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아주 특별한 장인어른 이야기

그루터기 나무 2007. 8. 16. 22:55

 초가집에서 사시면 어울릴것 같은 장인어른

 

 

장인어른은 딸의 휴대폰 번호를 모르십니다. 뿐만 아니라 장모님과 처형, 처제의 휴대폰 번호도 알지 못합니다. 참고로 아내와  처제는 7년 전부터 휴대폰을 사용했고 장모님은 3년 전에 휴대폰을 구입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장인어른이 식구들의 휴대폰 번호를 모른다는 것에 대해 독자들이 의문을 가질 거라 생각합니다.


정확히 말씀드리면 휴대폰 번호를 모르시는 게 아니라 식구들이 휴대폰을 갖고 다니는지 그 자체를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장인 어른에게 휴대폰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알려지는 날이면 식구 모두는 장인 어른에게 '구속'되기 때문입니다. 이 글도 장인 어른께서 인터넷을 사용할 일이 전혀 없기 때문에 이 내용을 알지 못하실 거라는 확신으로 올리는 것이지요.


아무리 생각해도 참으로 대단합니다. 결혼하기 전 3년 동안 한집에 살면서 장인어른께 한번도 안 들키고 휴대폰을 사용해 왔다는 사실이 말이지요. 물론 장인어른은 아직도 식구들이 휴대폰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십니다. 그리고 이전 통신 수단인 호출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이야기를 꺼낸 건 장인어른이 어떤 분인가를 조금이나마 알려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처갓집은 딸만 셋입니다. 처형과 아내는 결혼했고 막내 처제만 남았습니다. 아들이 하나만 있었더라면 딸들한테 이렇게까지는 안하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서 '이렇게까지'라는 것은 딸들에 대한 장인어른의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 너무 과도하다 보니 이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좌충우돌 마찰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해가 지면 들어와라" "밖에서 친구들 만나지 말고 친구들을 집으로 데리고 와서 놀아라" 등등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나이가 스무살이 넘었는데도 굳이 친구들을 집으로 데리고 오라는 데는 마땅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장인어른은 요즘 젊은 애들이 밖에서 하고 다니는 '꼬락서니'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입니다. 어울리는 친구가 남자든 여자든 당신의 딸이 어떤 사람과 어울려 다니는지 궁금해 하셨고 눈으로 확인을 해야 장인어른은 직성이 풀리셨습니다.


그러나 비좁은 집에 누가 친구들을 데려오고 싶겠습니까? 한번은 친정 집(아내집)에 놀러온 친구가 장인어른 때문에 몸둘 바를 몰랐다고 털어 놓더군요. 물론 장인어른은 딸의 친구들이 집에 오면 맛있는 것도 해 주고 더 잘해 주시려고 노력하지만 솔직히 친구들 입장에서는 그것이 더 불편할 따름입니다. 장인어른 입장에서는 '딸 사랑'이었지만 자식 입장에서는 적잖은 '부담'이었습니다.


딸에 대한 아버지의 극진한(?) 사랑은 7년 전 결혼한 처형에게서 가장 잘 나타납니다. 처형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앞서 장인어른의 성격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공자왈 맹자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궁금하시다구요? 지금부터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대전에서 대학을 다니던 처형에게 남자 친구가 생겼습니다. 처형은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형부 될 사람의 직업은 민족예술극단의 단원이었습니다. 대전, 공주에 근거지를 둔 이 민족예술단은 그 지역에서는 누구나 다 아는 유명한 극단이었고 문화관광부 후원을 받아 서울 국립국장에서도 공연을 자주 할 정도로 명성이 있는 극단이었습니다.


처형이 장인어른께 극단 단원이라고 우선 얘기를 꺼내자 그때부터 장인어른은 탐탁치 않게 생각하셨습니다. '단원=딴따라=광대(?)'라고 장인어른의 머릿속에는 등식이 성립돼 있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그 직업으로 딸을 먹여 살릴 수 있느냐 하는 것도 장인어른의 큰 걱정이셨습니다.


그러나 '공자왈 맹자왈'의 장인어른은 무엇보다 사람 됨됨이를 중요하게 생각하셨습니다. 결혼한 지금도 친정에서 거울을 들여다 보고 있으면 여지없이 장인어른의 호통이 날아옵니다. 외형보다는 마음이 중요한 거라면서 거울 앞에 너무 오래 앉아 있으면 겉멋이 든다나 뭐라나 하시면서 마음을 다스리라고 하십니다.


여하튼 형부될 사람이 처음 면접 보던 날 장인어른은 대뜸 '삼강오륜'을 읊어보라고 하셨습니다. 허허, 삼강오륜이라? 장유유서, 부자유친, 부부유별, 붕우유신, 군신유의, 이렇게 오륜은 정확히 알고 있는데 삼강은 몰랐던 것입니다. 참고로 삼강은 유교 도덕의 기본이 되는 세가지 것으로 임금과 신하(군위신강), 아버지와 자식(부위자강), 남편과 아내(부위부강) 사이에 지켜야 할 기본 강령을 말하는 것이며 오륜은 이에 대한 5가지 실천적 덕목을 이르는 것입니다.


결국 형부될 사람은 보기 좋게 낙방했습니다. "가라"는 말씀과 함께 문전박대를 당했던 것입니다. 4년제 대학 나오고 게다가 허구한 날 효도를 주제로 공연한다는 민족예술단 단원이라는 사람이 삼강오륜을 모르고 있으니 장인어른은 그저 혀만 차실 뿐이었습니다. 밥도 한그릇 못 얻어먹고 �겨난 불쌍한 형부.


두번째 ‘면접’이 있던 날 형부는 삼강오륜을 정확히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삼강오륜을 한자로 한번 써 보라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오륜은 그럭저럭 썼는데 역시 삼강에서 막혀 버린 불쌍한 형부. "정확하게 알아서 다시 오게"라는 말씀과 함께 장인어른은 돌아 앉으셨습니다. 단 5분을 견디지 못하고 �겨난 형부. 하지만 여기서 끝낼 형부가 아니었습니다.


세번째 면접이 있던 날 형부는 한자로 된 삼강오륜을 정확히 숙지했을 뿐 아니라 평소 장인어른께서 즐겨 읊조리시던 명심보감의 일부 내용까지 미리 알아 놓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장인될 어른 앞에서 쓰려고 하니 손이 떨리고 머릿속은 캄캄해지면서 결국 삼강에서 또 막혀버린 것입니다.


"자네, 안되겠네."


이 말은 들은 형부, 마당에 내려가다 말고 털썩 주저앉으며 "아버님, 제가 그렇게도 미우십니까?"하고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그제서야 면접은 끝이 났습니다. 장인어른과 형부는 막걸리를 사이에 두고 밤새 삼강오륜에 대해 토의를 하셨습니다. 아니, 형부는 밤새 '도덕 공부'를 해야 했습니다. 100% 귀담아 듣는 조건으로.


2년 후 아내가 결혼할 때 저는 어때했는지 아십니까? 형부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고 삼강오륜, 명심보감 등의 주요 구절을 섭렵함은 물론 한가지 작전을 짜내었습니다. 저는 평소 시나 수필 등 글쓰기를 무척 좋아합니다.


즉 장인어른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한편의 글을 먼저 보여드리고 나서 면접을 보게 되면 훨씬 수월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지금의 아내와 저는 의도적으로 보여드리는 것보다는 우연히 보시게 하는 게 효과가 더 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 당시 썼던 수필 <아버지는 무식해서 자식 많이 낳았다>를 아내로 하여금 출력해 TV 위에 올려 놓게 했습니다. 수필 내용은 시골에서 나고 자라온 남편이 그다지 넉넉하지 못했던 아버지를 중심으로 한 가족사를 풋풋하게 그려낸 것이었습니다. 여하튼 장인어른은 그날 우연히 그 글을 보셨고 아내에게 남자 친구 즉 저를 한번 데리고 오라 하셨습니다.


면접 날 장인어른은 "자네 형님은 애 많이 먹었네, 세번이나 �겨났어. 자네 글 쓴 거 봤네, 어르신이 대단한 분이시더구만, 글 내용으로 봐서 자네 집안 교육도 잘 받은 것 같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삼강오륜을 읽거나 쓸 필요 없이 바로 통과한 것입니다.


장인 어른은 이런 분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반드시 문안 인사를 드려야 하며 잠잘 때도 방에 들어가 먼저 누워서는 안됩니다. 장인어른께서 주무실 때까지 기다렸다가 "안녕히 주무세요"라고 인사드린 뒤 잠을 청해야 합니다.


막걸리를 입에 달고 사시는 장인어른께서 거하게 취하시면 식구들은 모두 괴롭습니다. 장모님은 밤새 "맹자왈 공자왈"을 들어야하며 심지어 시집간 딸에게 전화를 하시어 두어 시간 동안 "맹자왈 공자왈"을 하시기도 합니다. 이럴 때 휴대 전화는 긴요하게 쓰입니다. 친정에 있는 동생이 문자를 넣어줍니다. 아버지 전화가 갈 거라고....


장인어른은 매니큐어, 루즈, 귀고리를 해서는 안되고 머리에 물들이면 머리털 다 뽑힙니다. 지금도 친정에 갈 때면 귀고리를 빼고 갑니다. 결혼하면서 예식장 미장원에서 드레스 입으려면 머리에 물들여야 한다는 핑계 아닌 핑계를 대며 장인어른을 열심히 설득하고 나서야 갈색물을 들일 수 있었습니다.


이 밖에 장인어른은 생명보험에 가입하는 것은 '죽을 날짜 받아 놓는 것'이라며 싫어하셔서 식구들의 보험 가입 여부를 일체 모르고 계십니다. 그리고 자동차 운전은 위험하기 때문에 운전 면허는 절대 취득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십니다. 물론 아내는 5년 전에 몰래 땄지요.


혹여 9시 뉴스에서 납치, 강도, 살인 사건 등을 보시면 불쌍한 처제는 그날 저녁 밤샘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여자란, 이래야 하고… 행동거지 조심해야 하고… 일찍 다녀야" 하고 등등.


심지어 동생이 언니 집에서 하룻밤 묵으려 하는데도 온갖 쇼(?)를 다하며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어떤 이유, 어떤 장소든지 간에 '딸의 외박'은 절대 불가를 외치고 계시니까요. 형부집에 간다고 하는데도 말이지요.


수십년간 경비 일을 하시다가 2년 전 막걸리 드시고 옥상에서 낙상해 지금은 쉬고 계신 장인어른. 앞으로 계속 쉬셔야 한답니다.  장인어른께서는 이제 한달에 몇 만원 나오는 국민연금 받아 막걸리 드시는 재미로 살고 계십니다.


30년째 미싱일 하시며 장인어른을 보살펴 오신 장모님. 이젠 좀 장인어른이 부드러워졌으면 좋겠습니다. 친정집(영등포) 앞까지 갔다가 그 완고함에, 밤샘 "맹자왈 공자왈"이 두려워 결국 집에 들어가지 못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장모님만 따로 불러내어 맛있는 거 먹고, 사위가 집앞까지 모셔다 드리면서 결코 친정 집에는 들어가지 못하는 그 안타까운 심정, 여러분은 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