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뉴스

슬픔 간직한 개, 누런둥이 사연

그루터기 나무 2007. 7. 19. 12:28

“난 네가 싫어. 멍멍.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낸다더니. 멍멍.”
“너무 텃새 부리지마 멍멍. 나도 알고 보면 불쌍한 개라고. 멍멍.”
“뭐가 불쌍해? 너처럼 덩치 큰 녀석이 뭐가 부족해서...멍멍"
“몸집이 크다고 좋은 게 아냐, 멍멍. 나한테도 아픔이 있다고...”

은실이네 앞마당에 묶여 있는 두 마리 개. 애완견 강돌이와 진돗개 누런둥이입니다. 그런데 아침 일찍부터 두 녀석이 무슨 일 때문인지 말다툼을 벌이고 있습니다. 한참 다툼를 벌이던 누런둥이가 지난 일을 회상하듯 눈을 지그시 감았습니다. 무슨 사연이 있는 듯 했습니다.

토종 진돗개 종류인 누런둥이는 1년여전 시골 할머니네 집에서 무녀리(맨 먼저 태어나 몸집이 유난히 작고 허약함)로 태어났습니다. 어미는 누런동이를 비롯해 4마리의 새끼를 낳다가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새끼들은 어미 젖 대신 유통기한이 지난 분유를 먹었고 특히 누런둥이는 몸집이 작은 무녀리라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서울에 사는 영미가 할머니 댁에 놀러갔다 누런둥이를 서울로 데려오게 되었습니다.

“아이고 녀석, 누릇누릇한 게 정말 귀엽네. 이제부터 네 이름은 누런둥이야. 알았지?”

운명적으로 태어나자마자 어미에게 버림받은 누런둥이는 상냥한 영미의 말에 안심이 되었습니다. 서울에서의 행복한 삶을 꿈꾸며 누런둥이도, 영미도 가슴이 벅차 올랐습니다.

상경한 누런둥이는 아파트에서 어려움 없이 지냈습니다. 유통기한이 지난 분유 따위를 먹을 필요도 없었습니다. 기름진 음식에, 또 잘 돌봐주는 탓에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해졌습니다.

그러나 그게 문제였습니다. 누런둥이의 몸이 그렇게까지 불어날 줄 영미는 물론 누런둥이 자신도 미처 몰랐던 것입니다. 3개월만에 누런둥이는 너무 많이 커버렸습니다. 식구들이 누런둥이를 꺼리기 시작했습니다.

“누런둥아, 어떡하니? 너 이제 어디로 가니? 흑흑”
“...”

이 말에 누런둥이는 낑낑거리기만 했습니다. 너무 안타까웠던 것입니다. 영미도 누런둥이를 어딘가에 보내야 한다는 생각은 한번도 한 적이 없었습니다. 한참을 고민하던 영미는 누런둥이를 신정동 회사 건물 옥상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는 출입문 왼쪽에 묶었습니다.

“누런둥아, 이제 아무 걱정하지마. 여기는 넓어서 네가 사는데 아무 문제없을 거야.”

영미는 누런둥이를 내려놓으며 머리를 쓰다듬었지만 누런둥이는 또다시 버려진다는 생각에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누런둥이 눈에 비친 건물 옥상은 굉장히 넓었지만 아파트에서처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줄에 매여 있어야만 했습니다.

“은실님, 저 뛰어다니고 싶어요.”
“누런둥아, 미안하지만 그렇게는 안 돼. 사람들이 널 무서워한단 말야.”
("나, 그렇게 무서운 개 아닌데...")

누런둥이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영미가 더 이상 자신의 말을 들어줄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림은 전남 해남에 사시는 구지 조대희 님이 그려주셨습니다.

 

 

건물 옥상에는 컨테이너 박스를 이용해 만든 식당이 있었습니다. 가방을 봉제하는 이 회사는 회사 근처에 마땅히 식사할 데가 없어 옥상에 직원 식당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덕분에 누런둥이는 굶지 않고 옥상에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누런둥이에 대한 영미의 관심은 점차 식어갔습니다. 처음 귀여운 모습을 보고 데려왔지만 지금은 그런 모습이 모두 사라졌기 때문이었습니다.

대신에 영미의 직장 동료인 은실이가 누런둥이의 밥을 끼니때마다 챙겨주었습니다.

“아이고 가엾은 누런둥이”

은실이는 누런둥이를 감싸안으며 머리를 쓰다듬었지만 누런둥이는 믿지 않았습니다. 은실이도 언젠가는 자신을 버릴 것이라고 누런둥이는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은실은 진심으로 누런둥이를 대했습니다.

추운 날엔 엄마 몰래 내복을 꺼내와 누런둥이에게 입혀주곤 했습니다. 소매를 조금 자르고 머리 들어가는 구멍을 넓혀 누런둥이의 몸에 맞게 개옷을 만들었습니다. 옷이 벗겨지는 것을 막기 위해 옷핀을 끼우는 것까지 잊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정성에도 불구하고 누런둥이의 옥상 생활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이 회사 남자 직원들이 누런둥이를 이유 없이 괴롭혔기 때문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장난으로 괴롭혔지만 날이 갈수록 그 정도가 심해졌습니다. 발길질을 하거나 막대기를 이용해 누런둥이를 때리곤 했습니다. 또 어떨 때는 누런둥이를 골대처럼 생각하고 축구공을 날리기도 했습니다. 이럴수록 누런둥이는 그 사람들을 향해 더욱 더 큰소리로 짖었습니다.

“멍멍멍! 멍멍 멍 멍 멍.”
“이놈의 개가 미쳤나?”
“멍멍멍! 으르렁 멍!”

누런둥이는 으르렁대며 남자 직원들을 경계했습니다.

“야, 저거 짖는 것 좀봐. 너 한번 맞아 볼래?”
“깨갱 깨갱...”
“한번만 더 대들면 그땐 정말 각오해...”

가방 끈으로 사용하는 인조가죽에 매질을 당한 누런둥이는 서러움에 눈물이 났습니다. 1미터도 안 되는 줄에 매여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하나 한탄을 했습니다. 세상에 태어난 걸 후회하기까지 했습니다.

그 후로도 누런둥이와 남자 직원들간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직원들만 보면 누런둥이는 으르렁댔고, 그럴수록 직원들은 더 심하게 괴롭혔습니다.

게다가 더욱더 커 가는 몸집과 무섭게 생긴 얼굴이 사람들로 하여금 누런둥이를 피하게 만들었습니다. 외모 때문에 이유 없이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샀습니다.

그러나 은실이 만큼은 누런둥이를 아껴주었습니다. 집에 있는 강돌이 생각이 났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누런둥이의 성격은 사나워져 갔지만 은실이 한테 만큼은 꼬리를 흔들며 착하게 굴었습니다. 괴롭히는 사람들에 대한 미움이 커져가는 만큼 은실에 대한 사랑은 더 깊어갔던 것입니다. 상처받은 마음을 은실한테 위로 받았던 것입니다.

“고마워요. 은실님.”
“그나저나 네 성격이 너무 과격해지는 것 같아 걱정이다.”
“그러게요. 저도 착하게 살고 싶은데 그게 쉽지 않네요.”
“네가 좀 참지 그래?”
“그러고 싶지만 제가 누런 색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람들한테 미움 받는 건 정말 못 참겠어요. 또 가만히 있으면 저를 무시하고 더 괴롭히는데 어떻게 참을 수 있나요?”
“...”

은실이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무조건 누런둥이 탓이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며칠 후 은실이는 누런둥이를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더 이상 옥상에 누런둥이를 방치했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고, 1년 동안 너무 깊은 정이 들었기 때문에 딴 곳으로 보낼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은실네 집에 와서도 누런둥이는 크게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강돌이와 자주 싸웠고 그때마다 덩치 큰 누런둥이만 혼나기 일쑤였습니다. 은실이는 누런둥이의 아픔을 알고 있었지만 은실이 아버지는 오랫동안 같이 살아온 강돌이만 예뻐하셨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둘이 싸우다가 은실 아버지한테 누런둥이만 혼났고 이 때문에 또다시 강돌이와 다툼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누런둥이의 지난 아픈 사연을 들은 강돌이는 누런둥이가 불쌍해졌습니다. 처음엔 힘세고 몸집 큰 누런둥이가 부럽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얄밉기도 했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오히려 힘세고 큰 몸집 때문에 괴롭힘을 당했다는 누런둥이 말에 왜소한 체구의 자신을 스스로 위로하기까지 했습니다.

“누런둥아, 미안하다. 멍멍. 몸집이 크다고 무조건 행복한 건 아니구나...”

강돌이가 누런둥이의 얼굴을 혀로 핥으며 위로했습니다.

“나도 어렸을 땐 귀여움 많이 받았는데 크면서 외면당했어. 처음에는 늘 주인 품에 안겨 살았거든. 몸집 작은 강돌이 네가 부럽구나.”
“그런 아픔이 있었구나. 누런둥아. 어떻게 위로를 해야할지...”
“사람들은 왜 한결같지 않은지 모르겠어. 이렇게 버릴 거면 처음부터 나를 데리고 오지 말던지....”

누런둥이는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낑낑거렸습니다.

그 후 강돌이와 누런둥이는 사이좋게 지냈습니다. 둘이 엉겨 붙어 장난도 치고 무는 시늉도 하며 천진난만하게 놀곤 했습니다. 그러나 은실이 아버지 눈에는 강돌이와 누런둥이가 싸우는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다음날 은실이 아버지는 누런둥이는 봉고 차에 태워 어디론가 데리고 갔습니다. 따뜻하게 한결같이 대해줬던 은실이와 마음을 터놓고 지냈던 강돌이를 생각하며...,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 그들을 생각하며...,

 

 

 

위 동화는 제가 경험하거나 들은 내용을 동화적인 기법으로 다시 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