월 27일 새벽 5시경, 만삭의 아내가 배가 아프다고 했다. 전날 변을 보지 않아 배가 아픈 것인지 진통인지 혹은 가진통인지 구분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내와 나는 예정일이 꽤 남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며 그 복통이 진통일거라고는 단정짓지 못했다.


3월 27일(목요일) 일정은 아내의 운전면허증 갱신과 함께 산부인과 정기검진이 예정돼 있었다. 그리고 토요일에 촬영할 만삭 사진도 예약하기로 했었다. 그런 일정이 있던 날 새벽에 확신할 수 없는 복통이 찾아온 것이다.


새벽 5시부터 같이 지켜봤다. 1시간을 체크한 결과 10분 간격으로 복통이 계속됐다. 진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당장 산부인과로 가야하나 좀더 기다려야 하나 하고 잠깐 고민했다. 이번주 내에 아내의 운전면허증 갱신을 하지 않으면 벌금이 나올거라는 것에 아내는 신경을 쓰고 있었다. 진통을 하는 중에 말이다.


아침이 밝을때까지 참을 만한 진통이 계속되는 가운데, 8시 아내와 나는 아픈 배를 움켜쥐고 얼굴을 찡그린채 간단히 식사를 했다. 힘을 써야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 출산전 필수사항인 샤워를 했다. 샤워 중간중간에 화장실 바닥 물때를 닦고 있는 아내를 보며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산부인과에 가기 전에 아내는 경찰서부터 들러 면허증 갱신을 하자고 했다.


오전 8시 50분 :  이슬이 비친 것 같았다(이슬 : 자궁 경관이 열리면서 태아를 감싸고 있던 난막이 벗겨져 생기는 갈색 출혈, 보통 출산 3~4일전에 이슬이 보이는 경우가 많다) 출산의 서막을 알리는 이슬인지 뭐가 잘못돼 나오는 ‘출혈’인지 확신할 순 없었지만 갈색인 것으로 보아 ‘이슬’임을 짐작했다. 이젠 모든 것이 분명해지는 것 같았다.


9시 40분 : 진통의 강도가 점점 세지는 가운데 산부인과 근처에 있는 성남 수정 경찰서 교통계를 찾았다. 아내는 “당장 아기가 나올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상황에서 면허증 갱신이 무슨 대수고 급한 일이란 말인가? 그러나 이 와중에도 아내는 괜한 벌금 내기가 싫었던 것이다. 아내는 그런 사람이다.


면허증 갱신을 위한 서류를 쓰는 동안 관계자들에게 “진통이 시작됐으니 빨리 좀 처리해 달라”고 부탁하자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처리해주었다. “아이구, 세상에 이런~” 하면서 말이다. 교통계 관계자들도 이런 경우는 처음보았으리라. 진통이 한창인데 면허증 갱신을 위해 경찰서에 찾아온 만삭의 임신부라?


10시 정각 : 산부인과에 도착했다. 당연히 정기검진 왔거니 생각한 인포메이션 간호사들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러나 아내의 얼굴을 보더니 놀라는 눈치였다. 12일이나 남았는데 벌써 진통이 시작됐으니 말이다. 곧바로 내진을 했다. 남자 선생님 말씀하시길 “5센티 정도 열렸습니다. 한 두시간 안에 낳겠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10시 10분 : 휠체어를 이용해 위층에 있는 분만실로 옮겨졌다. 진통은 극심했지만 아내는 걸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산부인과 측에서 휠체어를 타야한다고 했다. 관장을 하고 누워있는 아내의 배 둘레에 무슨 장치를 했다. 아내의 심장박동과 아기의 움직임이 동시에 체크되고 있었다. 알 수 없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10시 30분 : 조산사가 양수를 터트렸다. 7센티 정도 열렸다고 했다. 배 둘레에 있던 심박동 체크장치가 제거됐고 이때부터 힘주기가 본격화됐다. 비명을 질렀다. 엄마의 비명소리에 4살인 첫째녀석이 불안한 표정이었다. 첫째를 밖으로 내보냈다. 엄마가 아파하는 모습을 보면 어린 마음에 충격을 받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11시 정각 : 아기의 머리가 보인다고 했다. 조산사의 지시에 따라 힘을 주고 비명을 지르던 아내가 “안돼”하고 소리쳤다. 이어 “도와줘”라는 비명과 함께 숨이 넘어가는 듯 했다. 다시 한번 힘을 주는데 아내가 “똥 나온 것 같다”며 울부짖었다. 조산사는 변이 나와도 괜찮으니 다시 한번 힘을 주라고 했다. 아기 낳을 때 힘주다가 변나오는거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11시 5분 : 담당 남자 선생님께서 올라오셨다. 선분홍색 피가 깔아놓은 것들을 쉴새없이 적시고 있었다. 언제쯤 이 산고가 끝나는 것일까? 아내의 산고가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아기는 한 발짝씩 세상을 향해 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11시19분 : 온 몸에 피칠을 한 푸르딩딩한 둘째가 태어났다. 첫째에 이어 둘째도 자연분만으로 태어난 건강한 사내아이다. 입으로 긴 호스를 집어 넣어 폐 속에 찬 양수 등 이물질을 제거했다. 그제야 비로소 아기는 울음을 터트렸다. 병원 도착 1시간 20분 만에 초스피드 출산을 한 것이다. 12시가 돼 서울 영등포에 계신 장모님께서 도착하셨다. 너무 일찍 태어나는 바람에 장모님께서는 출산장면을 지켜보시지 못했다.



-출산 후기-


두 번의 유산을 경험한 후 태어난 둘째이다.  첫째때에는 정말 난리법석이었는데 둘째는 순탄하게 낳은 것 같다. 어떤 사람들 출산기 보면 2~3일 동안 비교적 길게 진통하다 어렵게 낳는 경우도 있고 시일이 지나 유도분만을 하는가 하면  그것도 안돼 제왕절개로 낳는 경우도 종종 있다.


아내가 자연분만을 굳이 원했던 이유는, 출혈도 적고 회복도 빠르며 아기에게도 좋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것 이외 제왕절개를 하면 비용이 추가되기 때문이다. 대단한 짠순이 아내이다.


출산 당일 첫째아이때도 봐 주셨던 산부인과 선생님께서 오후에 퇴근하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선생님께서 둘째를 받아주셨으면 해서  더 힘을 주고 서둘러 낳았다는 아내의 훗말이다.


3월 29일(토요일) 오후에 무료 만삭사진을 찍을 예정이었는데 27일에 낳아버렸으니 물건너 갔다. 경찰서에서 면허 갱신하고 나오면서 진통 때문에 고통스러워 하며 “아이구, 만삭 사진 못찍어서 어떡하지? 대신 아기 사진 찍어서 갖다주면 공짜로 앨범 만들어 줄까?” 라고 말하는 아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