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할아버지 제사 축문을 내가 베껴 썼다 ⓒ 윤태
보름 전 서울 큰아버지 댁에서 할아버지 제사 모시던 날, 꽤 많은 일가친지들이 모인 가운데 제사가 시작됐습니다.
술과 절을
올리고 몇 번의 반복이 있고 난 후 축문을 읽는 순서, 항상 둘째 큰아버지께서 축문을 읽으셨는데 마침 해외여행중이셨습니다.
그런데
대뜸 아버지께서 저를 보시며 "야, 태(문)이 네가 읽어봐라" 하시는 겁니다. 전혀 생각지도, 예상치도 않은 상황. 친지 어르신들, 사촌들이
저를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저는 얼굴이 빨개지고 더듬더듬 말했습니다.
"아버지 그게, 한자를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아서…."
"모르는 거 있으면 가르쳐줄테니까 한번 읽어봐라."
순간 한지에 쓴 축문을 보니 어려운 한자가 왜 이리 많은지,
그저 귀에 익은 '유세차'만 눈에 들어오고 옆에서 알려준다 해도 도저히 축문을 읽어낼 자신이 없었습니다.
"아버지, 다음에
연습해서 한번 읽어 볼께유."
그제야 한숨을 돌리고 나서 사촌들을 둘러보니 모두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숨을 내쉬더군요.
비단 저 뿐만 아니라 저보다 나이가 더 많은 사촌 형들도 축문을 매끄럽게 읽어 내려갈 자신이 없다는 얘기지요. 결국 아버지께서
축문을 읽으셨고 머리 숙이고 그 소리를 들으면서 저는 방금 전 당황스러웠던 상황을 다시 한 번 떠올렸습니다.
아버지의 심정을
이해합니다. 그래도 집안에서 시, 시조 등 글줄이나 쓰고 있다는 당신의 자식을 친지들 앞에서 드러내 보이고 싶으셨다는 걸 말이지요.
저희 아버지께서는 다른 집안에 양자로 가셔서 일 년에 다섯 번, 친조부모님까지 총 일곱 번의 제사를 모십니다.
그렇게 저도 아버지 곁에서 20년 이상 제사를 모셔왔으니 횟수로 따지면 150회에 가깝고 그때마다 지방 쓰고 축문 읽은 모습을 봐
왔지만 실제로 그것을 능수능란하게 쓰고 읽지는 못합니다. 크게 관심을 갖지 않고 따로 축문에 대한 한자 공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그냥
습관처럼 보고 듣고 흘려보냈다고 해야 할까요.
처할아버지 제사 축문 베껴 쓰다
그런데 어제 (24일) 이와
비슷한 일이 또 있었습니다. 대구에서 처할아버지 제사가 있는데 늘 축문을 쓰고 읽으시던 장인어른께서 건강상 이유로 대구에 못 가시고 장모님께서
가시게 됐습니다. 그래서 달력 뒤에 대충 적은 축문을 장모님 편에 보내셨고 저더러 한지에 깨끗이 옮겨 쓰라는 것이었습니다.
장인어른께서 흘려 쓰신 축문. 다행히 토는 달아 주셔서 컴퓨터 한자 사전을 찾아가며 몇 번의 연습 끝에 한지에 축문을 옮겨 적을
수 있었습니다.
어려운 한자는 거의 '그리기' 수준이었지요. 그래도 신경 쓸 수밖에 없었던 건 훗날 장인어른께서 친지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때 축문 우리 사위가 쓴 것"이라고 말씀하실 게 뻔하기 때문이지요. 아마 장인어른께서는 제가 지방이나 축문을 능수능란하게 쓰고 읽을
줄 알고 계실 텐데 속사정은 그게 아니지요.
여하튼 처할아버지 제사 축문을 쓰면서 공부는 많이 했습니다. 이번엔 '유세차'에 그치지
않고 축문에 나오는 전체적인 구절의 뜻풀이와 한자 쓰기 등 공부에 큰 보탬이 됐습니다.
그동안 단 한 번도 세심하게 생각하지 않고
무심결에 지나쳤던 지방과 축문, 하나하나의 구절에 담긴 깊은 뜻을 알면서 부모님 저를 존재하게 해준 먼 조상님들을 기리는 마음을 갖게 됐습니다.
그 옛날 조상님들이 없었으면 부모님도 저도, 제 아들도 세상엔 없겠지요.
제사 계속 지내야 하나, 현대엔 불필요한
의식인가
한편 이번 '축문 대필'을 통해 아버지를 비롯한 아버지 세대 그 어르신들의 마음과 입장을 다시 한 번 헤아려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제사라는 것이 아직까지 아버지 세대에서는 후손의 안위를 위한 절실한 믿음의 축으로 자리 잡고 있지만 솔직히
우리세대는 제사의 전통성을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필요하거나 현대인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하나의 의식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지요.
시대가 변화고 현세를 중시하는 게 지금 사회다보니 제사의 의미가 퇴색해짐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겠지요.
사정이 이렇다보니
아버지께서도 "제사는 이제 우리세대에서 끝난 거 같다"고 종종 말씀하십니다. 겉으로는 포기하시면서도 자식들이 은근히 당신의 제사를 지내주기를
바라는 마음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도 시골 가면 시리즈로 나온 수 천쪽 분량의 파평 윤씨 족보를 보시며 그 흐름을 알아야
한다며 공부할 것을 권하십니다.
그런데 제사에 대한 아버지의 속마음은 다를지도 모릅니다. 당신 제사 때만이라도 다 같이 모여
형제간의 우애를 다지라는 그런 교훈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매년 느끼지만 조부모님 제사가 아니고서는 일가친척들 얼굴 보기가 힘듭니다. 명절
때야 부모님 찾아뵙는 정도지 전국 곳곳에 사는 일가친척은 제사 때와 장례식때 뵐 수 있는 정도니까요.
아마 그런 아버지의 마음이지
싶습니다.
아버지 세대에서 제사는 끝이라고 스스로 말씀하신다 ⓒ 윤태
2006년 7월 25일 오마이뉴스 사는이야기 코너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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