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영어 유창하고 국어 서툰 저학년 부모님들께

그루터기 나무 2007. 4. 10. 10:30
 

 

널리 읽히고 있는 작품 '의좋은 형제'의 한 대목. 영어도 중요하지만 먼저 우리 말, 우리 글이 우선돼야 할 것입니다.

 

 

저는 유치원생부터 초등학교 6학년까지 2~6명 모둠을 짜 토론식 독서 논술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책을 읽고 토론을 하며 중간 중간 혹은 마지막에는 글쓰기로 마무리를 하는 수업입니다.


아이들을 지도하다보면 다양한 패턴의 아이들을 만납니다. 그 중에 한 친구가 기억에 남습니다. 그 친구는 올해 초등학교 1학년인데 모국어가 영어입니다. 모국어가 영어인만큼 얼마나 유창하게 영어를 잘하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국어 즉 우리나라 말은 더듬더듬 잘하지 못합니다.


이런 상태에서 수업을 하다보니 1학년 그 친구는 한단계 낮춰 유치원 교재로 수업을 합니다. 하지만 그 마저도 쉽지 않습니다. 아니 대단히 어렵습니다. 우리말에 대한 어휘가 무척 딸리는 것도 문제지만 우리나라의 어떤 정서, 사상, 전통 등이 그 친구에게는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얼마전에 ‘의좋은 형제’라는 글(아시죠? 형님과 동생이 서로에게 볏단을 갖다 주다가 하나도 줄지 않아 의아해하다가 어느 달이 밝은 날 밤 서로에게 볏단을 가져다 주다 마주치게 되는 감동스러운, 그리고 상대를 배려하는 형제간의 우애를 주제로 한 유명한 글-저희 초등학교 교과서에서도 실렸던 글)을 가지고 수업을 하는데, 그 친구가 ‘의’, ‘제사’, ‘볏단’이라는 의미를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당연이 이에 대한 경험이 없기 때문이지요. 이에 엄마께서 수업 들어가기 전 영어로 전체적인 어휘를 설명해주기도 합니다.


여하튼 이러한 상황인지라 어렵게 어렵게 수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그 친구의 국어, 어휘, 문장, 독해 실력 등을 향상시키기 위해 무척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엄마도 무척 노력을 하고 계십니다.


비단 이 친구만이 아닙니다. 수업하는 3학년 친구중에도 외국에서 오래 살다가 와서 영어는 유창한데 국어실력이 달려 수업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런 친구에게는 조금 더 쉬운 어휘로, 최대한 가볍게 수업을 진행하는 편입니다.


영어 조기 교육, 대세라면 대세고 추세라면 추세입니다. 그러나 우리말이 아직 익숙치 않은 상태에서 영어를 우선시한다면 그 친구가 아무리 영어를 잘하더라도, 우리나라의 정서, 전통, 사상 등이 마음속에 들어있지 않기 때문에 일상 생활을 하는데 지장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 대다수의 친구간의 의사 소통 및 어울리는데도 문제가 있을 수 있구요.


여하튼, 이미 조기 영어교육으로 영어가 유창하고 우리말이 서툰 초등학생 혹은 그 이하 어린이가 있다면 부모님들께서는 우리말, 우리글, 우리의 전통 사상, 정서 등을 많이 심어주었으면 합니다. 박물관에도 많이 데려가시고 관련 책도 많이 읽히시고 하는 방법이죠.


결국 우리말이 우선되고 영어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사실, 너무나 잘 알고 계시죠?