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전기가 끊겨버린 사무실, 그렇게 비참할 수 없네요

그루터기 나무 2006. 6. 21. 18:37

<전기수급계약 통지서, 한마디로 전기를 끊겠다는 통보입니다>

 

지인이 다니는 회사 사무실에 전기가 끊겼습니다. 석달치 요금을 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매일 메신져 연결이 돼 있던 지인이 갑자기 ‘오프라인’으로 돼 있을때 짐작했습니다. 돈 5만원 들고 서울에 올라와 갖은 고생 다 하며 이번엔 뭔가 좀 제대로 해보려고 했는데 상황이 이렇게 어렵습니다.


그 지인이 급하게 12만원만 빌려 달라기에 며칠 전 여유있게 20만원을 빌려줬는데, 지난 일요일 건설현장 등에서 막일을 해서 20만원을 마련했답니다. 그런데 너무 힘들어 그 돈 중에 몇 만원을 빼 술을 마시고, 또 다시 어렵게 돈을 구해 제게 주려고 한 지인.


전기가 끊긴 사무실에 들렀습니다. 이 지인은 집도 없어 사무실에서 먹고, 자고 생활을 하는데 전기가 끊기고 나니 도저히 눈뜨고 못 볼 지경이었습니다. 냉장고의 몇 안 되는 반찬은 썩어가고, 보일러가 작동되지 않아 찬 물에 샤워하고, 차디차고 캄캄한 사무실 바닥에서 지난밤을 보냈습니다.


쌀은 떨어진지 오래고, 전기밥솥의 밥풀은 말라 있었습니다. 멈춰선 몇 대의 컴퓨터, 으슬으슬한 적막과 고요가 무서운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휴대폰 충전기를 사용 못해 휴대폰 밧데리는 다 돼 가고...


그나마 라면이라도 끓여먹으며 근근히 버티고, 지금 추진하는 일에 한 가닥 희망을 걸며 버텨왔는데, 일이 요지경 되고 말았습니다. 아, 무심한 하늘이여, 이 지인은 제가 사귀고 있는 사람중에 몇 안 되는 ‘사람 좋은’ 그런 사람인데....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벌써 몇 달째 이런 생활을 하니, 얼굴이 반쪽이 됐습니다.


우선 점심 사 먹이고, 빌려 준 돈 20만원을 받고 발걸음을 돌리려는데, 도저히 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지인은 형수(새롬엄마)께 이자도 못주고, 이런 모습 보여 미안하다고 거듭, 말씀 잘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수중에 10원 한 푼 없이, 당장 저녁 끼니부터 굶으며 차갑고 컴컴한 사무실에서 고난의 행진을 계속해야 하는 지인. 마음 같아선 20만원 쥐어주며 우선 찜찔방에 가서 몸좀 추스르고 식사도 하며 기운을 차리라고 해주고 싶었지만, 그럴만한 형편도 못됐습니다. 그 돈을 제 맘대로 1만원도 사용할 권한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융통성을 발휘해 어떤 방법으로 지인에게 금전적으로 도와줄 여유가 형편과 상황이 안됐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제 자신이 한탄스럽기도 하고....


하지만 차마 그냥 나올 순 없었습니다. 저야 몸 누일 집도 있고, 쌀도 있지만 지인에게는 배고픔과 추위와 어둠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돈을 받을 지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레서 쟁반밑에 3만원을 넣고 잘 보이지 않게 해 두었습니다.


“○○씨, 나 갈게요. 바로 문자 보낼 테니 확인하세요.”


서글퍼 보이는 지인의 모습을 뒤로 하고 울울한 마음으로 사무실을 나섰습니다. 그리고는 문자를 보냈습니다.


“○○씨, 쟁반 밑에 3만원 넣어 놨으니까 밥도 사먹고, 따뜻한 물로 목욕도 하면서 몸좀 추스러요”


“감사히 쓰겠습니다. 이 은혜 잊지 않을게요.”


돈 3만원에 ‘은혜’까지 언급하며 고마워하고 미안해하는 지인...


하지만 저는 믿습니다. 그가 돈 5만원 들고 무작정 상경해 온갖 일을 하면서 한때는 멋있게 잘 나갔고, 지금은 더 멋있게 되기 위한 숨고르기 단계에 있다고 말이지요. 물론 숨고르기 하는 장소가 유리밭처럼 위험하고 힘들고 그렇지만, 독사처럼 강하게 그것을 이겨내 언젠가는 제게 환한 미소를 가득 뿌릴 것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처지가 늘 이러면서도 강하고 선한 미소를 간직한 그였기에....


“○○씨, 그 3만원의 은혜를 3천만원으로 갚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받은 돈 20만원 가운데 3만원을 지인에게 줬습니다. 17만원이 남았네요>

 

 

<그 흔하던 전기가 끊기고 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