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태풍이 올라온다는 소식입니다.
오늘 TV에서 한 기상캐스터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오늘 밤부터 내일 까지 꽤 많은 비가 내릴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면서 그 기상캐스터는 이런 말을 덧붙였습니다.
비가 와서 더위가 한풀 꺾일 거라고 기상 캐스터가 덧붙였습니다.
그 순간 시골에 계신 아버지 생각이 났습니다. 며칠 전 내린 비 때문에 모든 논의 벼가 다 엎쳤고 그 때문에 식사도 못하고 상심하고 계신 아버지가 생각났습니다.
사실 엊그제 막내한테 “엎친 벼 때문에 아버지 식사도 못하신다”는 전화 받고 나서야 비로소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어찌나 죄송하던지….
“아버지 식사도 못하신다면서유. 벼 다 엎쳐서 어떻게 한 대유. 그거 다 언제 일으켜 세운대유?”
“야, 그거 너희들 6남매(사위, 며느리)다 와서 보름동안 일해도 다 못 세우겠더라.”
“그러게요, 어쩐대유?” “그렇다고 그냥 놔 둘 수도 없구.”
“야, 속상해서 논에 가기도 싫다. 그런데 어쩌냐, 마음을 비워야지. 휴~.”
저는 알고 있습니다. 유독 우리 논의 벼만 왜 그렇게 엎어졌는지. 모두 아버지의 부지런함 때문이라는 걸 말이죠. 3월 모내기하기 전 너무나 많은 두엄을 내셨고, 남들보다 더 많이 비료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우리벼가 다른 논의 벼보다 낟알이 굵고, 무겁기 때문에 약한 비, 바람에도 쉽게 쓰러졌다는 것을 말이지요.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늘 그랬으니까요.
그러나 저는 또한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있습니다. 남들보다 더한 정성을 쏟는 일이 결국 농사를 망칠수도 있다는 사실을 잘 아시면서 그렇게 하실 수밖에 없는 아버지의 마음을 말이지요. 단지 큰 태풍이 비켜가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간절한 마음을….
아버지, 부디 내년부터는 너무 많은 거름, 비료 주지 마세요. 수확량이 좀 줄어들더라도 꼭 그렇게 하십시오. 더 이상 가르칠 자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식구들 ‘양식’만 하면 되잖아요. 더군다나 ‘내일 모레’면 70이시고 지금도 밤이면 삭신이 쑤신다고 늘 말씀하시잖아요.
죄송합니다 아버지. 해마다 두엄, 모내기, 농약, 추수 등 일손이 한참 달릴 때 서울에 산다는 이유로 바쁘다는 핑계 삼아, 주말에 차 많이 막힌다는 핑계로 자주 내려가지 못한 점 말이지요. ‘꼬부랑 할머니’가 다 되신 어머니께서 무더운 여름날 농약 줄을 붙잡고 아버지와 실랑이를 하시는 모습을 생각하면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이번에 내린 비로 엎어진 벼에 싹이 트겠죠? 그렇게 되면 벼의 상품 가치는 최악이 되는 것이고요. 한 알 한 알싹이 나올 때마다 아버지의 마음도 갈기갈기 찢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한 알의 망가진 곡식이 이토록 아버지 마음을 무너뜨리고 있네요.
추수가 끝난 늦가을. 아버지, 어머니께서는 그 너른 빈 논을 빠짐없이 돌아다니시며 한 톨이라도 더 건지기 위해 볏 이삭을 주우실 것입니다. 곡식을 향한 아버지, 어머니 마음이 이러할진대 엎어진 논에서 싹을 틔우는 벼를 바라보시는 마음은 어떠하실는지요.
아버지, 내년에는 부디 거름, 비료 너무 많이 주시지 마세요.
우리집 벼가 잘 쓰러지는 이유, 바로 이겁니다. ⓒ
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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