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보낸사연

50만원 안되는 월급으로 오빠 학비까지..

그루터기 나무 2007. 8. 26. 18:57

 

가난한 삶에 찌들었던 그 친구, 지금은 어찌 됐을까? ⓒ윤태

 

 

 

97년 12월의 어느 날 학교에서 편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경남 마산에서 날아온 편지인데 보내는 이의 이름은 전혀 낯선 이름이었습니다.

펜팔을 하자는 어느 여자 아이의 편지였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우리들의 펜팔은 하루가 멀다 하고 서로의 편지가 오갔습니다. 그 친구의 속사정을 알게 된 것은 여덟 번째 받은 그 친구의 편지 때문이었습니다.

여자 나이 스물 넷에 직장 생활을 11년째 하고 있는 친구였습니다.

식구 다섯 명에 고급 승용차 다섯 대를 가지고 부유하게 생활하고 있는 일부 사람들도 있지만 수수한 옷 한 벌을 사기 위해 몇 달간을 계획하고 생활비를 쪼개고 쪼개어 그 변변치 않은 옷 한 벌을 사야만 하는 그 친구 이야기를 쓰면서 경건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1989년 2월, 초등 학교를 졸업하던 해 15세의 나이로 그 친구는 공장에 취직을 했습니다. 집세, 연탄값, 쌀값, 그리고 어머니 약값을 위해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야학을 다녀서 중. 고등학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마쳤습니다.

카메라 조립 공장, 라디오 부품 공장, 사무실 경리, 백화점 점원, 지하상가 점원, 약국 등을 전전긍긍하며 집세 벌이, 생활비, 어머니 약값 등을 벌어야만 했습니다

아버지는 사업 실패로 술로 나날을 보내시고 어머니는 양쟁기술로 식구들을 먹여 살린다고 너무 무리하시다가 병이 나셨다 합니다

그 친구가 보내 온 편지를 읽으면서 무척 가슴이 아팠던 내용은 스물 네 살된 아가씨가 16,17,18세때 입던 옷가지를 지금도 입고 다닌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친구에게는 남들처럼 중. 고등학교 시절이 없었기 때문에 "16,17,18세때 입던 옷가지" 라는 표현을 편지에 썼습니다.

약국 다닐 때 여름휴가를 반납하고 그 대가로 받은 구두 티켓으로 구두 한 켤레를 샀고 지금도 신발은 그 밤색 구두 하나뿐이라는 걸 제가 직접 만나 보고 알 수 있었습니다.

"생존의 이유가 나를 끌고 다닌다" 는 그 친구의 말은 조금이나마 그 친구보다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는 저를 더더욱 고개를 들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피아노 학원 강사로 일하면서 50만원도 채 안되는 월급으로 오빠 학비까지 보태야 하는 그 친구의 겨울은 더더욱 싸늘하기만 합니다.

일곱 장의 편지지에 담겨 제게 배달되어 온 그 친구의 삶을 읽어 내려가며 그 친구가 처한 슬픔을 같이 해 주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위 이야기는 10년전 한 라디오프로그램에 제가 보낸 사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